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공=민정」 원죄 못벗고 끝내 하차/권력 들러리 자족 민 이반 자초/이젠 보호막 약화… 자생력 과제/최대정파 불구 타세력 삼투과정 못견딜 땐 앞길 험난민정당시대가 1일로 창당 9년1개월만에 막을 내리게 됐다. 민정당은 이날 임시전당대회에서 통합신당인 민주자유당에의 합류를 결의,사실상 당해체를 공식화함으로써 당의 간판을 역사의 뒷전으로 치웠다.
지난달 30일 민주당의 합당결의에 이은 민정당의 간판내림은 5일로 예정된 공화당의 「폐업」과 함께 신당창당으로 가는 예정된 수순. 그러나 민주당 해체가 40년 전통야당사에 획을 긋는 무게를 가졌다고 한다면 민정당 해체는 헌정사 처음인 집권당의 자의적 간판내림이라는 의미를 갖고 있다.
정당의 영욕성쇠는 그동안 수차례 경험해온 바지만 민정당 해체에 각별한 시선이 던져지는 것도 이 때문이다.
물론 민정당이 외양상 막을 내렸어도 내용적으론 인적 뿌리와 권력적 속성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하지만 민정당 해체가 신당출범이라는 정치권 지각변동의 전제이자 결과로 나타났고 이질적 정치세력의 합류이후 도처에 갈등소지를 깔고 있다는 점에서 앞으로 「민정정파」의 변질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다시 말해 이번 민정당 해체가 지난 9년간 영욕의 세월을 힘겹게 지탱해오는 동안 배태된 자기모순의 결과로 빚어진 만큼 그 해결방식으로 채택된 간판내림은 필연적인 변화를 강요받고 있는 것이다.
돌이켜 보면 민정당은 80년초 신군부의 집권을 뒷받침하고 정당화하기 위해 급조된 이후 항상 권위주의통치의 들러리역으로서 정당의 정체성을 상실해왔다.
이철희ㆍ장영자사건,85년의 2ㆍ12총선,고문 등 인권유린 사례,소외계층의 열악한 생활조건등에서 민정당은 자신들이 내건 이념인 정의ㆍ민주ㆍ복지가 허물어지는 것을 목격함으로써 이미 오래전에 존립기반을 위협받은 게 사실.
87년 4ㆍ13호헌조치로 압축된 「5공=민정당」의 위기는 당시 노태우대표위원의 6ㆍ29선언으로 국면의 반전을 이끌어냄으로써 덮어졌고 이후 야권의 분열에 힘입어 정권재창출에 일익을 담당,새로운 위상을 찾는 듯도 했다.
그러나 4ㆍ26총선으로 표현된 민심의 소재는 5공청산을 최대의 정치현안으로 제기,민정당의 자기부정을 강요함으로써 사실상 당해체라는 오늘의 결과를 필연화한 셈이다.
88년말 당내에서 제기된 발전적 해체설은 이러한 저간의 가닥을 반영하는 흐름으로 파악될 수 있으며 실제 이 시기부터 여권핵심부는 5공청산과 당해체를 한묶음으로 인식해온 게 사실이다.
5공청산이 지난 2년간 정치권의 최대현안이었던 이면에서 여권핵심부는 5공청산을 정계개편의 종속변수로 생각하고 있었다는 분석이 최근 지배적인 것도 이같은 관측을 뒷받침하고 있다.
여권이 처음부터 정호용의원 사퇴와 전두환전대통령의 국회증언으로 귀결된 5공청산과 민정ㆍ민주ㆍ공화의 연합으로 드러난 정계개편의 치밀한 시나리오를 갖고 있었던 것은 아니다. 그러나 두가지 이벤트의 중추에 서있었던 인물군이 이른바 노대통령 주변의 신주류였다는 점은 4ㆍ26총선이후 여권이 생각해온 정국구도를 가늠케 해주는 부분이다.
바꿔 말해 4ㆍ26총선에서 표출된 민심의 이반현상이 5공청산과정 가운데 오히려 심화되는 경향을 보이는 형국에서 이미 전전대통령의 은둔과 함께 자기부정을 노정한 민정당을 고수하기엔 한계를 느낄 수밖에 없었으리란 것이다. 여기에 직선대통령으로서 노대통령의 「문민화 성취욕」및 「퇴임 후」에 대한 고려,나아가 차기대권과 관련한 여권핵심부의 계산적 판단이 곁들여지면서 민정당의 해체는 오래전부터 시간문제로 남겨져온 듯하다.
다만 민정당에 생래적뿌리를 가진 세력들의 반발과 기존당조직의 동요가 시기선택의 변수로 작용했음도 사실. 그러나 최고통치권자를 향할 수밖에 없는 여권의 권력속성과 최근 기존의 당조직과 별도로 급속한 확장세를 보이고 있는 월계수회등 외곽조직에서 비롯된 자신감이 당의 해체를 더욱 앞당겼으리란 지적이다.
지난달 15일 창당 9주년 기념식에서 제2의 창당을 외쳤던 민정당이 불과 보름만에 당의 간판을 내리게 되는 배경엔 이같은 여권내 세력판도의 변화를 공식화하는 의미를 빼놓을 수 없다.
이제 민정당은 신당내 최대정파로 변신을 도모하고 나섰으나 불모성과 불임성으로 점철돼온 과거의 모습을 어떻게 극복해나갈지는 여전히 미지수다.
과거 집권당의 생래적 과제였던 자생력에 대한 실험이나 당개혁을 한번도 행동으로 구체화해보지 못한 정파의 속성이 신당내 다른 정파와의 삼투과정에서 어떻게 「단련」받을까 하는 것도 관심이다.
한때 「태어나지 말았어야 할 정당」이란 원색적 비난을 받으면서도 당을 지탱해온 중심축이 집권프리미엄에 의존한 것이었다면 이제 권력의 시혜를 반분케 된 민정정파의 앞날은 더욱 험난할 수밖에 없다.
민자당이란 거대신당의 구조속에서 민정정파의 운신을 과거의 잣대로 예측키는 어렵지만 이들의 신당내에서의 정치행태는 신당의 성패와 함께 정치사의 시계바늘을 다시금 가늠하게 될 것 같다.〈이유식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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