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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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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입력
1990.01.1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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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 오래된 이야기다. 아일랜드의 작가 버나드ㆍ쇼가 상해를 방문했다. 며칠을 두고 궂은 비가 내리더니 마침 햇빛이 비쳤다. 마중 나온 사람이 기뻐서 말했다. 『당신은 행복하오. 상해에서 태양을 보게 되다니』 이 말이 떨어지자 방문객은 이렇게 받아 넘겼다. 『아니오. 저 태양이야말로 행복할 것이오. 상해에서 버나드ㆍ쇼를 보게되니까 말이오』 재기도 재기 나름,이쯤 되어야 깊은 인상을 남긴다. ◆신설 문화부를 이끌 이어령 초대 문화부장관은 취임 즉시 종횡무진하게 박식의 경륜을 펼쳐가고 있다. TV에 나서랴,기자회견을 하랴,정책구상을 하랴,하루를 열흘처럼 쪼개 쓰는 듯 바쁜 모습이다. 확실히 종래의 신임장관들과는 다르게 특색이 있고 말씀엔 재기가 번뜩인다. 미켈란젤로에서 앙드레ㆍ말로까지,전통문화에서 신바람 운동으로 화제는 거침이 없고 풍부하다. 「문화가족」에 햇빛이 비칠지,그런 햇빛을 보게된 문화가족이 기뻐해야 할지 아직은 모르겠다. ◆재기 넘치는 발상대로라면 르네상스가 드디어 새로운 문화행정으로 실현될 것만 같다. 까치소리전화로 문화창달의 여론을 듣겠다고 한다. 지방문화원을 활용하여 문화사랑방 운동을 전개할 것이며 그림엽서 보내기로 청소년의 정서를 돈 안들이고 순화시키겠다는 구상도 내놓았다. 문화에 잔치가 빠져서야 되겠는가. 범종교 축제,멋과 맛 지키기 운동도 빼놓을 수 없을 것이다. 그렇다. 집 없는 예술인이 어떻게 여유있게 창작활동을 할 수 있을까. 예술인의 집도 지어야지. ◆하나 하나가 기발하고 설명엔 재기가 서린다. 그런데 듣고 나면 공허하다. 그 재기가 좀체 가슴에 와 닿지가 않는다. 귓가에서 윙윙거리다 어디론가 사라져 버리는 것 같아 안타깝다. 문화발전이 재치로 된다면 복잡하고 어렵게 생각할 것도 없지 않을까. ◆문득 노자와 장자의 말이 떠오른다. 「총명과 예지를 어리석은 듯 지키라」고 했고 「재와 부재의 사이에 처하라」고 했다. 문화란 관청이 앞장서서 이리 저리 휘저을 것이 아니다. 혹시라도 문화의 관존민비가 있다면 큰일이다. 재기도 무게가 있어야 감동을 주고 승복하게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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