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정당이 11일 소속의원과 원외지구당위원장 연석회의에서 개최한 토론회는 90년대의 당면 정치현안을 놓고 다양한 당내의견을 우선 수렴한다는 취지에서 당직개편이후 참신한 출발을 도모하는 모양을 갖추기에 충분했다. 특히 이날 토론에 참가한 참석자들은 때로는 격앙되면서도 시종 진지한 모습으로 자신의 의견을 활발히 개진함으로써 『오랜만에 막혔던 당내 언로가 트이는구나』하는 감탄사를 자아내게도 했다.그러나 이처럼 고무적인 토론회장의 분위기와는 달리 앞서 열린 의원총회에서는 집권여당의 여전한 한계를 느끼게 할 만한 또한차례의 「연출」이 결과돼 씁쓸한 뒷맛을 남기기도 했다. 이날 의원총회에 상정된 안건은 정동성원내총무 임명동의의 건.
회의장에는 무기명 비밀투표에 의한 동의절차를 밟기 위해 기표소와 감표위원석까지 마련돼 있었고 당사자인 정총무 자신도 진작부터 투표에 의한 인준을 희망해오던 터였다.
하지만 이날도 역시 만장일치 기립박수의 일사천리 방식이 채택되고야 말았다. 당헌 47조 3항의 총무 임명동의규정을 준수하려 하면서도 끝내 투표에 의한 방식을 수용하지 못한 사연은 우스꽝스럽기까지 하다.
6ㆍ29정신을 바탕으로 당내 민주화를 위한다는 차원에서 지난 88년 2월 임명동의 규정을 당헌에 신설했지만 당총재가 하위당직자를 임명하는 것은 당권의 상하관계에 의한 것이므로 「규정 자체가 잘못됐다」는 주장이 그것이다. 잘못된 규정에 더이상 연연할 필요는 없으니 전임총무들의 인준에서와 같이 「관례」에 따르자는 발상은 그러나 자신이 만들어놓은 당헌규정을 스스로 부정하는 자가당착이 아닐 수 없다.
그렇다면 신설된 당규야말로 민주화라는 상품을 그럴 듯하게 포장한 것에 지나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일까. 사실 이날의 인준절차가 부표나 기권표 등으로 인한 잡음의 소지를 우려한 나머지 「사전조정」에 의해 관례를 준수키로 했다는 후문이고 보면 더더욱 납득이 안간다. 민주화를 하자는 마당에 어찌 보면 산표야말로 당연한 결과로 받아들여질 수도 있는 것인 만큼 투표에 의한 요식행위 자체로서 의미를 부여하지 못한 것이 아쉽다는 생각이다.
임명권자인 총재의 결정에 반하는 결과가 나오는 것을 염려하기 이전에 탈권위주의와 당내 민주화의 지름길을 찾는 일이 더욱 시급하다고 믿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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