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큘라 성터에 자신의 궁전 건설 지지/수도와 지하 연결 행정부까지 옮길 구상【티르고비스테(루마니아) 로이터 연합=특약】 루마니아의 독재자 니콜라이ㆍ차우셰스쿠가 드라큘라 전설의 고향인 루마니아의 티르고비스테시에 웅장한 궁전을 짓고 그 성곽에 자신의 선조와 일가의 이름을 새겨넣으려는 등 「현대판 드라큘라」로 행사하려 했던 사실이 뒤늦게 밝혀졌다.
티르고비스테시는 수도 부쿠레슈티에서 철도로 2시간 거리의 서북쪽에 위치한 인구 6만의 조용한 도시로 19세기 영국 소설가 브람ㆍ스토커의 작품인 드라큘라백작의 무대였다. 드라큘라백작의 모델은 14세기 당시 발라치아로 불렸던 이 지역의 통치자 블라드공. 차우셰스쿠는 블라드와 그 후손들이 1386년부터 1714년에 걸쳐 세운 드라큘라 성터에 자신의 영화를 과시하는 새 궁전을 만들고 부쿠레슈티와 직통 지하도까지 건설한 후 행정부를 아예 티르고비스테로 옮길 구상까지 했었다.
이를 위해 그는 부쿠레슈티의 「인민궁전」이 완공된 직후 블라드공의 드라큘라 성터를 돌아보고 구체적인 공사지시를 했었다.
차우셰스쿠가 으스스한 흡혈귀의 집터에 화려한 궁전을 지으려고 했던 이유는 드라큘라의 모델인 블라드공이 외국에선 「공포의 악한」으로 알려져 있지만 루마니아인들에겐 터키의 침략자를 격퇴한 「민족의 영웅」으로 추앙돼왔을 뿐만 아니라 드라큘라성 또한 자랑스런 역사 유물로 인식돼왔기 때문.
차우셰스쿠정권은 그간 엄격한 검열을 통해 외국인에게는 「흡혈귀」로 통용되는 「드라큘라」라는 말을 용맹스런 군인들을 배출한 블라드공가의 문장인 「용」으로만 인식되도록 했다.
차우셰스쿠는 이처럼 루마니아 민족의 영웅으로 간주돼온 블라드공의 성터에 차우셰스쿠 성을 지어 「드라큘라」의 지위를 찬탈하려다 비참한 최후를 맞았다. 전설은 흡혈귀인 드라큘라백작을 죽이는 방법으로 「그의 가슴에 말뚝을 박으라」고 가르친 바 있다.
22년간 블라드공의 거성을 관리해온 스테판씨는 『차우셰스쿠는 스스로 드라큘라의 후계자를 꿈꾸다 복수의 여신 네메시스의 저주를 받고 분노한 국민의 손에 처단됐다』고 말했다.
루마니아 민족의 영웅으로 역사에 남으려 했던 차우셰스쿠의 망상은 그의 고향인 스코르니셰스티에서도 철저히 외면받고 있다. 그가 처형된 후 그의 생가는 성난 군중들에 의해 파괴됐다. 차우셰스쿠의 사촌들과 옛 이웃들은 그를 「자기만 아는 이기적인 소년」으로 기억하고 있을 뿐이다.
차우셰스쿠가 부쿠레슈티로 이사가기 전인 12살 때까지 그와 친하게 지냈다는 사촌누이 플로레아ㆍ차우셰스쿠(71)는 『그는 천진난만한 다른 아이들과는 달리 어려서부터 남을 지배하려는 권력욕에 차있던 욕심많은 소년이었다』고 회상했다.
그녀는 『차우셰스쿠가 자신의 고향마을 사람들을 삭막한 아파트 단지로 내쫓고 그 집터에 기념관을 세웠다』며 『이웃의 눈길이 두려워 차우셰스쿠라는 성을 버리고 다른 고장으로 떠날 생각』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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