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Dㆍ가수들의 「검은 돈」관계를 캐보면…/공동 창구 “접수”… 안내면 함께 제재/출연료도 형식뿐 사실상 가로채/PD와 승용차 바꾸고 개인일에 불려 다녀/밤업소 수입과 직결… 가수들” 상납 불가피”/정화노력 번번이 실패 양심에 의존할 수 밖에 없어서울지검 민생특수부가 25일 연예인들로부터 방송출연을 빌미삼아 각종 명목으로 거액의 금품을 정기상납받은 방송사PD 6명을 전격구속한것은 방송계의 부조리가 수사기관이 손을 대지않으면 안될 정도로 고질화돼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검찰은 당초 연예계주변 폭력배들의 검거에만 수사력을 집중했지만 수사과정에서 연예인과 매니저들이 PD들의 금품수수사실을 진술함에 따라 전면수사에 착수하게 된 것으로 알려졌다.
가수들의 출연료를 가로챈 혐의를 받은 일부 매니저들은 『가수들이 방송에 출연하기 위해서는 정기적으로 가요담당 PD들에게 상납할 수 밖에 없었다』고 털어놓았고 검찰이 이 진술을 토대로 방송가에 대한 내사를 벌인 결과 거액의 돈이 오간 사실이 확인됐다는 것.
이에따라 검찰은 지난22일 MBC PD 신승호씨(42) 등 6명을 소환,매니저들의 진술과 압수된 비밀장부를 토대로 신문을 계속해 이들로부터 『방송출연을 대가로 금품을 정기적으로 받아왔다』는 자백을 받아냈다.
검찰은 이들중 죄질이 특히나쁜 PD 3∼4명을 구속할 방침이었으나 KBS예능국 PD들이 집단사표를 제출하는 등 크게 반발하자 방침을 변경,6명전원을 구속했다.
검찰은 『수사대상에 오른 PD들이 방송출연을 대가로 정기적으로 금품을 받아온 사실을 자백했는데도 PD들이 자성의 빛을 보이기는 커녕 오히려 집단사표를 내는 등 반발하고 있는 것은 어불성설』이라며 『앞으로도 불구속입건 또는 수배중인 PD들에 대해서도 금품액수가 많을 경우 구속할 방침』이라고 강경한 입장을 보이고 있다.
수사관계자는 우리나라의 TV 및 라디오의 가요취급프로는 대략 50여가지에 이르고있으며 이들 음악프로담당 PD들에게 연예인이 정기적으로 상납하는 액수는 1회 최소 30만∼50만원에 이르고 있어 「촌지」의 수준을 넘어 「뇌물」의 성격이 짙다는 것.
○대부분 가요담당자들
이와같은 부조리는 방송이 존재하고 그것을 이용해야하는 대상이 있는한 본질적으로 쉽게 사라지지 못하는 고질적 병폐로도 볼수있다. 지난75년에도 지금과 똑같은 사건이 방송가를 한바탕 휩쓸고 지나갔지만 그후에도 여전히 이런 현상이 고개를 내밀고 있는것이 이를 사실적으로 말해준다.
일부 연예담당 PD들에 해당되는 것이긴 하지만 방송가의 뒷거래의 실체를 파헤쳐 본다.
이번에 검찰에 의해 구속된 PD는 모두 6명이고 3명은 수배중이다. 구속된 PD는 모두 「올스타쇼」「젊음의 행진」「가요톱10」「가요산책」「연예가 산책」 등 가요프로 담당자들이다.
이들이 받은 돈은 크게는 5천4백여만원에서 적게는 1천5백만원까지이다.
검찰에서 조사를 받은 한매니저는 『신인가수의 음반을 제작하는데 2천만원의 경비가 들뿐아니라 관련PD들에게 「인사」하는 PR비가 1천만∼1천5백만원가량 필요하다』며 『레코드판이 제작돼 방송되기까지에는 최소 3천여만원이 소요되는것이 현실』이라고 폭로하기도 했다.
