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의 1백20여 소수민족/가혹 탄압에도 고유종교ㆍ언어 “사수”/반체제 인사 총 1억2천만명인 셈/스탈린 민족존중원칙 무시ㆍ러시아인 우월주의가 2대 뿌리아제르바이잔 사태가 19일 밤 소련군의 무력진압작전으로 일단 진정국면에 접어들었다.
그러나 이번 작전을 계기로 아제르바이잔과 아르메니아간의 인종분쟁은 중앙정부에 대한 아제르바이잔인의 독립전쟁으로 변질된 셈이다.
또 소련과 2천6백㎞의 국경을 마주하고 있는 이란은 소련 중앙정부의 이번 진압작전을 회교도에 대한 종교탄압으로 간주하고 크렘린을 맹비난하고 나섬으로써 이번 사태가 자칫 국제분쟁으로 비화될 조짐도 보이고 있다.
게다가 진압군의 진입에 의해 지하로 잠적한 아제르바이잔의 과격 민족주의 세력들은 정부군을 상대로 무기한 「성전」을 벌일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어 아제르바이잔이 또 하나의 아프가니스탄화 할지도 모른다는 분석마저 나오고 있다.
한편 고르바초프 소련 공산당 서기장은 이번의 군사행동으로 분규지역에서 질서를 회복시킬 수 있는 시간을 버는 한편 내주중 소집될 중앙위원회를 시작으로 종합적인 민족문제 대책 수립에 착수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아무튼 이번 사태는 난마처럼 얽혀있는 소련 소수민족문제의 심각성을 다시 한번 드러내고 있다.
○수난사
소련이 겪고 있는 민족간 분규는 두가지 근본적 과오에서 비롯됐다.
그 하나는 레닌의 민족주의 존중을 원칙으로 민족정책을 소련의 지도자들이 따르지 않은 것이고,또 하나는 제정러시아시대의 러시아민족 우월주의가 그대로 이어져 온 점이다.
특히 「대러시아민족 우월주의」는 스탈린시대에 절정을 이뤄 소수민족에 대한 무자비한 박해가 가해졌다.
레닌은 볼셰비키혁명 당시 소비예트공화국내의 모든 민족에 자치권과 평등권이 주어져야 된다고 했으나 이를 충실하게 이행치 못했고,그의 뒤를 이은 스탈린은 오히려 소 연방의 해체와 재구성,그에 따른 영토획정 등에 각 민족의 의견과 요구를 무시했다.
스탈린은 2차대전이 끝날 무렵,대대적인 소수민족 숙청작업을 벌여 43년 10월과 44년 6월사이 1백여만명의 소수민족들을 중앙아시아와 시베리아로 강제 이주시켰다. 이때 쫓겨난 소수민족들은 체첸인 40만명,잉구시인 9만명,카라차이인 7만명,바루칼인 4만명,칼미크인 13만명,타타르인 20만명,독일인 38만명,한인 18만명 등이었다.
이들은 모두 「적국」에 대한 협력 등 반역혐의까지 받았고,이후 10년간 합법적 생존권이나 대표권도 갖지 못했다.
스탈린은 또 러시아민족의 전통과 문화를 전면에 내세워 소수민족의 종교 고유언어 등을 폐지 또는 탄압하기까지 했다.
53년 스탈린 사후 한 때 소수민족정책이 완화되는 듯 했으나 소련 경제상황이 악화되자 소수민족지역에 대한 투자계획 등을 취소하는 등 경제적 박해가 뒤따랐다.
이와 함께 각 공화국의 정부요직도 러시아인이 독점하다시피했고, 농촌을 집단농장화 하는 등 자치권을 방해했다.
이런 중앙정부의 정책에 영향받은 러시아인들도 토박이인 소수민족들에 대해 정치ㆍ경제적 우위를 앞세워 차별대우를 했다.
아제르바이잔공화국 사태도 종교나 생활관습 등이 러시아인들과는 결코 동화할 수 없어 반목이 심했던데다,차별대우와 경제적 박해가 겹쳐 민족감정이 폭발한 것이다.
○구성과 종교
프랑스의 소련문제전문가 헬렌ㆍ당코스 여사가 『소련에는 1억2천만명의 「반체제인사」가 있다』고 말한 것처럼 소련인구의 약 절반인 1억2천만명의 비러시아계 소수민족들은 소련 중앙정부에 반감을 갖고 있다.
