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은 아무나 될 수 있는 건 아닐 것이다. 자리에 합당한 양식과 자질에 현실적인 힘이 보태어져 군림하고 나라를 이끌게 된다. 현실적인 힘이란 과거 우리가 경험했던 물리적 힘에 바탕한 쿠데타나 찬탈이라는 예외적 경우에다 정책을 앞세운 선거에서의 승리라는 공정한 선택에 바탕을 둔다.그런데 현실적인 힘을 행사하려고도 하지 않았고 그자리에 뜻도 없었던 한 극작가가 오직 국민들의 자발적인 간청으로 대통령자리에 앉았다. 지난주 취임한 자유화 체코의 신임대통령 하벨이 그런 경우이다. 그의 권력과 권위는 결코 총구에서도,정당에서도,치열한 선거전의 결과에서도 나온건 아니었던게 우리에게는 정말 기이하게만 생각되는 것이다.
사실 하벨과 같은 뜨거운 이상주의적 작가란 현실정치와는 거리가 먼 법이다. 언제나 주고 받아야 하는 정치술,하고 싶은 말도 때로는 참아야 하는 제약이 마음내킬 수는 없다. 하벨도 대통령직을 간절히 고사했지만 그럴수록 국민들의 간청은 더욱 강력해져 어쩔 수 없이 오늘의 결과가 초래됐다고 한다. 그래서 하벨은 새 정부에 푸념섞인 농담을 건넸다고 외신은 전한다 『작가란 현실에 휩쓸리지 않는 국외자여야 하는데,현실에 뛰어들었으니 앞으로 일주일에 이틀씩은 감옥에 보내달라』고 했다는 것이다.
하벨은 프라하의 봄이 소련탱크아래 무참히 깔린뒤 세번에 걸쳐 5년간 감옥살이를 하면서도 끝없이 공산학정에 저항하는 글을 썼고 결코 반대의 목소리를 늦추지 않았던 체코의 살아 있는 양심이었다.
오로지 그같은 양심과 가치속에서 현실정치의 출발점을 찾으려는 체코국민들의 열망이 부럽기도 하다. 그같은 열망에 뜻을 굽힌 하벨이지만 오는 6월 새 의회선거때까지만 대통령자리에 있겠음을 고집하고 있다고 한다.
전직대통령의 증언을 놓고 아직도 실망의 말이 많은 우리의 정치 현실이다. 역사적인 그 증언을 끝까지 국민과 함께 냉철히 지켜본뒤 보충질의를 통해서나마 국민들의 양식의 소리를 대변하지도 못한 국회의원들에 대해서도 실망이 역력한 오늘이다. 또 설득력있는 양식보다는 어려워진 현실에 가까스로 빗대고서야 2년간이나 죽을 쑨 청산문제를 이제 덮어두자고 호소하는 정치권을 우리는 지금 측은히 바라보고 있기도 하다.
식상한 관객들에게 막을 바꾸려는 무대배우들처럼 정치권은 요사이 정계개편문제를 활발히 거론하기 시작했다. 정책연합이다,합당이란 소리가 자못 요란하다. 그런데 정치권이 시도하려는 개편의 행태가 「헤쳐모여」식이라는 걱정스런 소리가 들리는건 무슨 까닭인지 모르겠다. 기득권을 유지,바뀐 장세에서도 주인공 노릇을 계속하려는 저의에 다름아니라는 비판도 나온다고 한다.
더 이상의 혼란과 깽판을 바라는 국민은 없다. 발뻗고 살면서 열심히 일하고 보람도 찾을 수 있으면 그만이라고 생각하는 소박한 민들이다. 이상주의자 하벨처럼 시대적 양심노릇은 못한다해도 국민들의 양식이라도 제대로 대변할 수 있는 정치를 국민들은 지금 소망하고 있는 것이다. 정치가 그런자세를 갖출때 국민들은 주저없이 간청할 것이다. 나라를 이끌어 달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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