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대여당도 야와 공존해야 안정/신당도 대야관 밝혀야/두김“충정” “대권욕”등 불투명/일 자민은 최근 쇠퇴기일본정치사에 있어 「1955년 체제」는 여소야대의 4당체제를 민주ㆍ자유 등 보수 2당의 합당에 의한 자민당과 좌우 양 사회당의 연합에 의한 사회당의 2당체제로 재편성,보수ㆍ혁신 2대 정당간의 정권교체가 가능토록 하는 것이 당초의 명분이고 목표였다.
그러나 국내의 혁신진영을 대표하는 사회당이 「계급적 대중정당」으로부터 정권 담당을 목표하는 「국민정당」으로의 변신에 실패했기 때문에 국회의 의석은 「3분의1 정당」의 벽을 깨뜨리지 못한 채 지난 55년 이래 오늘에 이르기까지 35년간 자민당 독점의 보수당 정권의 지속을 허용하고 만 것이다.
「55년 체제」를 도입하지 않을 수 없었던 당시 일본의 상황을 보면 55년 2월의 총선거로 그때까지 제2당이었던 민주당이 제1당이 돼 자유당 대신 정권을 잡았으나 과반수의석에서 49석이나 부족한 비교다수 제1당에 머물러 있었다. 마치 한국과 같은 여소야대의 정치상황 이었는데 이때문에 의회는 의장ㆍ부의장을 비롯,의회운영의 모든 주도권을 야당이 장악,심지어 정부제출의 예산안도 야당에 의해 수정돼 성립될 정도였다. 이에 따라 하토야마(구산)가 이끄는 민주당 정부의 공약인 「헌법조사회」설치 법안을 비롯한 중요 법안은 모두 성립되지 못하는 사태에 이르렀다.
이같은 상황속에서 보수 2당의 합동에 의한 의회내 보수안정세력의 확보는 불가피한 선택이 됐으며 지상명제이기도 한 셈이었다. 여기에 지난 51년 샌프란시스코 평화조약조인 발효로 연합국의 점령상태가 종식된 일본은 난제였던 소련과의 국교회복을 가늠하면서 소련의 찬성을 얻어 유엔가입을 실현,국제사회로 복귀하는 것이 당시 일본국민의 일치된 여론이기도 했다. 이를 위해서도 보수세력의 단일화에 의한 안정다수의 의석확보가 절실한 상황이었다.
지금 「55년체제」의 보수합동 모델을 그후의 시계열적인 변용을 가미해 가면서 지표화해 본다면 다음의 7개항으로 총괄이 가능하다.
즉①여소야대의 변칙국회 극복과 여당안정 다수의석의 확보 ②자민당의 정책근대화에 따른 국민정당화 ③자민당 총재의 경선에 의한 정권교대와 정치궤도의 수정 ④여당견제,정치비판세력으로서의 야당의 존재 ⑤자민당 의원의 세대교체와 도시형 정당으로의 변신 ⑥사회당의 국민정당화 실패와 야당 다당화 ⑦탈정당,균경자(Balancer)로서의 유권자의 등장 등이 그것이다. 보수합동으로 안정 다수의석을 확보한 자민당의 히토야마 정권은 다음해인 56년 일소국교정상화와 염원이었던 유엔가입을 실현했고 이를 이은 기시(안) 정권은 「미일신시대」를 캐치프레이즈로 내걸고 미일신안보조약의 성립을 강행한다.
그러나 사회당ㆍ노조ㆍ재야민주단체의 반미ㆍ반안보투쟁은 안보조약 개정을 위한 대미협상에서 기시내각에 협상 기반을 강화시켜 준 결과가 됐다.
이 60년 안보를 기점으로 미국은 당시까지 점령정책 그대로였던 대일정책을 전환하게 된 것이다. 당시 지일파였던 라이샤워 대사의 기용도 그 일환인 셈이다.