이처럼 가요담당 PD들이 많은 돈을 받을 수 있었던것은 프로가 가지고 있는 특수성 때문이다.
○매니저 사이 제왕 군림
노래라는 것은 방송을 타지않고는 짧은시간에 인기를 얻을 수 있는 방법이 거의 없다. 방송을 자주타야 인기가 있고 그 인기는 곧 야간업소의 출연과 출연료를 좌우한다. 방송에서 인기가 있으면 야간업소출연으로 한달에 1천만원이상을 받지만 방송에 얼굴을 자주 내밀지 않으면 금세 그 액수는 떨어진다. 무명가수 경우는 한달에 50만원도 채 받지못한다는 점에서 방송에서의 인기가 가수들의 수익을 결정하고 있음을 알수있다.
이때문에 가수들은 「울며겨자먹기」식으로 이들 PD들에게 매달릴 수 밖에없다.
특히 가요순위 프로그램은 한가수의 생명이 왔다갔다할 정도로 영향력이 큰 만큼 PD가 가수와 이들을 관리하는 매니저들 사이에서 「제왕」처럼 떠받들어지는 것은 당연한 일인지 모른다.
이에대해 일선 쇼담당 PD들의 의견은 정반대다. 가요순위프로는 우선 신뢰성이 생명인만큼 객관적인 자료,이를테면 엽서ㆍ레크드판매수에 따른 집계로 진행되기 때문에 담당PD들의 조작이 불가능하다고 항변한다.
지난24일 KBS예능국 쇼프로담당 PD들이 모인자리에서도 이같은 신뢰성에 의심을 하는 검찰의 발표에 강한 불만이 터져나왔고 결국 이에항의,집단사표를 제출하기에 이르렀다.
○출연 보장 일정액 받아
그렇지만 일부 순위프로그램의 경우 녹화도하기전에 가수나 매니저가 순위를 알고있으며 뒷거래에 따라 순위가 올라간다는 소문이 끈질기게 나도는것도 사실이다. 더구나 1위의 경우 5주연속 1위를 차지하면 자연 물러나게 되어있기때문에 이런부정이 끝없이 이어지게하는 원인으로 작용하고 있다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이같은 사례는 비단 가요순위 프로그램뿐만 아니다. 작게는 오락프로,넓게는 드라마,코미디프로에까지있는 현상이란 지적이다. 유형역시 각프로그램의 성격에 따라 다양한 형태를 띠고 있다. 가장 전형적인 것이 특정프로출연보장과 특정가수의 노래를 반복해서 내보내는 조건으로 일정액의 금품을 받는 것이다. 「올스타쇼」나 「가요산책」같은 가요오락프로는 말할 것도 없고 순위프로그램에서도 시간제약으로 모두 노래를 부를수 없기때문에 출연자로 선정되기 위해 뒷 돈을 준다는 소문이다. 일부 연예인들은 심지어 자신의 고급승용차를 PD와 바꿔주기도하고 바쁜 공연일정에도 PD의 개인적인 일에 불려다니기까지 했다고 폭로하고 있다.
○반발땐 출연정지 보복
뿐만아니라 연말이면 양방송사가 정기적으로 시상하는 10대가수에도 매년 잡음이 뒤따랐다.
지난88년에는 그당시 인기있던 여가수 M양이 10대가수에 끼이지 못하기도 했다.
이때 M양은 노래와는 전혀 상관없는 「의상상」을 받았는데 이에 격분한 M양은 방송사PD들이 사람을 바꾸었다고 주장했는데 당시 S씨 등 가요담당PD들이 그벌로 M양을 7∼8개월동안 TV에 출연시켜주지 않은 사실은 널리 알려져 있다.
PD들이 이처럼 가수선정에 영향력을 행사함에 따라 양방송사의 10대가수얼굴이 전혀 다르게 나타나는 경우도 있었다. 지난해 양방송사가 선정한 10대가수를 보면 2∼3명을 제외하곤 다른 얼굴들이다. 심지어 MBC10대가수에 뽑힌 가수중에는 KBS 20대가수에도 선정되지못한 가수가 세사람이나 되었다.
