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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의 사양(조두흠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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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의 사양(조두흠칼럼)

입력
1990.01.3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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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국민들 가운데 정치의 안정을 희구하지 않는 사람은 아마도 없을 것이다. 정치가 삐걱소리를 내어 사회가 불안해지고 경제가 침체되는 상황을 그 누가 바라겠는가.민정ㆍ민주ㆍ공화 3당의 보수대연합에 따라 민주자유당의 창당작업이 한창이다. 지난 22일 거대신당 구상이 발표되자 신문사설들은 한결같이 서두를 『경악과 충격』으로 시작해서 정치안정에 대한 기대감을 표시했다. 매스컴 여론조사 결과도 보수대연합에 대한 지지율이 적지 않다는 사실을 보여주었다. 많은 국민들이 그동안 4당체제의 비능률적 국정운영,과도한 노사분쟁,경제불황에 염증을 느낀 것도 분명하리라.

하나 3당통합에 의한 민자당과 일본의 「보수합동」으로 지난 55년 탄생한 자민당의 유사성을 지적하는 식자가 적지않다. 35년동안 자민당의 일당통치가 오늘의 일본 번영을 누리게 한 원동력이라는 주장도 없지 않다. 심지어 통합신당의 연출가라는 김종필 총재와 보수합동의 막후실력자 미키(삼목무길)가 비유되기도 한다.

요즘 일본 신문들은 한국의 정계개편을 대안의 불구경감으로 즐기고 있는 것 같다. 아닌게 아니라 표면상으로 한국의 보수대연합이 일본의 보수합동 이후 35년만에 이루어졌고 서울올림픽만 해도 동경올림픽(64년)보다 25년 뒤에 치러졌으니 그들이 우월감을 자부할 법도하다.

하지만 한국의 민자당과 일본의 자민당은 「민주」와 「자유」의 순서만 바꾼 것 이상으로 출생배경과 여건의 차이점이 적지않다.

우선 일본의 보수합동이 좌우파 사회당의 합당으로 보수진영의 위기를 실감했기 때문에 추진된 것이라는 주장은 하나의 픽션이다. 지난 55년 10월 사회당이 단일화,원내1당으로 격상되었지만 그 의석수는 과반수에 훨씬 미달했다. 「보수합동」은 2차대전후 자유당 창당을 주도하자마자 공직에서 추방당한 하토야마(구산일랑)와 정권의 전세권자 요시다(길전무)의 암투에도 원인은 있었다.

책략에 능한 미키(삼목)가 뒷날 보수합동 때는 『성심성의껏 거짓말을 했다』고 술회한 것만 보아도 그 이면을 읽을 수가 있다. 우리 정계 개편의 주역들이 성심성의,거짓말을 했는지 여부는 훗날 역사가 증명할 것이다.

다음으로 우리 사회에서는 의석의 3분의2선을 20석이나 넘는 거대여당의 막강한 가능성에 대해 의외로 무감각한 것 같다. 물론 의석이 많을 수록 정치의 행보는 빨라질지 모른다. 일본의 경우 보수합동후 자민당은 사회당과의 협조적 의회운영을 시도했고 야당의 정책 가운데서 수용할 것은 재빨리 채택했다. 만약 민자당이 개헌선을 돌파한 세력으로 민주화정착과 개혁을 소홀히 하고 강권정치로 되돌아간다면 참으로 불행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거대여당이 「스포일 시스템」으로 각료와 공직을 나눠먹고 당내불만을 해소시키기 위해 국회의원 정원을 늘리거나 참의원 구성을 발상한다면 곤란하다. 「5ㆍ16군사혁명」으로 채 정착되지도 않은 내각책임제를 전복한 사람이 다시 그 부활을 주장한다면 역사적 아이러니가 아닌가. 정치학자들은 민주정치는 본디 집권당이 국회의석의 과반수를 약간 상회하게 가지는 것이 순리라고 말한다. 견제세력이 없는 1당독주는 뜻밖에 정치의 파국을 불러올 수 있다. 절대다수를 차지해야 정치가 안정되고 민생이 향상된다는 발상이 얼핏 수긍되지 않는 소이가 바로 이런데 있다.

