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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0년대의 정치/좌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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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0년대의 정치/좌담

입력
1990.01.0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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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0년의 새해가 갖는 의미는 정말 각별하다. 90년은 연표적으로 2천년을 대비해야 하는 90년대의 첫해일 뿐 아니라 80년대에 드리워졌던 짙은 음영을 정리하는 의미도 함께 지니고 있다. 90년대는 국내적으로 정치민주화와 선진국에로의 도약여부가 판가름날 것이고 한반도를 둘러싼 국제환경도 급변을 예고하고 있다. 여러 의미를 함축하고 있는 90년대의 첫해를 맞아 90년의 정치사적 의미,민주화 진전의 전망과 그 필요조건,지자제 실시와 정계개편론 등의 예상변수,통일문제에 대한 전망 등을 좌담을 통해 미리 정리해 본다.□참석자 ◇남재희의원(민정) ◇조세형〃(평민) ◇길승흠교수(서울대) ◇고영구변호사 사회 이성준<본사 정치부장>

◎지자제ㆍ정계개편 「새정치」 열쇠/전씨증언 그 자체에 의미/국민의사에 따라 정계개편 지역주의 극복을/50년대 지자제실패 고려… 행정구역 현실적으로 개편토록

­야권의 3김총재는 90년대에도 정치적 영향력을 계속 유지할 것으로 보이는데 현행 헌법대로 갈 경우 오는 92년말의 대통령선거때 3김씨가 다시 대권에 도전할 가능성이 있다고 보는지요.

세대교체가 될 가능성은 없습니까.

▲고변호사=3김이 카리스마적 존재인 것만은 부인하기 힘들지만 이분들이 이끄는 정당구조는 민주적 정당구조와는 거리가 멉니다.

3김은 이미 도덕적 파산선고를 받은 사람들 아닙니까. 이들이 정치지도자로 계속 군림하면 국민들은 정치무력증ㆍ정치허무주의에 시달릴 가능성이 큽니다.

다음 대통령선거때 또 나올지 모르겠지만 3김같은 도덕적 파산자는 정치전면에서 하루속히 사라질 필요가 있습니다.

김대중총재와 김영삼총재는 10ㆍ26과 6ㆍ29같이 중요한 국면마다 적전분열현상을 일으켜 국민의 민주화 열기에 찬물을 끼얹었으며 김종필총재는 자기말대로 유신본당세력 아닙니까. 이들이 다시 정치재단사로 등장한 것은 역사의 후퇴라고 생각합니다.

▲남의원=남의 집안사정이라 얘기하기가 뭐 합니다만 외국의 경우 대통령선거에 나가 한번 실패하면 후보가 바뀌는 게 상례아닙니까.

3김씨는 지금까지 만족스러운 민주정치를 해보지 못한 탓에 정치투쟁시기를 살아온 지도자로서는 비교적 장수해온 것 같습니다. 앞으로 민주정치가 제대로 되면 당내 민주주의를 통해 자연스럽게 세대교체를 원하는 목소리가 커질 것으로 보입니다.

○「3김」 대안 강구해야

▲조의원=3김씨 문제는 말하기는 쉽지만 현실이 그렇지 않다는 게 중요합니다. 지금도 서울운동장에서 마이크를 잡고 가장 많은 청중을 모을 수 있는 정치인이 바로 3김씨 아닙니까.

어떤 경우에도 87년 후보단일화 실패의 경험을 되풀이 해서는 안된다는 점은 분명합니다. 그러나 현상을 유지하고자 하는 세력에게 유리한 결과가 나올 수도 있는 상황에서 3김씨가 가진 힘만을 부숴버리는 것은 한번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습니다. 3김이 갖는 막강한 힘에 상응한 현실적 대안을 우선 강구해 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지난 영등포을 재선거때처럼 야권표를 분산시키는 자가당착은 더이상 범하지 말아야 합니다. 한표가 아쉬운 선거에서는 정치계도적ㆍ당위적 측면과 함께 현실적인 측면도 함께 보아야 합니다.

때가 되면 정당의 신진대사가 이뤄지는 계기가 오겠지만 93년 선거는 반드시 단일화되어 싸울 수 있도록 야권이 뭉쳐야 할 것입니다.

­최근들어 진보정당 결성작업이 활발히 진행되고 있습니다. 진보정당의 제도정치권에의 수용가능성 및 발전전망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남의원=87년의 6ㆍ29선언 이후 노동조합 및 노조원 숫자가 엄청나게 늘어났습니다. 물론 수적인 증가가 곧바로 진보정당 결성과 연결되는 것은 아니겠지만 이러한 현상이 이념정당출현의 중요한 토양이 될 것입니다.

