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동 고층아파트 주민 백1명/작은 정성이 「마음의 큰벽」헐게/서먹했던 한동네 웃음꽃 활짝/아이들도 이젠 오순도순… 전달식은 “동네잔치”우리 사회의 명암을 대표하는 고층아파트단지와 철거민촌사이에 사랑의 가교가 놓여졌다. 서울 양천구 신정1동 목동아파트 9ㆍ10단지 주민1백여명은 지난해 초부터 신정1동 장학회를 만들어 인근철거민촌의 중고생들에게 장학금을 지급하고 있다.
김영훈회장(56ㆍ건축업) 등 회원들은 설날을 앞둔 25일에도 철거민촌에 찾아가 고교진학예정자 2명에게 특별장학금을 전달했다.
장학회가 생기기 전까지만해도 아파트 주민들과 철거민들은 한동네사람들이 아니었다. 2차선도로만 건너면 이웃인데도 이들 사이엔 교류가 전혀 없었고 오히려 일종의 적대감이 형성돼 있었다.
신정1동에 철거민촌이 형성된것은 70년초,중랑구 청계천변에서 밀려난 가옥주와 세입자 3천여명은 이주딱지 몇장씩을 합쳐 이곳에 18평내외의 허름한 집을 짓고 집단이주해 왔다. 한집에 3∼5가구씩모여 날품팔이 파출부로 살아가는 생활이었지만 이들은 오순도순 달동네문화를 가꿔가며 허허벌판이었던 신정1동을 지켜왔다.
그러나 87년10월 아파트입주가 완료되자 철거민촌은 15층 고층아파트의 그늘에 묻혀버렸다.
철거민들에게 아파트는 「괴물」로 비쳐질수밖에 없었고 이들은 아파트옥상위로 떠오르는 해를 바라보며 소외감을 곱씹어야했다.
반면 아파트주민들은 철거민촌을 내려다보며 『저것때문에 집값이 떨어진다』는 식의 생각을 키우거나 발을 들여놓아서는 안되는 우범지대쯤으로 여기게 됐다. 아이들도 같은 학교에 다니면서 얘기를 하지않는 사이가 돼버렸고 동네 놀이터에서는 싸움도 자주했다.
대통령선거와 국회의원선거를 거치면서 이들사이의 위화감에는 정치적 앙금과 지역감정까지 보태졌다. 아파트에선 민정ㆍ민주당표가 많이 나왔고 호남출신이 많은 철거민촌에는 평민당물표가 쏟아져 나왔던 것이다.
이렇게 마을이 두쪽나자 아파트와 철거민촌 사이의 단독주택에 살던 마을원로 김영훈씨는 88년 겨울 아파트주민들을 설득해 장학회를 만들었다.
지난해 1월13일 19명의 회원으로 발족한 장학회는 회원수가 꾸준히 늘어 1년만에 1백1명에 이르게됐다.
장학회는 회원1명이 월5천원씩낸돈 6백여만원으로 4차례에 걸쳐 철거민촌 중고생 70명의 공납금을 대주었다.
분기별로 동사무소에서 열리는 장학금전달식은 항상 눈물바다가 됐다가 동네잔치상으로 변하곤 했다.
몰래 철거민촌의 소녀가장에게 매달 쌀 한가마를 보내주는 아파트주부,선물꾸러미를 들고 전달식에 오는 사람들이 늘어났으며 아이들은 함께 모여 공부를 하기 시작했다. 장학회원 신경자씨(51ㆍ여ㆍ904동 504호)는 『우리의 작은 정성이 그들에겐 큰힘이 된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말했다.
다른회원 허인룡씨(34ㆍ여ㆍ1030동605호)도 『전달식에 갈때마다 가슴이 뭉클해진다』며 『다음엔 어려운 생활을 모르는 아들을 데리고가 산 공부를 시켜줄 계획』이라고 말했다.
반에서 1등을 놓치지않아 장학회의 자랑이 되고있는 박응식군(15ㆍ신서중3)의 아버지 박순성씨(52ㆍ도장업)는 『우리와 아무 관계도 없는 아파트사람들의 온정에 무척 놀랐었다』며 『영세민들에게 장학금은 큰 도움이 된다』고 고마워했다.
신정1동 이성재동장(47)도 『장학회사업이후 위화감이 완전히 해소됐다』고 흐뭇해있다. 장학회원들은 2월께 고교에 입학하는 아파트와 철거민촌 학생들을 모두모아 축하잔치를 열어주고 회원수도 2배로 늘릴 계획이다.
가족이기주의를 극복한 중산층과 소외감을 씻어버린 영세민이 화합하여 살아가는 신정1동은 계층간의 갈등과 지역감정을 해소한 「함께 사는 사회」의 전형이다.<신윤석기자>신윤석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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