2억8천만명으로 추산되는 소련인구중 러시아민족은 과반수를 약간 넘는 정도이며 나머지는 1백20여개 소수민족으로 구성돼 있다.
소수민족들은 종족간의 결혼풍습을 고수,고유한 혈통을 지켜가고 있다.
일부 공화국에서의 동족간 결혼율을 보면 카자흐가 93.6%,아제르바이잔이 89.8%,그루지야가 80.5%나 된다.
소련에서 사용되는 언어 또한 이 나라를 구성하고 있는 인종만큼이나 다양하다.
소련 헌법은 『소비에트 시민은 누구나 그들의 모국어(러시아어) 및 소련내 다른민족의 언어를 사용할 수 있다』고 밝히고 있으나 소련정부는 최근까지도 각급학교에서 러시아어의 사용을 강제해왔다.
이 때문에 한 때 1백30여가지에 이르던 언어가 70여가지로 줄어들었다.
그러나 대부분의 비러시아 공화국들은 러시아어를 외국어로 간주하면서 그들 고유의 언어를 사용하고 있다.
아르메니아인들은 자기들 공화국에서는 물론 러시아공화국 안에서도 자국어로 2세들을 교육하고 있을 정도다.
이밖에 키르기스ㆍ타지크ㆍ아제르바이잔 등 비러시아민족 공화국들에서도 러시아어 사용률은 극히 저조하다.
전체인구중 99.4%가 그들의 고유어를 사용하고 있는 그루지야는 소수민족중 교육수준이 가장 높다.
그루지야는 스탈린과 현 소련정부의 예두아르트ㆍ셰바르드나제 외무장관을 비롯,중앙정계에 많은 지도자들을 배출해내기도 했다.
방랑적인 기질이 농후한 러시아인들은 1897년까지만 해도 중앙아시아,우랄산맥 주변,볼가강 서북부 등 6개지역에 주로 거주했었으나 1926년경부터 동쪽으로 이주를 시작했다.
인종과 언어가 다양한 만큼 종교도 많을 수 밖에 없다.
아제르바이잔 사태에서 보듯이 7천여만명으로 추산되는 소련내 회교도들은 좀처럼 중앙정부의 권위를 인정하지 않아 중앙정부와의 마찰이 끊이질 않았다.
소수민족들의 종교는 단순한 신앙의 차원을 넘어 민족적 동질성을 보존해주는 강력한 접착제 역할을 하고 있다.
리투아니아 에스토니아 라트비아의 「민족전선」은 이들 지역의 기독교단체에 뿌리박은 정치조직이다.
발트3국중 리투아니아는 가톨릭이며 에스토니아 라트비아는 신교국이다. 이밖에도 그루지야와 아르메니아는 오랜 역사를 가진 기독교 공화국이다.
레닌은 20년대초 소련혁명 완수를 위해 『피압박 민족이여 봉기하라』는 구호로 소수민족의 민족주의 의식을 부추겼었다.
그 후 70여년이 흐른 지금 고르바초프는 『소련의 제민족이여 단결하라』는 캐치프레이즈를 내걸고 전임자들로부터 물려받은 숙명적인 유산과 싸우고 있는 것이다.<이상석기자>이상석기자>
◎급부상하는 동구 민족주의 /개혁부진땐 국수주의화 위험/유고ㆍ불가리아는 해체 위기… 독일선 극우파 확산/공산보수파 권력회복 노린 선동으로 사태 더 악화
개혁의 태풍이 휩쓸고 지나간 동유럽에 민족주의의 바람이 다시 거세게 일고 있다.
역사적으로 오랜 기원을 갖고 있는 동구의 민족주의는 동유럽을 하나로 묶어 온 공산주의 이념이 각국의 민주화 개혁으로 급속히 퇴조,이를 대체할 이념으로 새롭게 부각되는 양상이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추세는 동구국가들이 소련의 영향력에서 벗어나 독자노선을 강화하면서 더욱 확연해져 개혁전도와 유럽의 안정을 위협한다는 우려가 높아지고 있다.
소련에서는 발트3국을 비롯한 일부 공화국의 독립 소요사태가 정국을 긴장시키고 있으며 유고슬라비아와 불가리아는 민족간의 첨예한 대립으로 위기가 고조되고 있다.