진보정당이 출현하더라도 당분간 군소정당 신세를 면치 못할 것이며 따라서 가까운 시일내에 정치권이 보혁구도로 가기는 힘들 것입니다. 그러나 현행 국회의원선거법에 서독식 비례대표제를 가미,진보세력을 정치적 통합의 길에 끌어들이는 것이 정치발전과 정치안정에 바람직하다고 봅니다.

진보정당 추진세력들도 제도정치권안에 들어오자면 마르크시즘등 과격한 혁명이론들을 현실에 맞게 재정립돼야 합니다. 책임없는 주장만으로는 국민적 공감대를 획득하기 어려울 것입니다.

▲길교수=영국의 노동당,서독의 사민당 등 서유럽 사회민주주의 정당같은 온건 개혁정당의 정치적 활동은 제도 정치권이 보장해주어야 할 것입니다.

40여년간 지속된 보수일색의 정치를 벗어냐야 한다는 당위성의 측면에서 뿐 아니라 노동자ㆍ농민 등 소외계층의 이익을 누군가 대변해야 한다는 현실적 필요성에서도 온건혁신 정당이 의회내에 존재해야 합니다.

○레드 콤플렉스 극복

진보정당이 활동하기 위해서는 다음과 같은 여건이 조성되어야 합니다. 첫째 악법 개폐등 각종 민주화작업이 일단락되어야 하며 둘째 「레드 콤플렉스」를 벗어나야 하고 셋째 선거제도ㆍ정치자금문제 등에 있어 제도정치권이 성장토양을 마련해 주어야 할 것입니다. 넷째는 전민련등 진보정당 형성에 부정적 태도를 보이는 장외세력들도 정치권안에 들어와 의사를 분명히 할 필요가 있다는 점입니다.

지난 13대 총선때는 2.6%정도의 득표에 그쳤지만 정당결성후 자리만 잡으면 지지율은 훨씬 늘어날 것입니다.

▲고변호사=진보정당이 성장할 토양이 필요하다는데 동의합니다. 6공들어와 급격히 고양된 기층민중의 정치의식을 고려해 볼 때 현재의 확대된 정치활동 공간은 진보적 정치세력으로 채워질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따라서 진보적 대중정당은 필요하고 또 반드시 출현하리라 봅니다.

해방이후 보수일색의 정치판에서는 자본주의적 경제발전과정에서 드러난 폐해들을 해결할 수 있는 정치세력이 없었습니다. 진보정당은 색깔이 같고 정치적 이해관계대변에 차별성이 없는 현재의 지역정당구조를 극복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줄 수 있을 것입니다.

진보정당이 크기 위해서는 우선 공정 경쟁의 분위기가 만들어져야 합니다. 또 반민주 악법 개폐와 더불어 언론의 협조가 절대 필요합니다. 의석이 없다고 해서 진보정당 추진세력들의 기사를 조그맣게 취급하는 것은 이해가 안갑니다. 중요한 사실인데도 전혀 국민에게 알려지지 않는 것은 공정한 경쟁을 보장하는 데 명백히 배치된다고 생각합니다.

▲조의원=가족까지 합치면 전국민의 반을 차지하는 노동자ㆍ농민 등 소외계층의 이익을 대변할 혁신정당이 나오는 것은 사회적으로 불가피한 현상이라고 생각합니다.

진보정당이 의석을 확보,원내 교두보를 마련하는 것이 목적이라면 선거는 절대적 게임이 아닌 다른 당과 표를 갈라먹는 상대적 게임이라는 냉혹한 현실을 인식해야 합니다.

선거에 필수적인 조직력ㆍ자금력 등 현실여건이 약할 경우 뜻이 근사한 정치세력과 연대해 교두보를 만드는 방법을 고려해야 합니다. 이념적으로 약간의 차이가 있는 당과 연대한다고 해서 몸에 병이 생기는 것은 아니지 않습니까.

현재의 야당을 민중의 여망인 민주화와 개혁을 함께 몰아 붙이는 정치세력이라고 본다면 연합공천등의 연대방법을 적극적으로 고려하는 현실적 지혜도 필요할 것입니다.

진보정당이 성장하기 위해서는 선거제도 개선 및 국가보안법 등 악법 개폐와 함께 노동조합이 혁신정당에 합법적으로 정치자금을 줄 수 있는 길이 트여야 합니다.

