우리 헌정사에는 주기가 있다.주기폭은 대강 10년이다. 그만한 간격을 두고 사변이 생기고 환국이 되는 것이다. 자유당의 50년대 정치,공화당의 60년대 정치와 유신의 70년대,5공의 80년대가 모두 그러했다. 그리고 이제 90년대는 첫해의 「경천동지」로 막을 올리고 있다. 역시 10년주기를 생각하게 한다.
이 10년주기의 해석을 한마디로 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다음 몇가지는 지적할수가 있다.
뭐니 뭐니 해도,10년주기는 대통령의 집권기간과 승계방식이른바 대권구도의 소산이다. 최장 8년(1차 중임 포함)의 대통령 임기를 보장했던 50년대와 60년대는,그 임기 말에 있게 마련인 집권연장의 억지와 후유증이 주기폭 10년의 파동을 부르기 십상이었다. 임기제한이 없었던 70년대와 7년 단임의 80년대도 대권구도의 억지가 체제의 몰락을 가져왔다는 점에서 그 주기적 양상은 다를것이 없다.
다음은 정치의 10년주기가 대개 인사가 정체될 무렵에 돌아온다는 사실이다. 실권의 뿌리인 군부와 관료사회,심지어는 기업과 학계에서까지,신진세력의 인사불만이 쌓일 때쯤 사변이 나는 것이다. 그래서 세대교체ㆍ숙정ㆍ정화 등 구호야 어떻든,사변 때마다 인사의 물갈이가 강행된다. 그 결과로 정통성을 의심받는 권력도 새협력자를 쉽게 충원할수가 있으나,한 10년 지나면 다음 신진세력의 인사불만이 쌓여서 새로운 사변의 계기가 무르익는다. 이경우의 10년주기는 「십년세도」 「화무십일홍」 등의 옛말과도 상통할듯 하다.
그러나 이보다 특기할 것은 매번의 10년주기가 신통하게 똑같은 정형을 거듭한다는 점이다. 이는 우리 정치사ㆍ정당사가 악순회의 되풀이였음을 뜻한다. 그 궤적은 나선형의 상승곡선이 아니라 쳇바퀴에 가깝다.
이 쳇바퀴의 정형은 ①거대여당과 분립야당 ②여야의 양극화 ③야당세의 신장 ④사변의 4단계로 요약될수가 있다. 50년대에서 보면 ①51년의 거대여당(자유당) 창당 ②55년의 통합야당(민주당) 발족 ③56년 야당후보의 부통령 당선과 58년 총선에서의 야당세 약진 ④4ㆍ19등의 4단계 정형이 잘 나타난다. 60년대에는 공화당과 통합야당 신민당 사이에서,70년대에는 유정회+공화당과 신민당 사이에서,같은 패턴이 되풀이된다. 80년대는 민정당의 1당 우위를 전제로한 다당제 정치판이 통합야당 신민당의 등장으로 양극화하고,끝내는 6ㆍ29 사변과 여소야대로 귀결됐다. 이전 연대와 마찬가지 정형이다.
지난 40년의 경험이 이러하기 때문에,90년대 첫해의 거대여당 출현도 10년 주기설에서 크게 벗어난것 같지 않다. 대권구도를 다시 그리고,인사 물갈이를 생각할 무렵이 되니까,역시 환국이 되더라는 것이 실감이다. 그런 뜻에서,이번 「경천동지」는 80년대의 연장이 아닌 새로운 정치주기의 시작,6공의 중간결산이 아닌 실질적 「6공 원년」의 신호라고 해야 옳다.
그렇다면 새로운 정치주기는 어떤 전개양상을 보일까. 10년주기설 대로,지난번 4차례와 같은 정형의 쳇바퀴를 또 한바퀴 돌리는데 그칠 것인가. 아니면 이쯤해서 10년주기의 악순환을 끊어버릴 수가 있을 것인가.
솔직히 말해,아직은 그 어느쪽으로의 전망도 서지 않는다. 신문을 읽고,알만한 사람의 말을 들어 보아도 「기대반ㆍ우려반」 이상의 해답은 얻을수가 없다.
다만 확실하기는 「기대반」이 적중하건,「우려반」이 적중하건,결판은 빠른 시일안에 나리란 전망뿐이다. 당장 눈 앞에 지자제 선거와 92년의 총선이 있고,대통령의 남은 임기 3년 이전의 개헌을 예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설사 10년주기설이 적용된다고 해도,야권의 분립과 여야의 양극화를 거친뒤에 파투에 이르는 4단계가 급템포로 진행되고,주기폭이 줄어들 것만은 틀림이 없다.
비관적인 10년주기설이 아니라도,파투의 시나리오는 또 있다. 유럽식 다당제의 경험을 정리한 연합정치이론대로 하면,과대연합은 오히려 취약하고,정책거리가 큰 연합은 쉽게 무너지게 마련이다. 곧 발족할 통합야당은 이 두가지 약점을 모두 안고 있다. 그래서 통합이 제대로 안되거나,성격불명의 기형당을 낳을수도 있는 것이다. 이 경우의 파투는 더 다급하게 닥칠 것이다.
새해들어 지금까지의 형편을 보아서,악순환의 단절을 굳이 낙관하자면,아무래도 가정법을 쓸수 밖에 없다. 그 가정법중의 하나는 3김이 원로가 되는 것이다. 통합여당의 발족을 계기로 한쪽의 2김이,통합야당을 전제로 남은 1김이 2선 후퇴를 선언한다면 얼마나 멋질 것인가. 다음은 통합여당이 대다수 국민가능하면 통합야당도 납득시킬만한 개혁정책을 마련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합의개혁,또한차례 합의개헌에 이르는 것이 세번째 가정이다. 이렇게만 된다면 주기적 악순환의 단절은 보장이 된다.
이 3가지 가정중 첫번 것은 전혀 가능성이 없는 가상같고,세번째 것은 아직 훗날의 일로 치부할수 밖에 없다. 그래서 가능성 있는 것으로 남는 것은 두번째 가정뿐이다. 그나마 이 가정의 구현은 해체된 3당의 연립정부에 그치지 않는 거국체제에 기대할수 밖에 없을 것 같다.
여하간 기대할만한 가능성은 하나 뿐인데,그 싹수는 이달 중순으로 예정된 임시국회에 선을 보이게 된다. 비로소 그때 우리는 「구국의 결단」의 실체를 볼 것이다. 그때,통합여당의 떡잎을 볼때까지는,90년대 새 정치주기의 향방을 점칠 수가 없다. 그 점괘가 반드시 대길일 것이란 보장도 지금은 없다.
마침 내일(4일)이 입춘이다. 폭설이 연일 퍼부었어도 자연의 주기는 어김이 없다. 입춘대길―. 가냘프나마 한가닥 기대를 가지고,신춘정국의 정치입춘을 기다린다.<상임고문ㆍ논설위원>상임고문ㆍ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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