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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 중용시대/박승평 논설위원(메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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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 중용시대/박승평 논설위원(메아리)

입력
1990.01.1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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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달라지는게 놀랍기만 하다. 어제까지만 해도 나라 안팎에서 목청 크고 힘센게 최고였던 극단주의 풍조가 썰물 빠지듯하면서 중도노선이 안방차지를 하기 시작했다.중도란 극좌모험주의나 보수반동을 피해 좌우익의 중간에 서서 어느쪽에도 기울지 않는 정치적 입장을 뜻한다. 이 때문에 중도노선은 양당정치에서는 성립될 여지가 적고 다당제 아래 연립정권이 설때 영향력을 갖는다. 중도주의의 장점은 정치적 안정인 것이지만 정치상황에 따라 개혁의 입장일수도 있고 보수의 입장일수도 있다고 정치학에서는 정의한다.

물론 단점도 있다. 이 소리도 저 소리도 아닌,간색을 표방하다 보면 잡다한 파당이나 색깔이 정치적 이익배분의 목적만으로 이합집산하는 명분구실에 끝날수도 있는 것이다.

정계개편의 윤곽이 차츰 안개가 걷히듯 조금씩 드러나기 시작했다고 한다. 보수ㆍ온건ㆍ중도를 표방하는 보수연합으로,서로 돌아가면서 집권하거나 권력을 배분하는 연립정권이 가능한 쪽으로 여ㆍ야당의 구미가 당긴다는 것인듯해 내각제 거론과도 맞물려 있는것 같다. 또한 35년간 파벌끼리 돌아가며 집권해온 일본의 자민당을 모델로 한것이라는 소리마저 들린다.

그런데 사태가 이쯤 왔으면 중도의 진정한 의미가 무엇인가도 한번 살펴봄직 하다.

중도란 원래 불교의 근본적 입장을 뜻하는 종교적 의미를 지닌다. 대립과 집착을 떠난 비유비공의 불타의 해탈한 경지를 중도라 부른다. 그래서 불교에서는 중도의 경지가 대립적인 견해의 이중 부정에서 가능해지며 그때에야 진실과 절대가 가능해진다고 보고있는 것이다.

중도와 같은 뜻으로 중용이 있다. 유교에서는 중이란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는다는 뜻이고 용이란 평상을 뜻해 인간의 본성을 따르는 도리를 중용이라 부르는 것이다. 서양의 윤리학에서도 중용론이 있다. 아리스토텔레스 윤리학의 중심사상의 하나인데 덕은 과잉과 과소의 어느쪽에도 치우치지 않는 중간에 있는 것이라는 설이다. 그런데 이 학설에서는 극단이 있어서 중용이 생긴게 아니라 중용이 있어서 양극단을 비로소 가늠할수 있다는 중용중심의 입장인 것이다.

오늘날 세계의 사상과 이념도 따지고 보면 두가지 이념이 상호보완하고 혼재하는 중도쪽으로 가고 있는 추세이다.

공룡과 같았던 초기 자본주의가 30년대의 대공황을 계기로 뉴딜정책을 통해 평등과 균배의 요소를 과감히 가미한 것이나,공산주의가 그 경직성으로 빈곤의 평준화만 초래한 끝에 오늘날 자유와 혼합경제의 실용노선을 앞다퉈 택하고 있는것이 바로 중도추세를 반영하는 것에 다름아닌 것이다.

중도나 중용의 깊은 의미에다 세계의 추세마저 뒤따르는 오늘의 세계는 어찌보면 새로운 중용시대로 진입하는 것만 같다. 국내에서의 정계개편이 이같은 중도나 중용의 참도리도 모른채 나눠먹기식의 입발린 경거망동이 아니길 바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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