­지방자치법이 국회에서 통과돼 올해 상반기에 지방의회선거가 실시됩니다. 지자제실시 정국의 향방에 미칠 영향과 정치적 의미를 어떻게 보십니까.

▲길교수=지자제실시는 양면성이 있다고 봅니다. 긍정적인 면은 정치의 보편화가 이뤄질 수 있다는 것이고 부정적인 측면은 지난 두차례의 선거에서 팽배한 지역주의가 고착될 것이라는 점입니다.

▲남의원=이번 지방의회선거는 풀뿌리민주주의의 실현이라는 점에서,또 지방화ㆍ민주화시대를 연다는 점에서 의미가 큰 역사적 거보입니다. 특히 연합공천이 가능하게 됨으로써 우리가 추구하는 연합의 정치를 실험할 수 있게 됐습니다. 지방의회선거에서 연합의 정치를 훌륭히 해낸다면 중앙정치에서도 이를 원용할 것이고,이는 지역주의를 완화시키는 데 일조할 것입니다.

▲조의원=지자제를 얘기할 때 일각에서 보수대연합을 앞세워 기교적인 연합공천론을 얘기하고 있는데 이는 정말로 우려되는 발상입니다. 밖에서는 개방과 개혁의 도도한 물결이 흐르고 있는 이마당에 정권과 당권등 기득권의 유지ㆍ연장만 생각하면 시대의 낙오자가 되고 말 것입니다.

▲고변호사=지자제실시는 크게는 민주정치의 기반을 다지는 역할을 할 것이나,현정치권이 야합구조를 보다 내밀히 강화할 우려도 있습니다.

이러한 야합움직임이 구체화될 경우 정치권ㆍ재야의 양심세력이 힘을 합쳐 지자제선거에 참여,야합구조의 강화를 막아야 할 것입니다.

구체적 문제에 있어서는 지자제실시전에 행정구역을 현실에 맞게 개편하는 것이 시급할 것으로 생각됩니다. 지방자치의 본질적 의의를 고려할 때 과거 일제때 식민지 통치에 유리하게 구획된 현재의 행정구역을 그 이후의 사회ㆍ경제발전에 맞춰 적합하게 개편하는 작업이 필요합니다.

­최근 동구권 변화 등을 통해 볼 때 대외관계에 적지 않은 변화가 예상됩니다. 90년대의 남북한 관계에 대한 장ㆍ단기 전망을 해주시죠.

▲길교수=6공정부는 7ㆍ7선언등을 통해 북방정책을 표방했지만 대북한 정책은 언급만 되어있고 현실적 결실로 나타난 것은 별로 없는 것 같습니다. 우리도 이제 동ㆍ서독식의 민족재통합정책을 수립해 나갈 때가 되었다고 봅니다. 기존의 보수일변도 시각에서 남북한 정책을 수립하다보니 삐걱거리는 소리가 나는 것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북한도 장기적으로는 개방정책을 취하지 않을 수 없을 것입니다. 항일 빨치산세대에서 전후 테크너크랫세대로에의 권력이양과 김일성 사후의 소련ㆍ중국의 영향력증대 등을 고려할 때 성공한 것처럼 보이는 북한의 1인 우상화체제도 개방과 더불어 의외로 쉽게 권력기반을 상실할 수 있을 것입니다.

▲고변호사=최근 남한에서 조성된 통일열기와 북한으로부터의 통일공세가 집합하는 과정에서 통일에 대한 의견이 어느정도 접근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국제정세변화와 주변 4강의 이해관계도 남북한 관계개선에 무관하지 않겠지만 남북한의 진정한 민주화 여부가 통일문제에 있어 가장 중요한 변수라고 생각됩니다.

남북한 모두가 나름대로의 통일방안을 모색하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아무런 진척이 없는 것은 양측의 통일주도세력이 통일에 진정한 열정을 갖고있지 않고 단지 정권유지와 그 확대수단으로 통일을 이용해 왔기 때문일 것입니다. 앞으로 통일논의의 주도권은 어느 쪽이 더 민주화 되었느냐에 따라 좌우될 가능성이 큽니다.

▲조의원=북한이 범세계적으로 도도히 흐르는 개방정책의 흐름을 막는데도 한계가 있을 것입니다. 남북한 관계의 변화가 자연발생적으로 일어날 수밖에 없는 시점이 곧 올 것입니다. 얄타체제나 냉전구조의 잔재가 남아있을지 모르겠지만 주변국과의 관계복합화와 함께 남북한간의 동적인 관계변화가 10년내에 일어날 개연성이 커지고 있습니다.

