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일선 등장은 우연… 대권 생각도 못해/당원들은 평생동지… 뜻 달라도 결속 확신/포철신화 장본인… 3선 개헌땐 “경제가 본업” 반대도『정치에 대한 국민들의 신뢰가 매우 떨어져 있는 만큼 당원및 동료의원들과 힘을 합해 정치신뢰를 회복시키는 데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5일 낮 해외출장에서 귀국하자마자 청와대로 직행,당총재인 노태우대통령으로부터 민정당 대표위원직을 명받은 박태준신임대표(62)는 『기왕 나선 이상 신명을 다하겠다』는 제일성으로 지금까지의 막후정치에서 전면정치로 새로운 출발을 시도하는 소감을 대신했다.
청와대에서 1시간30분 동안 총재와의 단독면담을 마치고 곧장 당사로 온 박대표는 시종 여유있는 모습으로 20여분간 기자들과 만나 채 정리되지 않은 향후 구상을 피력했다.
『아직 생각이 정리되지 않아 당의 구상을 직접 듣고 공부를 좀더 한 연후에야 구체적인 얘기를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정계개편에 대한 생각은.
『신문을 통해 비슷한 얘기들을 들어왔는데 진정한 정계개편의 뜻이 어디 있는지 야당총재들과도 직접만나 들어봐야겠습니다. 사실 국회의석에 있긴 했어도 회사일등 경제분야 활동이 거의 전부였던 만큼 공부를 열심히 해야겠지요』
당내문제를 어떻게 보고 있는지요.
『당의 정책은 민주화추진,당면 경제난국 타개,통일기반 조성 등 확고한 목표를 갖고 있으며 이를 총재의 뜻에 따라 하나하나 실천해 나가야 할 것으로 봅니다. 5공청산문제로 마치 당에 문제가 있는듯이 비쳐져 왔으나 기본적으로 우리당은 창당때부터 「평생동지」라는 굳은 서약으로 뭉쳐와 당내 융화와 결속은 별문제가 없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왜 총재가 박대표를 임명했다고 보는지요.
『나 자신이 전문정치인이 아니라는 게 평소 생각이었으며 내능력으로 당을 잘 이끌 수 있겠는가에 대한 자문을 해왔고 임명을 받아들이면서도 회의를 느꼈던 게 솔직한 심정입니다. 총재께서 나의 어떤 면을 보셨는지는 숙제로 남겨두겠습니다』
평소 야당의 3김총재에 대한 생각은.
『그분들은 평생 정치를 해오신 분들로 정치역량에 있어서도 나보다 월등하다는 점을 잘 알고 있어요. 그분들에게 배워가면서 정치를 해야겠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는 점을 강조해둡니다』
후속 당직인사는.
『오늘 저녁 생각을 한 뒤 내일이나 모레쯤 총재께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당의 결속을 위한 구체적 방안이 있다면.
『이념이나 뜻을 같이한 당원들이라 해도 여러 이벤트에 따라 생각이 다를 수는 있겠지만 기본적으로 그런 것이 당의 인화나 단결을 깨뜨릴 순 없다고 봅니다. 앞으로 많은 당원들과 대화를 꾸준히 하겠지만 의원이나 당직자이기 이전에 당원으로서의 인식을 바로 살리는게 중요하다고 믿고 있습니다』
포철회장직은.
『포철은 92년이면 연간생산 2천만톤이라는 최종목표를 달성합니다. 그 일을 진행시키기 위해서는 지금 당장은 해외관계등 내얼굴을 필요로 하는 문제가 있다고 여겨지는 만큼 차차 결심할 생각입니다. 그래야만 떠나는 사람으로서도 책임을 다할 수 있지 않겠어요』
대권에 대한 소견은.
『정치를 안하겠다고 결심한 지 오래됐는데 우연히 정치일선에 나서게 됐어요. 대권도 우연이라 믿으며 그런 우연은 자주 있는 게 아니지요. 나자신 대권을 맡을 만한 위인이 못되며 그런 자신을 나는 명백히 인식하고 있습니다』
▷프로필◁
박 신임대표는 영원한 「영일만의 철인」이기를 고집했던 「포항제철 신화」의 장본인. 「제철보국의 철학」을 기치로 창업당대에 1천5백만톤 규모의 제철소를 완성시켜 세계 철강업계로부터 「미러클 메이커」라는 호칭을 받고있으며 지난 87년에는 철강의 노벨상으로 일컬어지는 베서머 금상을 수상,90년중 기네스북에도 게재될 것으로 전해진 인물.
지난 69년 7월26일자 각 일간지 1면에는 3선개헌 추진을 적극 지지하는 예비역 장성 2백여명 명의의 성명이 발표됐으나 육군소장 출신인 박대표는 김형욱 당시 중앙정보부장의 서명참가 요구를 「경제가 본업」임을 내세워 끝내 거절,사실상 3선개헌 반대의사를 분명히 했었다는 후문.
지난 64년에는 한일 국교정상화를 위한 막후교섭대표로 활약했었고 지금도 한일의원 연맹회장직을 맡아 폭넓은 지면을 바탕으로 한일 외교의 배후를 떠맡고 있다. 전두환 전대통령과의 사돈관계로 간간이 구설수에 오르기도 하는 그는 그러나 공사석을 막론하고 『인연일 뿐』이라는 한마디 외에는 일체 함구로 일관해 왔다.
정치권의 본궤도에 진입한 그가 「정치적 철인」으로도 성공할 수 있을지 여부는 아직 미지수. 고향인 경남 양산에는 모친 김소순여사(91)가 생존해 있으며 부인 장옥자여사(60)와의 사이에 1남4녀를 두고 있다.<정진석기자>정진석기자>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