이밖에 방송사마다 자기들이 소위「키운」가수가 상대방송사에 출연할경우 PD들이 그 가수의 출연과 노래를 절대 내보내지 않음으로써 간접적인 보복을 하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출연료를 둘러싼 잡음도 적지않다. 양방송사가 한국방송광고공사에 광고대행을 위해 제출한 자료를 보면 쇼프로의 경우 보통 평균제작비가 5백만원에서 1천2백만원까지이다. 여기에는 촬영ㆍ조명 등 제작지원부서의 인건비는 제외되어있어 주로 물품비ㆍ출연료가 대부분이다. 그러나 출연자에게 돌아가야할 출연료가 형식적으로 지불되고 있다는 소문이다. 인기가수들의 출연료는 일반적으로 매니저들이 관리하고 있는데 그것을 받아가는 경우는 거의없다는 것이다.
○매니저가 출연료 관리
이런관행은 코미디프로에서도 종종있어 왔음은 지난해말 MBC TV의 젊은코미디언들이 PD와 갈등을 벌였을때 PD들이 코미디언들의 출연거부 움직임에 강경하게 대응하지 못했던것도 이때문이었다는 후문만 봐도 쉽게 짐작된다. 70년대말에도 드라마 PD들이 그당시 냉장고 등을 받거나 출연료 등 일정액을 상납받았던 사건이 있었던 점으로 미루어 방송가에는 이런 소지를 안고있는 분야가 하나둘이 아님을 알수있다.
일부에서 코미디프로에 누구누구의 이름을 붙인 「코너」까지 만들어주는 것에 대해서도 의심의 눈길을 감추려하지 않을 정도다.
○민주화이후 더 심해져
이런 현상은 방송민주화이후 더욱 심하게 나타나고 있는 듯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지난해 7월 서울리베라호텔에서 열린 가수의날 기념식에서 가수H씨는 『지난60,70년대에는 가수가 연예담당방송PD들에게 금품을 주는 사례가 거의 없었는데 요즘은 그것이 부쩍 늘었으며 단위도 믿을 수 없을만큼커졌다』면서 후배가수들의 자성을 촉구했었다. 그러나 가수들의 지나친 과당경쟁이 이를 더욱 부채질하고 있으며 수요는 많은데 방송채널은 고정되어 있어 비리가 고개를 쳐들수 밖에 없는 실정이다.
그런데도 소문만 무성할뿐 지금까지 표면으로 드러나지 않았던 것은 뒷거래가 가수와 PD개개인간에 이루어지거나 그렇지않더라도 일부PD들의 단합때문으로 풀이된다.
○일부는 상사에 상납도
이번에 구속된 PD들은 연예인들로부터 개별적으로 받지않고 공동창구를 통해 일괄적으로 받아 관련제작자들이 나누어 갖고 일부는 상납하는 방법을 사용했다고 한다. 이런 방법을 사용하는 것은 우선 공동책임을 지게되므로 보안이지켜지고 만약 어느한 가수가 잘못 보이면 모든 방송프로그램에서 그 가수의 노래를 방송하지 않는 힘을 발휘할수 있는 장점때문이다.
여기에 영수증이나 거래장부가 있는 것도 아니기 때문에 좀처럼 증거가 남지않은데다 매니저와 가수들 역시 섣불리 사실을 발설하지 못하게 발목이 잡혀 진상을 알수 없는 것도 특징이다. 이번 수사에서도 검찰은 철야수사까지했지만 이들이 주고받은 금품에 대한 증거가 없어 애를 먹었을만큼 철저한 보안이 유지되고 있다.
이들은 이른바 연예계의 「통대」(길목)위치에 있어 일단 이들을 통하면 확실하게 가수나 개그맨이 될수있다는 인식이 연예인들사이에 자리잡은지 오래다.
고질적인 비리에 대한 방송사의 나름대로의 노력도 이런 사건이 터질때마다 있었지만 결국 모두 무위로 끝나곤 했다.
