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조건 따져가며 빌려가/단자사등선 예금고객 꺼려시중에 돈이 넘쳐나고 있다. 이때문에 일부 돈은 갈곳을 몰라 방황하고 있는 사태까지 빚어지고 있다.
지난 11월이후 정부의 「11ㆍ14 경제종합대책」과 「12ㆍ12 증시부양책」으로 시중에 막대한 돈이 풀렸다는 건 잘 알려진 사실이지만 이 돈이 일부는 기업자금으로 흘러들어가고 일부는 은행ㆍ단자사ㆍ증시 등으로 몰려 최근들어 「돈은 많은데 쓸 사람은 없는」 과잉상태가 빚어지고 있다. 특히 일부 단자사의 경우엔 CMA(어음관리구좌)로 들어오는 돈을 마땅히 운용할데가 없어 『돈을 가져오지 말라』며 예금하러오는 고객들을 은연중 내키지 않아 한다는 것.
전과같이 많으면 많은수록 좋다는 식으로 돈을 받았다간 이자는 연 14.6%의 고금리로 물어주어야 하는데 정작 이돈을 그 이상의 수익률로 운용하지 못할 가능성도 있어 자칫 역마진(수신금리보다 대출금리가 낮아 금융기관이 그 차이만큼 손해보는 것) 현상을 빗게 될 수도 있기 때문. 기업이 전에는 상당히 높은 금리에도 돈을 못구해 난리였는데 이제는 자금사정이 좋아져 단자사의 돈도 이자가 싼 자금을 골라서 가져가려고 든다는 것이다.
이처럼 기업들이 돈을 골라서 쓸 정도로 여유가 생긴 것은 시기적으로 기업의 자금수요가 그다지 크지 않은탓도 있지만 무엇보다도 시중에 돈의 절대량이 많이 풀려있기 때문.
정부의 부양책 기조하에서 최근 시중엔 지난해 10월말보다 불과 70일 사이에 7조3천억원의 돈이 더 풀려있다. 11,12월중에 풀린 돈이 6조3천억원,올들어 열흘 사이에 풀린돈이 1조원가량이다.
이중에서 지난해 두달동안 풀린돈의 절반가까이가 대기업으로 흘러들어간 것으로 추정된다. 「12ㆍ12 증시부양책」 이후 대기업들이 그동안 재테크용으로 사뒀던 주식들을 잽싸게 대거 처분,현금화 했다는 얘기다.
당시 투신사가 사들인 주식규모가 2조8천억원어치인데 투신사가 무얼 얼마어치 살는지(매수주문)를 미리 알 수도 있는 대기업이 많은 주식을 팔아 치웠다는 것이다.
또 금융기관 예금으로도 돈이 많이 흘러들었다.
특히 상대적으로 고수익상품으로의 유입이 두드러져서 예금은행 신탁계정엔 12월 한달간 1조1천48억원의 돈이 급증했다. 연말을 앞두고 무리하게 계수를 늘리려는 계수부풀림이 다소 있었던 듯 올들어 3천8백억원이 다시 빠지고 있으나 그걸 감안하더라도 한달사이에 이처럼 급증한 것은 이례적이다.
단자사의 CMA엔 지난해 12월중에 6천5백억원의 돈이 더 늘었고 올해 들어서도 지난 9일 현재 3천억원이 더늘어 급증세를 기록하고 있다. 이에 따라 88년말 금리자유화 당시 5조2천9백43억원의 수신고를 기록하다 계속줄어들던 CMA는 지난해 6월엔 수신고가 4조7천억원까지 내려갔다가 다시 6조3천억원대로 높아졌다.
증시의 고객예탁금도 지난해 12월 이후 최근까지 7천억원가량이 늘었다.
시중금리측면에서 보더라도 단기자금 사정 지표인 은행간 콜금리와 단자사간 콜금리가 모두 11%대로 떨어졌다.
한때는 단자사간 콜금리가 은행간 콜금리보다도 더 낮기도 했다. 그만큼 자금사정이 여유가 있다는 징표다. 다만 중장기 지표인 통안증권 유통수익률,회사채수익률은 크게 변동하지 않고 있는데 이는 통화긴축 등의 우려를 떨치지 못하고 있기 때문.
통안증권유통수익률(3백64일만기)과 회사채수익률(3년만기)은 다소 하향추세를 보이면서도 여전히 14%대와 15%대를 각각 넘지못하고 있다.
각 부문마다 돈이 넘치고 있으므로 기업으로 선 회사자금사정에 여유가 있기 때문에 전처럼 금리의 고저와 대출기간의 장단을 가릴 것 없이 돈을 가져가려던 행태를 벗어나 안정적으로 금리가 낮은 돈만을 골라가려고 하는게 당연하다. 그러니 단자사로선 대출할 곳도 정하지 않은 채 무조건 돈을 맡기라고 할 수는 없는 노릇이고 풍성한 여유자금은 제갈 곳을 못찾고 있는 것이다.
설날 자금성수기를 앞두고 1주일가량은 더 이런상태가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이같은 돈의 홍수상태에서 투기가 아직 일고있지 않은게 그나마 다행이다. 이는 미흡하나마 토지공개념의 시행,정부의 투기조사강화 등의 여파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이와 같은 자금여유 상태에서도 돈은 또 더풀릴 전망이다. 이번달에 만기도래되는 통한증권의 상당량이 현금상환돼 시중에 곧바로 풀려나갈 가능성이 커지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돈이 많이 풀려있는데도 증시는 종합주가지수 9백선까지 밀리며 오락가락하는등 큰 변화를 보이지 않고있다. 이는 증시가 시중돈의 과다에 의해서만 직접적으로 좌우되는게 아님을 말해주고 있는 셈이다. 물가는 벌써 크게 흔들리고 있다.
이는 통화팽창 위주의 경기부양책이 갖는 한계와 문제점을 드러내주는 사례로 지적되고 있다.<홍선근기자>홍선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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