7ㆍ7선언과 함께 북한권력구조 내부의 인적 변화가 수반된다면 남북한 관계변화는 더욱 가속화될 것입니다.

동ㆍ서독에서 보았듯이 남북한 관계에 있어서도 통일의 주도권이 정부에서 민중과 국민의 손으로 옮겨질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남의원=통일문제는 점진적으로 접근하되 군사관계 논의는 지금보다 대담하고 적극적으로 나갔으면 합니다. 우리정부는 지금 북한을 난처하게 만드는 일은 피하자는 입장인데 그것은 옳은 태도라고 봅니다.

동구공산권에서 일어나고 있는 변화는 역사의 대세로서 북한의 옹고집도 그리 오래 버티지 못할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90년대의 바람직한 정치와 정치인 그리고 시민상을 말씀해 주십시오.

▲길교수=민족 재통합을 통해 결국은 동서독의 개방을 가져온 서독의 빌리ㆍ브란트 전총리같은 정치인이 90년대에는 많이 나와야 할 것입니다.

안보와 사회질서를 중요시하는 6ㆍ25이전 세대와 자신을 중산층으로 인식하면서 정치와 사회의 민주화를 요구하는 전후 세대를 어떻게 조화시키느냐가 앞으로의 정치발전에서 중요한 부분입니다.

베를린장벽이 무너진 것으로 상징되는 동ㆍ서독 관계변화는 공산주의 정당과 사회주의 정당이 같지 않다는 점을 우리에게 새삼 보여주었습니다. 브란트 전서독총리는 59년까지 계급정당으로서의 강경노선을 견지한 사민당을 온건노선으로 선회시켜 급기야는 69년 집권했으며 그후 동방정책을 통해 오늘날 성취된 민족 재통합의 초석을 깔지 않았습니까. 이제 우리에게도 민족 재통합의 시대를 열어갈 정치지도자ㆍ정치인이 필요할 때라고 봅니다.

▲남의원=지금까지 우리나라 정당은 로버트ㆍ미헬스가 말한 과두지배에 의한 정당정치모습과 금권정치적 양상을 보였는데 이는 대중정당과는 상당한 거리가 있는 것입니다.

○시민의식 투철해야

당내 민주주의를 확립하고 돈이 덜드는 정치가 돼야 합니다. 앞으로 금융실명제가 실시되면 정치자금 조달방식에 획기적 변화가 올 것입니다. 더욱이 90년대에는 노조의 급성장과 새로운 민주문화를 체득한 젊은 세대의 등장으로 대중정당화를 촉진하는 시대가 열릴 것입니다.

이제 자신이 중산층이라고 자부하는 건전한 시민계층이 성장해 정치민주화가 안되면 민주화를 촉구하고 또 너무 불안해지면 안정을 희구할 수 있는 제도적 안전장치가 마련돼가고 있는 것입니다.

▲고변호사=도덕성과 민주의식이 투철하고 민족자존을 지켜갈 정치인과 정치지도자가 필요합니다. 지지계층의 확고한 이익대변으로 국민에 뿌리를 내리는 정당이 필요합니다.

정치사회적 제권리에 대한 투철한 권리확보 의식을 가진 시민들이 많이 나와야 민주주의를 지킬 수 있는 최후의 보루가 마련될 수 있을 것입니다.

▲조의원=90년대의 정치인은 사회 각계에서 분출되는 다양한 갈등요인을 조화시킬 수 있는 능력과 전체를 보는 시야를 함께 가져야 할 것입니다. 배타적이고 유아독존적이지 말아야 합니다.

90년대에는 민주화ㆍ개방화와 함께 좋은 후계세력이 나올 수 있는 토양이 가꿔져야 합니다. 이와 함께 정치인들은 과거의 쓰라린 상처와 한을 수렴하는 덕목을 갖추어야 할 것입니다.