기시내각에 이어 이케다(지전)내각은 「관용과 인내」,야당ㆍ재야세력과의 협조로 정치궤도를 수정,이른바 「총자본대 총노조」로 불리는 전후최대의 노조분쟁이었던 미쓰이(삼정)의 삼지쟁의를 해결,일본적 노사협조 노선에의 길을 열였다.
이와 동시에 내걸었던 「소득 배증계획」은 일본인에게 잠재해 있었던 노동력의 에너지를 끌어내 일본의 고도성장 시대를 구축하면서 「55년체제」를 부동의 것으로 만들었다. 또 오키나와(중승)를 돌려받은 사토(우등) 내각에 이어 다나카(전중) 내각은 일중 국교정상화를 실현시켰다.
이들 기시ㆍ이케다ㆍ사토ㆍ다나카 4대에 걸친 자민당 정권의 성립에 공통적인 것은 당내에서 격렬한 총재선거를 거친후 정권ㆍ권력의 자리에 앉았다는 점이다. 4대에 걸친 이들 정권의 강점은 총재(총리)의 자리를 둘러싼 당내항쟁의 에너지를 그대로 자민당 정권의 에너지로 흡인하는데 성공했다는 점에 있다.
「55년체제」는 영국의 정치처럼 보수ㆍ노동 2당간의 상호정권 교대를 실현하지는 못했지만 의회의 3분의 1로부터 거의 과반수에 이르는 야당의 존재를 항상 전제로 해왔다.
일소나 일중 국교정상화 교섭도 이를 자세히 본다면 언제나 야당측의 전면협조와 협력을 필요로 했다. 또 때에 따라서는 야당의 격렬한 비판,반대에 직면한 경우도 있었다.
35년에 걸쳐 정권을 장악해온 자민당 지배의 정치는 지난해 여름 참의원 선거 결과 참의원에서 여소야대의 상황이 됐고 오는 2월에는 중의원에서도 「55년체제」의 존속 여부를 묻는 총선을 앞두고 있다.
새해 들어서면서 한국의 정계도 문자 그대로 전광석화처럼 민정ㆍ민주ㆍ공화 3당의 보수대연합으로 민주자유당의 발족을 눈앞에 두고 있다. 김영삼ㆍ김종필 두 총재의 머리속에는 일본의 「55년체제」보수합동의 모델을 그리고 있는 것으로 전해지고 있는데,지금 일본의 정국은 「55년체제」를 과거의 것으로 돌리는 국면에 들어서고 있다.
현재 서울의 상황은 보수대연합과 함께,차기정권체제를 둘러싸고 내각책임제 이행의 헌법개정을 서두르고 있는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또 대통령ㆍ국무총리의 역할분담제는 양김총재 분담의 인사배치로 볼 때 상당히 묘미가 있는 정권체제일 것 같은데,문제는 정국안정확보를 위해 보수대연합의 필요성이 선행한 것인가,또는 양김총재의 권력욕과 역할분담이 선행한 것인가에 있다. 따라서 민주자유당 결당대회까지 보수대연합의 실체를 국민들 앞에 명확하게 밝혀야 할 것이다. 일본의 「55년체제」는 강력한 야당과의 경쟁적 공존을 전제로 한 불가피한 선택이었다. 이 「55년체제」속에 숨어있는 장기집권의 비밀은 앞에서 언급한 보수합동모델의 7개 지표가 설명해 준다.
일본의 「55년체제」가 한국에서 유력한 정치모델이 된다면 대연합으로 절대다수파가 되는 민주자유당이 야당 및 반대당의 존재를 새로운 한국정치의 구도속에서 어떤 위치에 올려놓을 것인가를 국민들 앞에 명확하게 선언할 필요가 있다.
3당 대연합에 대해 단독 야당으로 남은 평민당과 재야세력을 기반으로 혁신정당의 수립을 지향하는 정치단체들이 3당대연합의 충격에 어떻게 대응할는지,주목되는 시점이다.<하야시ㆍ다케히코 일본 동해대ㆍ한양대 객원교수>하야시ㆍ다케히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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