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1월24일 하오 서울 구로구 오류동 소망비디오테이프가게에서 발생한 모녀피살사건은 단란했던 지모씨(31ㆍ회사원)의 가정을 한순간에 풍비박산 내버렸다.경찰은 지씨부인(26)을 28군데나 칼로 찌르고 어린딸(3)까지 8곳을 난자한 잔인한 수법으로 미루어 원한에 의한 살인으로 초점을 맞춰 수사해왔다.
비록 국졸의 학력이나 일찍부터 익힌 기술을 인정받아 경인지역의 모주물 공장장으로 부인과 맞벌이하며 보다나은 생활을 꿈꿔온 지씨는 아무리 생각해봐도 원한을 살만한 과거가 전혀 없었다.
악몽속에서 헤어나지 못하던 지씨는 범인의 얼굴이라도 보고 「원한」을 규명해야 가족들의 한을 풀수 있다는 생각에서 결혼초부터 저축해온 5백만원을 몽땅 찾아 현상금으로 내걸었다.
사건발생 21일이 지난 구랍15일 서울 구로경찰서 형사계 오병렬경장(35)에 의해 검거된 살해범은 뜻밖에도 10대 소년이었다. 금품을 노려 가게에 침입했다가 부인이 반항하자 잔혹하게 살해하고 달아났던 것이다. 지씨는 약속대로 왕경장에게 현상금 5백만원을 전달했으나 왕경장은 사건을 해결한 공으로 특진되고 현상금을 받는 것을 당연히 생각하는 여느 경찰과 달랐다.
80년 전북 진안에서 돼지를 사육하며 영농후계자의 꿈을 설계하다가 돼지파동으로 빈털터리가 돼 가족을 데리고 무작정 상경,경찰에 투신했던 자신의 암담했던 과거가 지씨와 비슷하다고 생각했다.
이 사건을 배당받고 무척 가슴이 아팠다는 왕경장은 가정파괴범을 기어코 잡겠다는 집념으로 혼신의 힘을 기울여 사건을 해결했다. 주위에서 부러워하는 현상금을 놓고 곰곰이 생각해온 왕경장은 지난9일 문닫은 비디오가게에 찾아가 『경찰관으로서 책무를 다했을 뿐』이라며 한사코 거절하는 지씨에게 5백만원을 고스란히 되돌려 주었다. 그 5백만원에는 민생치안경찰의 자책과 미안감도 실려있는 듯 했다.<유명상기자>유명상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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