90년대는 그동안 억눌려온 갈등요인이 분출되는 시대가 될 것이므로 어떤 특정세력도 사회전체를 독점지배하기는 어려운 상황이 펼쳐질 것입니다. 정치인들은 이러한 시대상황을 전제로 해서 고루 잘사는 번영된 국가와 사회를 만들어 갈 수 있는 덕성과 자질을 함께 갖추어야 할 것입니다.<정리=이영성ㆍ장현규기자>

◎민족의 재통합시대 열어야/혁신정당 토양마련 노동자ㆍ농민대변케/통일주도권,국민 손으로/정치인은 도덕성 갖추고 투철한 민족의식ㆍ민족자존 지켜야

­90년대의 첫해인 경오신년의 장이 열렸습니다. 되돌아 보건대 80년대는 격동과 갈등의 시대였습니다. 마지막날까지 전직 대통령이 증언대에 서고 의사당에서는 소란과 파란이 일렁거렸습니다. 역사의 도도한 흐름속에 민주화를 재촉하는 변화의 진통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새해에 펼쳐질 정국의 모습과 90년대가 갖고있는 정치사적 의미를 먼저 짚어 주시지요.

▲길승흠교수=90년대는 정치부문과 통일문제에 있어 두드러진 변화를 보일 것입니다.

한국정치는 그동안 권위주의 체제와 이에 저항하는 민과의 공방으로 체제문제를 해결하는 데 모든 힘을 쏟아왔습니다. 그러나 90년대는 국민의 힘이 계속 신장돼 권위주의 체제의 독주가 더이상 허용되지 않을 것이고 이에 따라 체제논쟁은 일단락되리라고 봅니다.

통일문제도 새로운 변화를 맞이할 것입니다. 우선 북한에서 김일성대신 김정일체제가 등장할 것으로 예상되는데 현재와 같은 폐쇄체제를 더이상 유지하기는 어려울 것입니다. 북의 개방체제로의 변화,남의 민주화 정착은 민족의 재통합문제를 자연스럽게 부각시키리라고 생각됩니다.

▲남재희의원=해방후 근 반세기동안 어려운 상황속에서 꾸준히 노력한 결과가 결집돼 90년대에는 선진국으로 발돋음할 것입니다. 또 현재의 민주화 진척도를 감안하면 건전한 사회상식이 지배하는 민주사회가 정착될 수 있을 것으로 봅니다.

▲고영구변호사=재작년 6ㆍ10민중항쟁때 당시의 혁명적 상황을 혁명적으로 마무리하지 못했습니다. 당시의 국민의지가 권력의 내부상속으로 제대로 이뤄지지 못했기 때문에 90년대에도 국민의지가 계속 분출,갈등을 야기할 것입니다. 현재 민주화를 추진하는 세력이 주체적이지도 않고 의욕도 없어 국민의 의지와 요구를 수용하지 못할 것이기 때문에 90년대 전망은 암담하다고 생각됩니다.

○북한도 변혁 불가피

­낙관의 가능성은 전혀 없다고 보십니까.

▲고변호사=90년대 사회가 발전과 안정의 형태를 보일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 전제는 사회 각부문 특히 정치권에서 혁명적인 변화를 이룩하기 위한 노력이 있어야 한다는 점입니다.

특히 지금까지 군사독재에 의해 파괴될대로 파괴된 정의의 관념을 새로 정립하는 노력이 있어야만 90년대의 전망이 밝으리라고 봅니다.

▲조세형의원=6ㆍ10시민항쟁이후 과거 2년반동안 사회 각부문에서 갈등요소가 분출했지만 90년대에 들어서는 이 현상이 더욱 심화될 것입니다. 90년대는 이러한 갈등을 어떻게 조정하고 수용하느냐에 따라 발전이냐,쇠퇴냐가 판가름날 것입니다. 또 국제적으로는 한반도문제를 결정지었던 얄타체제가 영향력을 잃을 것이고 북한도 혁명2세대가 부상하는 변혁을 맞이할 수밖에 없는 만큼 통일문제가 어떤 형태로든 구체적으로 제기될 것입니다.

이와 함께 90년대는 어느 지역이나 엄청난 세대교체가 일어날 것이고 가치관의 변화를 맞게 되리라 봅니다. 지금 상황에서 바라보는 90년대는 한마디로 기대와 우려가 교차되는 시기로 생각됩니다.

­지난해 마지막날 전두환 전대통령이 국회증언을 했습니다. 증언이 다 끝나지 못해 「반쪽청문회」가 되었고 증언내용의 불성실을 책하는 소리와 함께 의원들의 의사진행 미숙을 책하는 소리가 높습니다만 이 증언이 갖는 의미부터 얘기해 주십시오.