또 동 서독에서는 2차대전 후 폴란드에 편입된 영토를 회복해야 한다는 극우적 주장이 나오고 있는 가운데 양국민 사이에 적대감이 고조돼 국가간 분쟁의 씨앗으로 자라고 있다.
현재 민족문제로 가장 시달리고 있는 동구국가는 유고슬라비아. 6개 공화국과 2개 자치구,15개 민족으로 구성된 연방국가인 유고는 강력한 지도자인 티토 대통령이 지난 80년 사망한 직후부터 고질적 민족대립이 되살아나 연방해체 위기에 직면했다. 가장 서구화되고 경제적으로도 발전한 슬로베니아와 크로아티아공화국은 세르비아인의 세력확장에 반발,연방탈퇴 움직임을 구체화 하고 있다.
유고의 민족분규는 지난해 3월 주민의 85%가 알바니아계인 코소보 자치구에서 세르비아인의 권리를 우대한 법안의 통과에 반발한 알바니아인의 유혈폭동 발생 이후 날로 격화돼 왔다.
특히 셰르비아공화국의 카리스마적 지도자인 슬로보단ㆍ밀로세비치 서기장이 앞장서 세르비아인의 민족감정을 부추기고 있다. 지난해말 슬로베니아 수도에서 개최하려던 세르비아인 집회가 슬로베니아 당국에 의해 금지되자 밀로세비치 서기장은 일시적으로 슬로베니아공화국과의 관계를 단절하는 극단적 행동을 서슴지 않았다.
마케도니아 등 다른 공화국에서도 반세르비아 바람이 거세다. 불가리아에서도 믈라데노프 서기장 등장 이후 터키계 소수민족 문제가 갑자기 돌출돼 심각한 분열상이 나타났다.
이 문제는 구랍 29일 믈라데노프 서기장이 회교도인 터키 소수민족에 대한 동화정책을 폐지하고 종교ㆍ문화적 권리를 보장하겠다고 발표한데서 비롯됐다.
이 발표가 있은 후 불가리아 전역에서 이에 반대하는 불가리아 민족주의자들의 시위가 연일 계속됐고,이 조치를 지지한 개혁파 공산당과 야당은 궁지에 몰렸다.
불가리아내 터키민족은 전체인구의 9분의1인 1백50만명선으로 축출된 지프코프 전 서기장은 지난 84년부터 이들의 터기어 사용과 종교의식을 금지시키는 등 혹독한 동화정책을 추진,30여만명이 터키로 탈출하는 사태가 벌어졌다.
불가리아인들은 14세기말부터 5백년간이나 오스만 터키제국의 지배를 받은 뼈아픈 과거 때문에 이같은 탄압정책을 지지해왔다.
불가리아 공산당은 지난 8일부터 터키인 동화정책 폐지에 반대하는 「국가이익 수호전선」을 포함한 65개 단체 지도자들과 사태해결방안을 논의하고 있으나 시위사태는 더욱 격화될 뿐이다.
여기서 주목할 점은 공산당내 보수파들이 그들의 권력회복을 위해 민족감정을 선동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같은 소수민족 문제는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루마니아ㆍ체코ㆍ폴란드 등 동구 각국이 공통적으로 안고 있다.
더욱 심각한 문제는 일개국가내 소수민족 분쟁이 아니라 국가간의 민족감정 대립이다.
동구국가들은 근세 이후에도 수없이 침략과 전쟁을 반복해 왔기 때문에 민족간 적대감정의 골이 깊다.
동서독에서는 통일열기가 고조되면서 『2차대전 패전으로 폴란드에 편입된 오데르 나이세강 서안지역을 통일독일의 영토로 해야 한다』는 극우적 주장이 고개를 들고 있다.
최근에는 폴란드인에 대한 적대행위가 나타나고 있어 양국간 외교문제로 번져가고 있다.
지난해 11월에는 동독정부가 물자부족을 핑계로 외국인에 대해 생필품 구입을 일체 금지시켜 3만2천명의 동독내 폴란드 노동자들이 큰 타격을 받고있다. 또 포츠담에서는 동독인들이 폴란드 노동자들의 승용차를 파괴하는가 하면 『폴란드인 꺼져라』는 벽보가 등장,폴란드주재 동독대사가 TV를 통해 공식사과하기도 했다.
