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험구가는 지난 양대선거에서 김영삼총재와 민주당에 투표한 사람들을 「개량주의자들」이라고 빈정댔었다. 차마 민정당에 투표할 수는 없고,민주화에 참여하겠다는 허영심은 있으나,평민당수준의 개혁은 원치않는 계층이 주로 민주당에 표를 찍었다는 분석이었다.그러나 좋은 말로 민주당 지지자들(표를 찍든 안찍든 잠재적으로 민주당에 호감을 가진 사람들)을 분석한다면 근본적으로 보수성향을 가졌으나 개혁과 사회정의에 관심을 가진 온건한 사람들이라고 표현할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 계층의 특징은 상식,한걸음 더 나아가 양식을 중요시하는 점 이라고 말할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김염삼총재의 신당합류는 우선 자신을 지지해온 계층의 양식에 어긋나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당황하고 있다. 민주ㆍ공화의 합당설정도는 그런대로 「힘있는 야당」의 출현이란 점에서 긍정적인 기대를 걸수있었으나,오랜세월 정부ㆍ여당을 상대로 투쟁해온 야당지도자가 선거에 의하지 아니하고 하루아침에 거대한 여당의 지도층이 된다는 사실을 수긍하기는 어렵다.
민주대 반민주라는 구도설정이 전적으로 옳지않다 하더라도 공화당과 민정당은 지금까지 민주세력의 투쟁대상이었지 동지는 아니었다. 누구보다 3공ㆍ5공의 핍박을 심하게 받았던 김영삼총재가 개인적으로 그들의 과거를 수용하는 것은 좋으나,이 나라의 뿌리깊은 전통야당을 이끌고 거대여당에 합류하기 위해서는 그들과 손잡고 민주화와 개혁을 완성시킬수 있다는 확신이 있어야 한다. 김대중씨와 협력하는 것은 도저히 불가능하지만,노태우ㆍ김종필씨와 협력하는 것은 가능하다는 논리가 무엇인지 국민은 설명을 듣지 못했다.
그들이 의식했든 의식하지 않았든 간에 3당합당은 반김대중노선을 형성하고 있다. 신당창당을 위해 손을 잡고있는 세사람의 마음속에 「김대중식 정치」에 대한 거부가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좀더 심하게 말한다면 그들이 편 공동전선은 「김대중식정치」와 재야가 몰고오는 혼란으로부터 정국을 지켜야 한다는 인식에서 출발했다고 생각된다.
그렇다면 거대한 여당의 출현은 오히려 우리를 불안하게 한다. 3당의 물리적인 통합처럼 위험한 것은 없다. 개혁의지가 충분치 못한 여당,진보성향을 혐오하는 여당,거기다가 개헌선을 확보한 거대한 여당이 오늘과 같은 변혁기에 등장한다는 것은 어제의 악몽을 되살려줄 뿐이다.
어떤 사람들은 이번일을 「김영삼의 거대한도박」이라고 말한다. 그가 민정ㆍ공화당의 생리를 과소평가했거나,자신의 능력을 과신했거나,과욕에 빠졌다고 보는 사람도있다. 그는 과거에 「죽을각오」로 단식투쟁을 한 일이 있는데 이번에야말로 죽을 각오로 신당에 참여하는지 묻고싶다. 성공하지 못한다면 그가 역사에 짓는죄는 매우 클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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