▲길교수=증언이 내용과 진행에서 만신창이가 되었지만 크게 보아 두가지의 정치적 의미는 있다고 봅니다. 우선 앞으로의 정국이 과거 유산의 망령에서 헤어나 미래지향적인 형태를 띨 수 있게 됐다는 점입니다. 그리고 대통령도 과오를 범하면 국민앞에서 증언해야 한다는 좋은 선례가 세워졌다는 것이지요. 그러나 전씨가 자신의 과오에 대해 책임회피 발언을 한 것은 국민의 분노를 사기에 충분한 것입니다. 또 국회의원들의 점잖치 못한 행동도 낙후된 의회문화를 보여주고 있는 것 같아 유감입니다.

▲조의원=한시대를 전횡했던 전씨가 국회에 불려나와 증언했다는 사실은 그 자체로 역사적 의미가 매우 큽니다. 그러나 허위증언에 속수무책이었다는 것은 현재 정치권의 한계와 무능을 스스로 폭로한 것입니다. 역설적으로 말한다면 이런 식의 과거청산이 두번 다시 있어서는 안된다는 점을 일깨워 줬다는 게 이번 증언이 갖는 의의라 생각합니다. 오만과 허위로 일관한 전씨의 증언으로 광주문제가 해결되고 5공비리가 청산되었는가에 대해 묻는다면 낯이 뜨거워질 수밖에 없습니다.

▲남의원=전 전대통령의 국회출석 증언은 헌정사상 유례없는 일로서 정호용의원의 의원직 사퇴와 함께 과거청산문제의 막을 내리게 한 상징적 의미가 있습니다. 다만 12ㆍ15합의대로 각당의 보충질의와 전 전대통령의 답변까지 진행되지 못한 점이 아쉽습니다.

어쨌든 이번 증언으로 5공청산의 큰 줄기는 잡혔고 잔존문제들은 위기정치적 차원이 아닌 일상 정치적 차원에서 매듭지어 갈 수 있게 됐습니다.

▲고변호사=원칙적인 주장을 한다면 전씨는 5공비리와 광주문제로 사법처리됐어야 했습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치권은 최소한의 요구인 증언을 전씨에 요구했지만 전씨는 이마저 제대로 해내지 못했습니다. 전씨가 증언대에서 5공의 정당성을 강변하는 듯한 태도를 보일 수 있었던 것은 모두가 6공 정치구조의 야합성과 한계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80년대의 잘못된 유산을 청산해 역사에 하나의 획을 긋고 새시대를 맞이하자는 의미에서 5공청산문제가 제기됐었습니다. 5공청산이 갖는 의미를 정리해 주십시오.

▲길교수=5공청산문제는 지난해 올림픽때 마루리 됐어야 했습니다. 명분론의 입장에 설때 5공과 관계된 모든 잘못을 말끔히 처리해야 하나 현실적으로는 정상적인 정치과정을 통해 혁명적 문제들을 풀려고 했으니 어려웠던 것은 당연할 수밖에 없지요.

○각종 악법 개폐돼야

▲남의원=전직 대통령의 증언까지 끝난 현재까지도 청산이 됐다고 보는 시각과 안됐다고 간주하는 반론이 양존하고 있습니다. 5공청산은 이런 흐름에서 볼때 5공의 잘못만이 아닌 1ㆍ2ㆍ3ㆍ4ㆍ공화국 등 지난 시절의 잘못을 모두 개선하는 것이고 이를 위해서 노력을 계속해야 한다고 봅니다.

­5공청산이라는 혁명적 과제를 비혁명적 정치과정을 통해 해결하려 하니 여러가지 무리가 따랐던 것이 아닙니까.

▲남의원=말씀을 듣고보니 4ㆍ19후 과도정부의 허정수반이 『혁명적 사태를 비혁명적 방법으로 수용하겠다』고 한 말이 생각납니다.

6ㆍ29선언은 선언이전의 혁명적 상황을 수용했고 그후부터 비혁명적 방법에 의한 혁명적 사태해결이라는 형식으로 정국이 흘러온 것입니다. 이런 점을 고려해 5공청산문제를 보면 그동안의 난항을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고변호사=해방이후 우리정치는 친일파의 득세ㆍ정치권력의 독재화ㆍ군사정권으로 이어지는 악순화을 계속해 왔습니다. 5공청산은 이러한 악순환에 종지부를 찍고 실종된 정의를 바로 세우는 일입니다. 그러기 위해선 5공청산이 한 두 사람의 사퇴로 마무리될 수는 없습니다.

광주문제의 책임자가 사법처리돼야 하며 각종 인권침해사례ㆍ정경유착사례가 낱낱이 밝혀져야 합니다. 또한 제도적으로 암흑정치를 가능케 했던 각종 악법,특히 국가보안법이 개폐돼야 한다고 봅니다.