일본은 내각책임제를 채택하고 있으나 「천황」이라는 국가의 상징이 있기 때문에 파벌의 이합집산으로 정변이 자주 일어나더라도 사회자체는 흔들리지 않는다. 더욱이 신분이 보장된 엘리트 공무원들이 엄존해 정치의 공백이 생기지 않는다. 한마디로 일본의 정치토양은 『정치인이 관료를 감독하고 관료는 기업인을 지도하되 기업주는 정치자금제공 때문에 정치인에 강하다』는 미묘한 꼬리물기식 밸런스를 유지하고 있다.

오랜 권위주의,군사문화 통치 때문에 정치권력이 만능이고 모두가 집권자의 눈치만 살펴온 한국의 다극화되지 않은 정치풍토와는 다른 것이다.

지난주 신문지상에는 오는 92년 내각책임제로 개헌한 뒤 초대총리가 누가 되고 그 다음 타자는 누구일 것이라는 밀약설 등 추측보도가 난무하고 있다. 곰곰이 생각해보면 국민부재의 정치가 아닌가 하는 느낌마저 든다. 일본 자민당은 5개파벌을 형성,차기총재,총리후보감(이른바 프린스)을 경쟁적으로 육성하고 있다. 각파벌은 지역선거구마다 별도로 의원사무실을 차려놓고 선거 때가 되면 파벌보스가 자기 계보를 무조건 공천,자금 유세지원을 해준다. 중선거구(정원 2∼5명)의 선거전에서 자민당 의원끼리 경쟁하고 상호 비방하는 사례도 비일비재하다. 이렇게 해서 의석과 대의원을 많이 확보한 계보의 보스가 경선을 통해 차기정권을 창출하는 것이다.

물론 여기에 소요되는 막대한 정치자금 조달 때문에 정경유착,금권정치의 병폐가 필연적으로 뒤따르게 된다. 조선의혹,록히드사건,리크루트사건 등 대형비리사건이 좋은 본보기다. 이런 폐단까지 각오하고 정계개편을 추진하고 있을까. 총리를 지낸 원로,집권을 탐내지 않는 받침대 같은 중간보스들이 적지 않은 일본에서도 후계밀약은 쉽게 지켜지지 않는다. 지난 60년 보안개정 비준을 둘러싸고 곤경에 빠진 기시(안신개) 총리는 당료파 오노(대야반목).친동생 사토(좌등영작)와 우익의 고다마(아옥여사부),재계의 하기하라(추원길대랑) 등 증인입회 하에 안보개정후 오노(대야)에게 정권을 넘겨주기로 서약서까지 써준다. 하난 파국을 넘긴 뒤 이 서약은 무효가 되고 정권이 이케다(지전용인)로 돌아간 것은 너무나도 유명한 이야기다. 그렇다고 해서 오노(대야)는 서약서를 끝내 공개못했다. 정권을 사의사양하려 했다는 국민여론이 무서웠기 때문이다.

하긴 민자당과 자민당의 이름이 비슷하다고 해서 속알맹이까지 같을 수야 없을 것이다.

거대여당은 자유ㆍ민주ㆍ통일이라는 대의명분에 스스로 심취하지 말고 우선 민주화를 정착시켜 국가보안법,안기부법 개정,경찰중립화,지자제 실시,경제개혁 등에 딴전을 부리는 일이 있어서는 결코 안된다. 지난 22일 3당통합 발표현장의 TV 중계 처럼 「좌종필」 「우영삼」의 인상을 불식하고 한번 제대로 된 정치를 시현할 것인지,지켜보는 사람이 어디 필자 뿐이랴.【논설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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