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찍이 레닌은 『독일공산당 동무들은 역을 점령할때도 기차표를 사가지고 들어간다』라고 꼬집었다는데,독일인들이 법과질서를 존중하고 근면하게 살아가는 자세는 남다른데가 있다고 생각된다. 그런 특성은 그동안 동독의 변혁과정에서도 잘 드러났다.동독인들이 라이프치히와 드레스덴등지에서 개혁을 요구하며 시위하기 시작할때 그들은 점심시간과 퇴근후에 모였으며,직장일을 팽개치고 뛰어나가지는 않았다. 베를린장벽이 붕괴되고 수십만군중이 물밀듯 오가는 와중에서도 질서를 유지하려는 노력이 곳곳에서 발견되었다.
동ㆍ서베를린을 연결하는 버스정거장에 인산인해를 이룬 사람들은 버스를 타기위해 한시간 두시간씩 기다리면서도 어린아이를 동반한 가족과 노인들이 가장 먼저 버스에 타도록 무조건 길을 터주었고,거리의 관광인파에도 보이않는 질서가 있었다. 인파있는 곳엔 으레 혼란이있고 쓰레기더미가 남는 우리와는 너무달랐다.
그러나 질서정연하던 독일인의 기질도 실망과 분노가 지나치자 폭발하기 시작하여 동독 곳곳에서 「거리혁명」이 과열되고 있다. 비밀경찰의 정체가 밝혀지자 성난 시위대가 경찰본부를 습격했고,파업이 전국주요지역으로 확산되고 있으며 정부는 시위대의 난동과 절도ㆍ파괴ㆍ불법침입 등을 강력하게 단속하기 시작했다. 일부에서는 과열된 거리혁명이 혼란을 자초하여 개혁에 차질을 빚게될지 모른다고 경고하고 있다.
동독이 민주화속도를 늦춰 국민이 실망하고,혼란이 일어나고,결과적으로 통일을 외치는 소리가 높아질까봐 가장 우려하는 측은 서독이다. 동독인들 사이에 통일열기가 확산되어,통독을 경계하는 유럽에 불필요한 긴장이 고조되는 것을 원치않는 서독은 동독에 경제원조를 늘리는 조건으로 민주화와 자유선거를 계속 촉구해왔다.
오는 5월6일 동독이 최초로 실시하게될 자유선거를 앞두고 서독이 온통 선거지원에 나섰다는 외신은 우선 흥미진진할뿐아니라 남북관계에서 우리가 맡아야할 미래의 역할을 보여주고 있다. 서독의 정당들은 호넨커정권붕괴이후 생겨나 동독의 정당들에 자금과 선거운동전문가와 선거전략을 지원하면서 이번 선거에서 공산당을 패배시키기위해 합동작전을 펴고 있다. 서베를린시장 몸퍼,전 총리 빌리ㆍ브란트,서독의 사민당수 한스ㆍ포겔 등 중요인물들까지 동독사민당을 위해뛰고있다는 뉴스는 이미독일이 사실상 통일되었다는 느낌을 갖게한다.
한발한발 확실하게 통일을 향해서가되 불필요하게 주변국들을 자극하지 않고,상대방을 병합하는 대신 자기힘으로 일어나 합칠수 있도록 지원하는 서독의 역량이야말로 「기차표를 사들고 역을 점령하는」독일인 기질의 한 단면이라고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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