○방송횟수 제한도 허사
지난75년 연예담당PD 7명이 이번과 똑같은 이유로 구속됐을때 방송사들은 PD들이 마음대로 곡을 고르고 프로출연자를 선정하는 제도자체에 문제가있다고 판단,레코드판매와 DJ연합회 등에서 제시한 자료 등을 근거로 인기순위를 결정하도록하는 등 제도적장치를 마련했지만 얼마못가 유야무야 돼버렸다.
이어 85년 당시 이원홍 KBS사장이 비리배제를 위해 한프로그램에서 일주일에 특정가수노래를 내보내는 횟수제한제도를 두었으나 그것도 이원홍씨가 사장에서 물러난후는 제대로 지켜지지 않았다. 더구나 이런 단순한 통제성격의 제도는 오히려 신인가수들의 등용을 막고 인기가요를 자주 내보낼수밖에 없는 가요프로의 특성을 해친다는 비판까지 따랐다.
○구조적 병폐 시정 곤란
결국 방송PD들의 이같은 비리는 방송인 스스로의 사명감과 양심 그리고 시청자들에 대한 의무감에 의존할 수 밖에 없는 구조적인 성격을 갖고있다. 이번 사건으로 가장 충격을 받은 쪽은 아무래도 시청자들이다. 지금까지 알게모르게 방송사의 잘못된 관행과 구조적 병폐에 의해 가요프로를 보고 들어온 시청자들은 조작된 정서에 배신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방송사도 이번사건에서 이부분에 가장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다. 24일 KBS교양국내 쇼프로담당PD들이 집단사표를 낸데는 이런쪽으로 검찰이 수사결과를 발표하려는 듯한 분위기에 대한 반발도 들어있다. 더구나 이번사건이 방송사의 모든 PD들에 해당되는 듯한 인상에 PD들은 강한 불만을 드러냈다.
○점심 접대 사양하기도
『마치 모든 PD들이 비리의 주범들인양 인식되어질 상황을 도저히 용납할 수 없다』며 MBC 제작2부의 PD 20여명도 25일 사표를 제출키로 했다.
사실 연예 가요담당PD중 젊은층에서는 지난해 가요프로시상이 끝난후 초청한 식사초대조차 거부하는 양심적인 방송인도 있다. 여기에 교양이나 라디오PD 대부분은 모든PD들에게 그여파가 미치는 것은 방송에 대한 침해라고 주장하고 있다.
한국방송프로듀서연합회도 25일 『변명할것없이 방송조직에도 부패한 곳이 있고 그것을 도려내는 것이 마땅하지만 본질과 달리 이번사건이 모든 PD들의 일반적 상황인양 일거에 단죄하려는 분위기는 납득할 수 없다』면서 『이것이 자칫 또다른 방송탄압이 될것을 경계한다』는 성명서를 내놓았다.
○일괄사표는 반발성
그러나 이번사건을 놓고 방송가가 보여준 일단의 집단사표는 자신들의 자성보다는 반발의 의미를 강하게 담고 있으며 양심적인 목소리에 일부가 편승하려는 모습으로 비쳐지고 있다. 따라서 방송인들의 보다 솔직한 자성과 시청자들에 대한 사과가 앞으로 보다 깨끗한 방송풍토를 조성하고 국민들로부터 사랑받는 「방송의 꽃」이 될수있다는 지적들이다. 여기에 방송사 자체가 보다 제도적인 장치를 마련하는 일도 시급하다.
양방송사는 지금까지 수차례 PD들의 순환근무제를 시도하려 했으나 특히 쇼 오락프로담당 PD들의 반발로 실패했다. 이들은 겉으로는 전문성을 내세우고 있지만 그이면에 이같은 문제점을 안고 있었기때문에 결국 방송사가 그비리를 키워준셈이되고 말았다. 따라서 방송인 스스로의 각성과 제도적보완 등으로 이런 비리가 없어져야만 대다수 열심히 일하는 PD들의 명예도 회복될수 있다는 것이 방송계의 여론이다.<이창민ㆍ이대현기자>이창민ㆍ이대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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