동구국가들은 민주화 개혁이라는 공통적 과제 때문에 강한 연대감을 갖고 있지만,각국의 개혁이 순조롭게 진전되지 못하고 불안정한 상황이 확산된다면 민족주의는 점차 국수주의로 변질돼 동구의 신 질서를 위협할지도 모른다.
1차대전 직후 독립국가가 된 동구각국이 민족주의가 고조되면서 사회혼란에 빠지고 결국 이것이 2차대전을 부른 역사적 경험이 그 가능성을 뒷받침하는 것이다.<배정근기자>배정근기자>
◎소의 한인/40만명… 민족서열 29위 “과시”/최근 「연해주 이전 요구」 등 민족운동 발전 조짐
소련내에 사는 한민족의 수는 약 40만명. 소련 전체 2억8천만명중 0.14%로 소련의 1백20여 민족중 29위라는 적지않은 세를 구성하고 있다.
사할린과 시베리아 동부지역부터 우크라이나 평원지대와 서남쪽 국경지대 구석구석까지 광대한 소련땅에 흩어져 있지만 3분의2 가량이 중앙아시아에 집중해 있다.
특히 우즈베크공화국에는 수도 타슈켄트시 전체인구의 5%인 4만명을 포함해 18만명이 거주하고 있다. 이웃 카자흐공화국에도 수도 알마아타에 1만5천명,전체로는 10만명이 살고 있는 것으로 집계되고 있다. 또한 흘러간 역사의 과오로 외부로부터 고립된 사할린에는 3만5천명의 한인이 「인종의 섬」을 이루고 있다.
한민족이 소련에 유입하기 시작한 시기는 1863년께부터. 『연해주에 조선인이 나타났다』는 당시 극동초소 근무일지 기록이 이같은 추정의 근거이다.
극동개발에 치중해 있던 러시아제국은 각종 물리적 지원과 러시아인과 동등한 혜택을 미끼로 한민족 유입을 부추겼다. 일본 청나라 러시아의 각축으로 인한 정정의 불안과 잦은 흉년이 한민족의 집단이주를 재촉한 요인이 되기도 했다.
1884년 조로조약 체결로 귀화권까지 갖게 되자 청일전쟁이 발발한 94년 한해에는 1만명이 대거 두만강을 건너가 새 터전을 일궜다.
그러나 1917년 볼셰비키혁명의 소용돌이는 유산ㆍ무산계급으로 나뉜 러시아민족 동족간의 상잔으로 번졌고 체제강화를 위한 37년의 스탈린 강제이주 정책은 한인 이주사에 최대의 비극이었다. 한민족이 소련의 적국인 일본에 동조적일 수 있다는 스탈린의 「판단」에 따라 「48시간 이내」라는 단서가 붙은 명령장 하나로 18만명의 한인이 「제2의 고향」을 버리고 중앙아시아로 강제이주 당한 것이다. 이 과정에서 2천여명이 「처형」된 것으로 알려졌다.
또 비슷한 시기에 일본의 강제징용으로 사할린에 끌려간 한인은 또다른 집단을 형성해 현대사의 기민으로 버려졌었다.
스탈린주의 청산을 위한 글라스노스트는 스탈린의 「피해자」인 한인에게도 무관치 않다. 러시아화를 위해 폐쇄됐던 한국어 교육이 속속 부활하고 있으며, 「레닌기치」 「레닌의 길로」 등 순수 한글신문이 발행되기도 하며,중앙아시아지역 공화국의 의회와 정부에도 상당수가 진출해 있다. 이러한 민족적 응집력은 지난해 한인 지식인들에 의해 주도된 「민족자치주 설립」 「연해주 이주 요구」 등으로 발전해 집단적인 민족운동으로 전개될 조짐이다.<윤석민기자>윤석민기자>
□소련의 주요 민족구성(88년말 기준)
민족 인구(만명) 비율(%)
아르메니아 인 312 1.1
아제르바이잔인 620 2.3
백러시아 인 968 3.5
에스토니아 인 149 0.5
그루지야 인 507 1.9
카 자 흐 인 1,505 5.5
키르기스 인 365 1.3
라트비아 인 254 0.9
리투아니아 인 345 1.3
몰다비아 인 400 1.5
러 시 아 인 13,900 50.9
타 지 크 인 410 1.5
투르크멘 인 290 1.1
우크라이나 인 5,014 18.4
우즈베크 인 1,616 5.9
한 국 인 40 0.1
기 타 600 2.2
계 27,295 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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