▲조의원=5공청산은 한 시대의 청산을 의미하는 만큼 군사문화ㆍ특권경제ㆍ지역편중ㆍ권위주의의 청산이 이뤄져야 완결된다고 봅니다. 구체적으로 청산내용을 적시해 본다면 핵심인사인책ㆍ전직 대통령의 진실된 증언에 이어 지자제실시ㆍ경찰중립화 실현·광주문제의 진상규명과 보상ㆍ악법개폐ㆍ사회정의 실현등 입니다.

­이번 증언으로 5공청산이 과연 끝났느냐 하는 문제가 제기될 수도 있습니다. 정치권이 새해부터 해야할 책무는 무엇이겠습니까.

▲조의원=5공청산은 시간에 떼밀려 억지로 됐다는 표현이 맞습니다. 참된 역사적 의미의 청산은 결코 아니지요. 2월 임시국회에서 법적 청산을 마무리짓고 지자제를 분명하게 실시하는 게 정치권에 주어진 책무입니다. 그리고 이와 함께 부의 공정분배와 경제적 개혁을 실현해 나가야 합니다. 전씨를 고발하느냐,서울로 오게 하느냐 하는 등의 얘기는 지엽적인 사안이지요.

▲길교수=빨리 과거유산을 청산하고 경제난국부터 풀어나가야 할 것입니다. 곧 직면할 노사문제 해결과 경제난국을 헤쳐 나가야 합니다. 정치인들이 당리당략을 떠나 대승적 차원에서 나라를 생각해야 합니다.

▲남의원=5공청산이후의 정국에 있어 중요과제는 정치안정세력을 구축하는 일입니다. 지난 2년동안 여소야대의 4당구조는 권위주의 탈피라는 순기능과 정국 불안이라는 역기능을 해왔는데,앞으로 그런 체제가 계속된다면 역기능이 증폭될 것입니다.

그런 점에서 정치안정세력 구축이 시급히 요청되고 있습니다.

▲고변호사=전씨증언은 1노 김체제의 야합성을 극명하게 드러낸 만큼 정치권은 물론 사회 각계의 양심세력이 분연히 일어나야 합니다. 양심세력은 분열없이 뭉쳐,민주화를 주도하고 5공청산을 야합으로 처리한 6공을 청산함으로써 민족사를 바로 세워야 할 것입니다. 향후 정국에서 정치권이 계속 야합구조에 머물때 국민과 양심세력의 엄청난 비판이 쏟아질 겁니다.

­여야합의에 증언이 끝나고 새해가 되자 정가의 최대 관심은 정계개편에 쏠리고 있습니다. 지난해 박준규 민정당 전대표가 이 문제를 거론했다가 전격 사임하기도 했지요. 박전대표발언에 대한 견해와 정계전망을 해주십시오.

▲길교수=학계에서는 박전대표가 틀리지 않은 얘기를 한 것이라고 보는 게 중론입니다. 그동안 소위 정계의 「수구인사」들이 국민의 의사와는 동떨어진 행동을 해왔고 4당 영수들이 이를 「강하게」 제동하지 못한 측면이 있기 때문이지요.

4당 영수들에게 부탁하고 싶은데 이번에야 말로 국가적 차원에서 대범하게 정계개편등의 문제에 임해야 합니다.

▲남의원=박전대표의 발언중 문제부분은 대통령의 당적 이탈과 민정당 해체부분입니다. 당적이탈 운운은 대통령으로서 각당에 대해 공정한 위치를 유지한다는 점을 강조한 것이었고 민정당 해체분 역시 각 정당은 기득권에 연연하지 말고 발전적으로 해체할 수도 있다는 의미였는데 와전되고 확대 해석된 것 같습니다.

정계개편의 일차적 이유는 여권이 주도력을 회복해 정국을 운영해 나갈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점입니다.

둘째 이유는 현4당 체제에는 정치는 없고 지역주의만 있습니다. 현체제가 그대로 갈 경우 다음선거까지 지역주의가 계속될 수밖에 없습니다.

▲조의원=우리가 바라는 정계개편은 보혁대결의 억지춘향이식 개조가 아니라 민주세력이 뭉치는 「민주대연합」입니다. 박전대표의 얘기는 그 진의를 잘 알 수는 없지만 파벌차원을 뛰어넘지 못하는 구상이 아닌가 싶어요. 김영삼 민주ㆍ김종필 공화총재가 얘기하는 정계개편도 종잡을 수 없기는 마찬가지입니다. 정계개편 논의는 당분간 백가쟁명시대를 벗어나기 힘들지 않나 싶어요. 결국 새 정권이 탄생할 93년이 정계개편에서 최대의 분수령이 되겠지요.

