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삼 민주당총재와 김종필 공화당총재가 6일 발표한 합의문을 읽으면서 우리는 짝이 잘 안맞는 결혼식에서 축하할 말을 찾지못해 애쓸때처럼 착잡해진다. 두사람은 합의문에서 우정과 소신으로 긴밀한 협력관계를 구축하여 급변하는 국내외 정세속에서 큰 정치 새질서를 이룩해 가겠다고 다짐하고 있다.우정이란 말에서 우리가 어쩔수없이 연상하게 되는 것은 김영삼ㆍ김대중씨의 관계이다. 유신말기의 어두웠던 시절 민주화를 위한 불굴의 투쟁으로 굳게 뭉쳤던 두사람은 마침내 유신정권이 무너졌을때 뜨겁게 포옹하며 영원한 우정,변할 수 없는 동지애를 과시했었다. 그 장면을 떠올리며 우리는 쓸쓸하고 쑥스러워진다.
우리는 정치가의 우정을 믿지 않는다. 더구나 김영삼ㆍ김종필씨가 골프 몇번치고 나서 우정 운운하는 것은 국민을 낯간지럽게 한다. 영원한 적도 영원한 동지도 없는 것이 정치의 세계라고 하지만,김영삼씨는 왜 오랜 동지였던 김대중씨 대신 과거의 적이었던 김종필씨와 우정을 맹세하게 되었는지를 국민앞에 설명해야 한다.
김영삼씨가 과거의 감정에 얽매이지 않고 「유신본당」임을 자처해온 김종필씨와 협력하여 정치풍토를 개선하겠다는 것 자체는 환영할 만한 일이다. 선명투쟁의 정치행태를 청산하고 정책경쟁을 전개하여 새로운 시대상황에 능동적으로 대처해야 한다는 두사람의 인식에도 많은 국민이 동의할 것이다.
그러나 어떤 사람들은 두사람의 협력관계가 새정치ㆍ새질서를 위해 자신을 버릴수도 있다는 각오에서 나온것이 아니고,또 다른 욕심에서 나온것이 아닌가 의심하고 있다. 그들의 협력은 정국주도권상실을 우려한 당리당략에서 성급하게 나온것이고,출신성분이 다른 정당끼리의 무의미한 야합이며,김대중 포위작전이라고 혹평하는 사람들도 있다.
현재의 4당체제는 그안에 몸담고 있는 정치인들 뿐 아니라 국민들까지 피곤을 느끼고 있고,다가오는 지자제선거와 대통령ㆍ국회의원선거에서 국민에게 명분도 없는 선택의 어려움을 다시 강요하게 될것이다. 오늘의 정치구도는 국민이 만들어준 것이라는 주장도 있으나 그것은 분열의 결과였을 뿐 국민이 원했던 구도는 아니었다.
민주ㆍ공화당의 협력내지 통합이 지지부진했던 정치에 활력을 붙어넣고,선명투쟁대신 책임있는 정책경쟁을 자극하게 된다면 다행스런 일이다. 그들은 모험을 시작한 이상 성공해야 할 것이나,정치가의 우정과 소신을 못믿는 국민이 많다는 사실을 인식하고,또하나의 추태가 벌어지지 않도록 스스로를 경계했으면 한다. 그리고 평민당과의 협력이 왜 불가능한것인지 다시한번 사심없이 생각해보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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