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선 「규제」발표 한달만에 변칙승인/재벌앞에 정책원칙 “무기력”삼성 럭키금성 한국화약 코오롱 동아등 5개재벌그룹에 의한 최근의 골프장건설 추진파문은 단지 은행빚이 많은 기업에 대한 여신관리상의 문제점 차원을 넘어 90년대 한국경제가 진입초기에부터 여전히 불안한 출발을 하고 있다는 징표로서 심각하게 받아들여지고 있다.
경제가 지난해 하반기 위기국면으로 진단된 이후 정부에서는 금리인하를 비롯한 각종 경기부양책들을 잇달아 내놓고 근로자들에게는 임금인상자제를 강력히 요청해오고 있는 판에 경제위기론을 가장 앞서서 제기했던 재벌그룹들이 위기상황에 걸맞지 않는 골프장건설을 추진함으로써 기업이 경제회생노력에서 건전한 투자 등의 제몫을 해낼 것인가에 대한 전반적인 회의가 일고 있는 것이다.
나아가 이같은 기업의 지각없는 재테크행위로 각집단의 경제희생노력에도 균열을 가져올 것으로 우려되고 있다. 기업들이 정부나 근로자등 다른 경제주체들에게는 경제가 위기상태이므로 금리도 낮춰주고 임금인상도 억제해야 한다고 주장해 놓고 정작 스스로는 자가반성 없이 관광레저업종(사실상은 부동산투기)인 골프장건설에 열을 올린 꼴이 돼 설득력이 크게 손상되기 때문이다.
은행감독원은 5개 재벌그룹의 골프장건설을 승인해 주는게 특혜라는 비판적 여론이 크게 일자 8일 일단 최종승인통고를 미루기로 했다.
그렇다고 승인방침이 철회된 것은 아니고 완공후 2년이내의 처분조건등 단서조항을 일부 재검토하며 시간을 끌기로 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러한 결정지연으로 인해 골프장ㆍ목장등 대규모토지소요사업에 대한 재벌의 진출금지를 규정하고 있는 새 「여신관리시행세칙」마저 함께 시행이 되지 못하고 있는 부작용도 낳고있다. 정부는 지난해 12월 은행빚이 많은 대기업들의 토지사모으기를 억제키위해 새 세칙을 만들어 놓았는데 이들 5개재벌의 골프장건설을 승인해 주려다보니 「승인시점」까지 시행이 미뤄지고 있는 것이다.
이는 골프장건설 추진재벌들이 나라의 여신관리제도변경을 1개월째 묶어놓고 있는 형국이다.
이번 골프장 파문은 재벌의 힘이 얼마나 막강한지를 유감없이 발휘한 실례이기도 하다.
지난해말 삼성과 럭키금성의 골프장 건설추진이 맨처음 문제가 됐을 때만 해도 이들 재벌이 부동산매입시의 주거래은행의 사전승인 절차를 밟지 않았으므로 당연히 「규정위반」으로써 불허될 것이란게 지배적인 의견이었다.
그러나 이들 재벌의 태도는 이러한 일반적 관측과는 달리 승인을 얻어낼 수 있다는 쪽으로 매우 자신만만해 했으며 정 안되면 개인명의의 땅을 영구임차하는 방식으로라도 골프장 건설을 강행하겠다는 입장이었다.
당시 대기업 여신관리실무담당자들은 영구임차 방식으로 골프장을 건설할 경우 새로 보완된 신규정으로도 구제할 수 없어 속수무책이라며 『여신관리 측면에서 정부가 걸으면 기업은 뛰고,이를 따라 잡기위해 정부가 뛰면 기업은 날아서 빠져나간다』고 한탄하기도 했다.
실제로 얼마안있어 정부방침은 승인쪽으로 기울었다. 이유는 골프장건설을 위한 부동산 매입 승인신청이 12월이전에 이뤄졌으므로 새 규정을 소급적용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다만 이번 승인이 과도기적 상황에서 이뤄지는 것이란 이유로 몇가지 단서조항이 붙여졌다.
그 내용은 ▲골프장을 완공후 2년내에 매각하고 ▲이를 이행치 않을 경우 계열기업 전체에 대한 여신을 중단하며 ▲매각이 여의치 않을 땐 주거래은행이 공매처분할 수 있다는 위임장 제출 등이었다.
당국의 이러한 승인방침이 발표된후 골프장 건설 재벌의 정치자금 로비설 등의 후문이 뒤따랐으며 특히 일부 재벌의 경우 도지사로부터의 사업승인을 지난 연말에 집중적으로 따내 개운찮은 맛을 남겼다. 한국화약은 12월19일 강원도지사로부터,럭키금성은 12월29일 경기도지사로부터,코오롱은 12월30일 경북도지사로부터 각각 사업승인을 받은 것으로 밝혀졌다.
이번 골프장 파문은 재벌의 놀라운 힘과 아울러 은행빚과 자기자본 비율을 비롯한 허약한 재무구조등 재벌의 실상을 다시한번 되돌아보게 했다.
은행빚은 지난해 8월말현재 산업합리화관련 여신,특별외화대출 등을 제외한 여신관리대상만 치더라도 삼성이 2조8백80억원,럭키금성이 1조3천1백73억원,한국화약이 2천9백6억원,동아가 3천35억원,코오롱이 2천3백40억원 등이었으며 자기자본도 삼성 럭키금성 동아가 지도비율에도 미달하고 있다.
이런상태에서 은행빚은 안갚고 골프장 사업에 진출한다는건 평상시에도 질책을 받을 만한 일인데 지금은 재벌이 앞서서 위기라고 규정한 어려운 국면이어서 비난이 공분으로 바뀔 지경이라 하겠다.
지금은 재벌이 이런 식으로 힘을 과시할 때가 아니라고 지적되고 있다.
이번 파문은 경제위기를 극복키위해 고통과 희생을 나누며 동참하려는 모든 사람들에게,이윤을 쫓는 기업은 역시 자기이익만 챙기려한다는 실망감을 안기고 있다. 골프장 추진 재벌들은 정부의 승인여부를 떠나 스스로 골프장 사업을 포기함으로써 이번 일을 오히려 기업이 사회적 신뢰를 얻을 수 있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는 게 일반적 여론이다. 그렇게 해야만 90년대의 한국경제는 무엇인가 새로운 기대감을 스스로 가질 수 있을 것이라는 얘기다.<홍선근기자>홍선근기자>
□5개그룹 추진골프장 (단위:만평)
●업체명(그룹):중앙개발(삼성)
소재지:경기 용인
토지면적:59.5(18홀)
사업승인여부:89.4.29취득
●업체명(그룹):희성관광개발(럭키금성)
소재지:경기 광주
토지면적:80.0(54홀)
사업승인여부:89.5.16(36홀)취득
89.12.29(18홀)취득
●업체명(그룹):태평양건설(한국화약)
소재지:강원 춘성
토지면적:68.3(18홀)
사업승인여부:89.12.19(18홀)
●업체명(그룹):동아건설(동아건설)
소재지:경기 안성
토지면적:76.0(36홀)
사업승인여부:89.11.24 신청
●업체명(그룹):코오롱건설(코오롱)
소재지:경북 월성
토지면적:72.0(36홀)
사업승인여부:89.12.30 취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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