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동양철학 부흥/김용구 논설위원(메아리)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동양철학 부흥/김용구 논설위원(메아리)

입력
1990.01.19 00:00
0 0

반도의 운명은 둘레로부터 문화의 침투를 보는 것이다. 그러나 반도의 경이로움은 그런 외부의 침투 속에서 더 높은 문명의 발상지가 됐다는 것. 한반도도 예외가 아니다.이 강토에는 고색창연한 사찰과 함께 옛 사당,서원,또 비교적 근래의 성당ㆍ예배당ㆍ사원이 산재해 있다. 그것들은 줄기와 기풍을 달리하는 정신계의 풍물이다. 여러 세기에 걸쳐 그런 풍경 속에서 살아오는 한국인에게 그런것은 낯익지만 한국인의 정신문화지도는 장히 복잡하고 접근하기 어렵다. 그뿐인가. 현대에는 고등교육기관을 통해 더많은 사상문화가 전파된다.

일제말에 경남 산청에서 한학을 배운 한 젊은이가 경성제대예과를 거쳐 철학과에 들어갔는데,이후 그의 경력이 장관이다. 순수철학(서양철학)을 전공하고 <헤겔에 있어 자기의식의 전개> 라는 졸업논문을 썼다. 해방뒤 대학에서 강의하다가 동란으로 고향으로 가서는 농고교사를 했다. 그러면서 그는 촌로한테 음양오행설 및 풍수지리설을 배우고 어떤 오득을 체험했다. 이리하여 그는 중국철학을 공부했다.

초야에 묻혀 그는 십년세월을 보냈는데 4ㆍ19직후 연세대에서 동양철학강의를 맡아 상경했다. 그리고는 한국유학사를 강의하게 된다. 이를위해 그는 일년의 준비를 했다. 중국철학강의를 기초로 한국성리학연구에 몰두하는 한편,불교철학을 하는 범과 스님을 찾아 불교사상을 익혔다.

이렇듯 그는 고대 그리스에서 헤겔 또 후세들까지의 서양철학 및 유ㆍ불ㆍ도를 섭렵한 뒤,한국성리학을 천착했다. 그러면서 일련의 논문을 발표한다. 처녀논문은 <인문과학> 7호(1962년 6월)에 실린 「이기론에 대한 고찰」. 이것으로 나는 그의 이름 배종호를 처음 알았다. 그의 강점은 서양철학을 하고 동양철학에 들어간것. 그는 이기론을 펴는데 탈레스ㆍ아낙시메네스,헤라클레이토스를 원용하는 비교철학적 접근을 하고 있다. 동양철학의 비경을 탐구하는 새문을 열었다. 그해 12월 <인문과학> 8호에는 「이조유학소고」를 발표했다. 화담ㆍ퇴계ㆍ율곡ㆍ녹문ㆍ한주ㆍ노사에 관한 고찰인데,뒤의 그의 업적을 예기케했다.

한국성리학에 대한 그의 연구는 70년대 들어서 <한국유학의 본질> 이란 주제로 본격화됐다. 연대도서관이 소장하는 고적 3천여권이 특별대출되어 그의 연구실로 드나들었다.

이 무렵 나는 성균관의 한 직원과 어울린 주석에서 그를 처음 만났다. 그리고 몇해 뒤 그의 명저 「한국유학사」(1974)가 출간됐다. 이것은 주로 형이상학을 위한 한국성리학의 논쟁사를 파헤친 것인데,퇴계와 율곡의 주리와 주기문제와 양파의 대립,사단칠정론과 인심도심설,호락논쟁,유기론과 유리론 그 절충론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하였다.

우리학계에서 동양철학의 르네상스를 가져오고,또 일반교양인의 조선시대사상에 대한 관심을 부르는데 이 저작의 구실이 컸다. 이때부터 그는 한국의 동양철학 또 조선성리학 부흥의 대명사로 내외에 광채를 발했다.

그는 결코 연구실에만 박혀있는 학자는 아니었다. 방학동안에는 그가 초대 회장으로 주재하는 한국동양철학회의 후학들과 정신문화의 고향을 순례했다.

지난날 낙산사ㆍ성불사ㆍ도리사ㆍ부석사,또 남계서원ㆍ동락서원ㆍ봉화서원ㆍ채미정등에 그와 후학들과 청유하던 기억이 새롭다. 그는 곧잘 동방문화의 삼대 흐름으로 유ㆍ불ㆍ도를 말했다. 그는 유학을 집대성했지만,풍모는 오히려 도인같았다. 소박하고 온유하며 형식에 매이지 않았다. 학문도 학문이지만 구수한 인간미와 개방된 정신성에 매료되어 젊은 학도들은 사상의 고향을 순례했다. 그가 마지막 떠나간 강토는 쓸쓸하지만,그가 불붙인 학문부흥을 이어가야한다.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