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에서 한국인들처럼 정치를 좋아하는 국민도 없을 것이다』 8ㆍ15광복 직후 자고 나면 하루에도 몇개의 정당과 사회단체가 우후죽순처럼 쏟아져 나오는 것을 보고 당시 미군정청의 고위인사가 한 말이다. ◆그러나 이 「감탄」은 얼마 안가 「칭찬」이 아닌 「조소」임이 드러났다. 미소 공동위원회가 각 정당ㆍ사회단체에 대해 등록하라고 공고한 뒤 접수된 각당의 상황을 보고 공동위측은 「개탄」한 것이다. 남한지역만 무려 2백여개 정당ㆍ사회단체에 당원 총수가 남북한 인구보다 더 많은 것으로 나타난 것. 각당은 당세를 과시하기 위해 제멋대로 당원수를 적어낸 것이다. ◆어쨌거나 당시 정치인들은 정치는 물론 정당생활에 관한 경험이 전무했기 때문에 창당ㆍ창립선언문만 격문처럼 작성하고 당헌 당규 정강정책 등은 외국 특히 일본 정당들의 것을 그대로 베껴썼다. 이같은 정치의 일본 모방은 그뒤 오늘에 이르기까지 그대로 이어져 역대 여야당의 당헌및 기타 갖가지 정당관계 규약ㆍ규정은 90% 이상 일본 것을 그대로 옮겨다 써오고 있다. ◆사실 정치적 후진국,즉 경험과 지식이 전혀없는 형편에서 정치선진국의 제도와 관행을 도입해다 활용하는 것은 하나도 어색하거나 부끄러운 일이 아니다. 오히려 그 제도를 한국적 풍토에 뿌리를 내릴 수 있게 우리 것으로 소화시켜나가는 데 큰 의의가 있는 것이다. 건국 당시 그렇게도 훌륭한 헌법과 국회법 등을 만들었음에도 우리가 아직도 정치적 후진성을 면치 못하고 있음은 그럴 듯한 껍데기(제도)만을 달랑 들여오고 운영의 묘와 정치인들이 지켜야 할 자세나 임무 등은 외면했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국내외를 깜짝 놀라게 한 3당통합신당 구상이 1955년 보수 대연합으로 탄생한 일본 자민당을 모델로 삼았다는 설이 파다한 가운데 최근 일지는 일본통으로 알려진 김종필공화당총재가 88년말 나카소네ㆍ야스히로(중증근강홍) 전총리를 찾아 자문을 받았다고 보도했다. 아직 우리 정치가 일본의 자문을 받아야만 하는지 씁쓸한 일이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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