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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수신의 세계/박승평 논설위원(메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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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수신의 세계/박승평 논설위원(메아리)

입력
1990.01.0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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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이면서도 인간의 체온이 동시에 느껴지는 그리스 신화의 세계는 재미가 그만이다. 그 중에서도 목신으로 알려진,허리 위쪽은 인간모습이요 반은 동물의 형상을 한 반수신 판의 존재는 이색적이다. 춤과 음악을 좋아하고 연애를 즐기는 판의 집요한 구애에 쫓긴 에코요정이 몸을 숨겨 메아리로 변했고,시링크스도 갈대로 변신,위기를 모면했으며 그 갈대로 피리가 만들어져 청아한 소리를 후세에 남기게 됐다는 아름다운 얘기들이다.그런가하면 판은 악행도 일삼아 잠자는 사람들에게 악몽을 일으키고 나그네에게 갑자기 겁을 주기도해 무서움과 공포를 뜻하는 패닉 (PANIC)의 어원이 되기도 한다.

이처럼 신성과 수성이 그의 모습처럼 마구 뒤섞인 반수신의 세계야 말로 어찌보면 오늘의 우리 삶과 엇비슷하지 않을까하고 엉뚱한 생각도 한번 해보는것이다.

우선 「메아리」라는 이름을 딴 이 칼럼이 존재하는것 부터가 우연의 일치인지 모르지만 아직도 반수신이 있는것처럼 느껴지게 한다. 그리고 온갖 인물과 사상과 선악과 생산 및 파괴가 한데 어우러져 마구 소용돌이치는 현실이 곧잘 또는 그런 망상을 일으키게 하는 것이다.

집권당의 청산후 첫 당직개편을 봐도 대표는 3공시절부터 이름을 얻고 5공땐 최고권력자의 사돈이 됐던 사람이고 나머지 요직도 청산때 이름이 오르내린 4성장군 출신과 전임자의 직계 충성파 인사였던 사람들로 채워졌다고 한다.

3ㆍ5ㆍ6공의 사람들이 청산이후 정국을 맞아 마치 포철 용광로의 원광처럼 뒤섞여 쓰이고 제련되는 시점인 것이다.

또 유신본당과 반유신의 기수였던 정통야당이 현실적 필요에서 협력과 합당을 공공연히 논의하기도 한다.

최근 외국의 어느 학자는 공산주의의 몰락과 냉전체제의 붕괴사태를 상징하는 동구의 변화를 보면서 그곳을 「사상의 공동시장」이라고 표현했다. 지금까지는 경제적인 의미의 서구 공동시장이 있었을 뿐이지만 이제는 허물어진 장벽 너머로 상호 이해와 동의를 구하려는 사상의 공시라는 새 세계가 전개된다는 논지였다.

우리도 이 학자의 공시론을 한번 국내 현실에 대입해 보면 바야흐로 사람과 정당과 계층간의 온갖 공동시장이 마치 반수신의 세계처럼 들쭉날쭉 이루어지기 시작한 것일수도 있다. 그 모든 시장에서 왁자지껄 흥정과 대결과 거래가 진행되는 과정에서 우리는 지금 목표는 세웠지만 더러 옛 타성에 젖었거나 구체적 흥정방법을 모른채 한꺼번에 몰려다녀 혼란과 불안의 과도기를 겪고 있는 것으로 생각할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제는 값이 일방적으로 정해져 내려왔던 시절이 끝장난 것만은 확실하다. 그래서 자유스런 공동시장에서 진짜 중요해지는건 사람들 마음속의 잣대이다. 옥석을 구분하고 물건이나 사람들의 값어치를 냉철히 가늠할줄도 아는 생산적인 시민의식과 전문성이야말로 소중한 시민 모두의 잣대이고,반수신의 혼란스런 세계를 벗어나게할 키잡이가 되는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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