▲고변호사=박전대표의 발언은 12ㆍ15타협에 이르는 과정에서 어느정도 짜여진 것이라 봅니다. 박전대표식 정계개편은 한국정치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 기존 정파의 야합이라고 생각합니다.

어쨌든 정계개편이 거론된다는 것 자체가 현4당 구조가 잘못됐기 때문일 것 입니다.

만약 이 개편이 정파지도자들의 이해에 따라 이루어진다면 기존야권ㆍ재야권의 범민주 세력은 힘을 합쳐 제동을 걸어야 하고 민주세력의 규합을 통한 재편을 시도해야 할 것입니다.

­정계개편에는 개헌내지는 통치구조문제가 연관된다고 생각됩니다. 향후 정국에서 통치구조문제가 재론될 가능성이 있지 않을까요.

▲남의원=통치구조에 대한 민정당의 당론은 형식 논리상 아직도 내각책임제입니다.

6ㆍ29선언전 당론은 내각책임제였고 아직까지 공식적으로 이 당론이 바뀐 적은 없습니다. 다만 대통령제를 채택한 것은 당시의 국민의사를 수용했기 때문입니다.

현행 헌법은 국민의사에 따라 여야합의로 만들어진 것이므로 섣불리 바꾼다는 것은 위험한 발상입니다. 그러나 대통령직선제를 하다보니 지역감정 대립등 많은 문제점이 노출됐습니다. 이런 현실을 극복하기 위해 정치권의 연합이 요구되고 있습니다.

­구체적으로 헌법을 개정한다면 어떤 형태로의 변화가 모색될 수 있겠습니까.

▲남의원=현행 헌법을 존속시키면서 준내각제 요소를 도입하는 방안과 내각제개헌,그리고 김재순국회의장의 주장처럼 대통령을 국회에서 선출하는 방법 등이 있을 수 있습니다.

▲길교수=내각제를 도입할 경우 다당제가 예견됩니다. 내각제로 비교적 안정을 유지하는 국가는 일본ㆍ영국 등이고 상당수 내각제 국가들은 혼란을 겪고 있습니다. 우리나라는 내각제가 아마도 후자의 결과를 초래할 가능성이 많지 않나 싶어요. 내각제 도입은 신중해야 한다고 봅니다.

▲고변호사=통치구조문제나 개헌이 논의되려면 먼저 지금까지의 정치제도가 무엇때문에 단명을 거듭했는지를 검토해봐야 합니다. 대개의 경우 개헌ㆍ정계개편을 거론하는 사람들은 그 이유를 지역감정에 돌리고 있습니다. 이는 상당한 비약입니다. 지역감정이 개헌등으로 해소되리라고는 생각지 않습니다. 현 시점에서의 권력구조 개편논의는 숱한 정치적 난제들을 호도할 우려가 많습니다.

­개헌문제는 선거구제와 깊게 관련돼 있기 때문에 선거구 논의가 제기될 것으로 보이는데 어떤 선거구제가 바람직하다고 보시는지요.

○정당명부제 검토를

▲남의원=민정당은 중선거구제를 선호하고 개인적으로도 지역감정 해소를 위해서는 중선거구제가 바람직하다고 생각합니다. 얼마전 박준규 전민정대표가 한 시사잡지와의 인터뷰에서 정당명부제를 고려할 수 있다는 발언을 했습니다. 박전대표의 얘기는 중선거구제를 기조로 전국구 등에 득표율에 따른 정당명부제를 도입할 경우 진보적 세력을 의회안에 흡수ㆍ수용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고변호사=정당명부제는 적극 검토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현재의 소선거구제로는 이해관계가 세분화된 국민의사를 대변하기가 어렵습니다.

▲조의원=대통령중심제나 내각책임제를 흑백으로 양단하기에는 일장일단이 있습니다. 우선 내각제가 되려면 정당민주화가 선행돼야 합니다. 파벌정치가 남아있는 상태에서 내각제가 실시될 경우 더 큰 문제가 나타날 것입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정파적 이해의 차원에서 권력구조문제를 검토해서는 안됩니다. 선거제도는 교육제도와 함께 국가적 차원에서 다뤄져야 하는 중요한 제도입니다.

선거가 임박하지 않은 지금부터 검토연구를 시작해야 합니다. 5면에 계속기사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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