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권 재창출 불구 정체성 취약/당 민주화로 「들러리」 극복 시급민정당이 15일로 창당 9주년을 맞는다. 1년전 5공청산의 늪속에서 헤어나지 못했던 「참담한」 상황에서 8주년을 맞았던 데 비하면 민정당은 새로운 지평에서 이날을 치르게 됐다.
90년대의 초입이자 6공 중반기라는 시대적 의미와 2년여 당의 운신을 제한했던 5공청산문제가 최소한 정치권에서 해소되었다는 상황적 의미는 작금의 당좌표와 위상을 크게 변화시키고 있는 것이다.
민정당은 지난 8년간 이날만 되면 제2의 창당을 버릇처럼 외쳐옴으로써 역으로 당의 한계와 과제를 드러내왔다. 민정당은 올해 다시금 같은 구호를 표방,한계의 극복과 과제의 수행을 다짐하고 있지만 이번의 경우 제2창당의 내용여하에 따라 당의 생명력이 시험받는다는 절박한 입장이다.
일견 12ㆍ15 대타협으로 5공의 부담을 떨쳐내고 6공의 정치운신을 극히 좁혀왔던 4당 정립체제의 재편이 활발하게 논의되고 있는 점 등은 민정당에 호재로 비칠 수 있다. 그러나 이같은 여건은 5공의 모순이 집약표현된 6ㆍ29선언,이에 뒤이은 헌정사 첫 정권 재창출 정당이란 자부로도 씻지 못했던 민정당의 「생래적」 한계를 재차 위협하는 것이기도 하다.
바꿔 말해 비록 지역성에 기초하고 있긴 하나 4ㆍ26총선에서 드러난 민심의 이반은 엄연한 현실이고 이 민심앞에서 집권당으로서의 정치력을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시험받는 계기가 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시험의 결과는 단기적으로는 올 상반기 실시예정인 지방의회선거에서 명확히 표현되겠지만 점차 구체적 모습을 드러내고 있는 정계개편 논의 및 방향과도 관련,민정당의 권력적 속성에 대한 평가도 뒤따를 전망이다.
돌이켜보면 80년 신 군부의 주도아래 민한당ㆍ국민당 등 야당을 자함으로 거느리고 기함처럼 출범했던 민정당이 6공출범 이후 이른바 5공비리와 동일시되면서도 버텨오는 과정에서 나름의 생존기법을 체득했다고 볼 수도 있다. 전두환 전대통령의 「유배」에서 보듯 5공정권의 정통성이 명백히 부정되고 민족ㆍ민주ㆍ정의ㆍ복지ㆍ통일 등 5대 이념이 근본부터 부인된 이상 당의 존립 자체가 아이러니라는 지적도 적지 않다.
민정당이 정권 재창출이란 형식적 의미에 기대며 6공호로 옳겨 탄 후 5공의 청산과 단절이란 역설적 상황에 적응하는 가운데 여전히 정체성의 위기를 떨치지 못하고 있음은 이 때문이다.
이와함께 기존의 여야개념에 비춰 집권소수당으로 전락한 4당구도,대통령과 당의 평가가 2원화되는 구조 등은 「전두환민정당5공비리」로 등식화되는 정치현실속에서 생존자체에 대해 부단한 의문을 제기하기도 했다.
때문에 노대통령이 지난해 창당기념식에서 『민정당은 어느 누구보다 자기혁신과 정신혁명에 앞장서야 한다』고 강조한 것은 「거듭남」의 각오없인 민정당의 소멸이 불가피하다는 경고의 의미로 해석됐다.
어쨌든 민정당은 세기말이라는 90년대의 시대적 의미부여에 힘입어 정치권의 편의주의적 5공청산 방안을 적당히 소화해냄으로써 새로운 국면에 서게 됐다.
그러나 5년 단임의 6공정부를 뒷받침해야 하는 민정당의 향후 과제는 결코 5공청산문제보다 쉽다고 볼 수도 없다. 금년이 시기적으론 6공 중반기지만 단임에서 비롯되는 집권말기의 필연적인 「레임덕」 현상을 감안한다면 사실상 집권후반기와 다를 바 없다. 당장 미래적 과제인 자생력 배양을 근간으로 차기 대권구도와 관련한 채비를 서둘러야 한다는 얘기가 전향적으로 검토되기 시작한 것도 이 때문이다.
정권에 의해 급조된 정당인 만큼 형식적으로 정권을 재창출했다 하더라도 그 의미가 퇴색할 수밖에 없음을 체득한 민정당의 당면숙제는 역시 당운영의 민주화와 활성화로 귀결될 수밖에 없다.
따지고 보면 정체성의 위기란 것도 정권의 들러리역 밖에 못해온 과거 집권여당의 색채가 민정당에 그대로 배있기 때문일 것이다.
민정당으로선 전 전대통령 은둔ㆍ국회증언ㆍ정호용의원 사퇴 등 5공청산 과정에서 빚어진 범여권의 이반현상을 추스리는 것도 급선무일 수 있다.
그러나 더욱 중요한 것은 당의 의사결정 과정을 공개ㆍ민주화함으로써 다양한 목소리가 자발적으로 표현ㆍ수렴되는 장치를 마련하는 일이다. 올 4월께의 전당대회에서 당헌개정을 통한 부총재 경선장치를 마련하는 게 주목을 끄는 것도 이 때문이다.
당총재인 대통령 한곳으로 힘의 균형이 쏠리는 현체제가 표면적 일사불란함 뒤에 불필요한 잡음과 갈등을 증폭시킨다는 지적도 많다.
아울러 노대통령이 야총재들과의 회담에서 『여당이 국정운영을 독식하던 시대는 지났다』며 정계개편의 방향을 제시한 데 대한 여권의 공감대를 끌어내는 일도 또다른 과제다.
민정당이 창당기념식에 천명할 『범민주세력에 항상 문호를 개방해 놓고 있다』는 말은 당밖뿐 아니라 당내로도 그대로 돌려져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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