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정ㆍ추석 명절로 권장… 민속놀이등 소개/신정 아침엔 음식 지참하고 친척집에 모여/한식 큰 비중… 성묘객들 이동개혁 개방의 급류속에 공산사회가 격동하고 있는 지금 세계의 관심은 한반도에 집중돼 있다. 분단 45년동안 바깥 세상을 외면하고 살아온 북한이 어떻게 변모해 갈 것인가에 대한 관심은 동시에 우리가 격변하는 정세를 어떻게 관리 대응해 나갈 것인가에도 쏠려 있다. 획일적 통제속에서 살아온 북한사회는 유교적 전통과 풍습 의식주 언어 민속 가정생활 등 모든 부문에서 남쪽과 뿌리를 같이하고 있으나 표면적인 모습은 사뭇 달라져 있다. 험난한 통일작업을 위해서는 민족동질성 회복이라는 끈기있는 노력이 급선무라는데 이론이 있을 수 없다. 정치를 떠나 북녘사람들의 사는 모습,간직한 풍물 등을 깊이 있게 살펴보는 일은 「그날」을 위해 우리 모두에게 필요한 작업이다.<편집자주>편집자주>
북한의 명절은 민속명절과 이른바 사회주의 명절인 국경일이 뒤섞여 있다. 신정과 김정일생일(2월16일) 김일성생일(4월15일) 공화국창건일(9월9일) 노동당창건일(10월10일)이 5대명절로 통한다. 이날에는 국가에서 배급하는 명절특식이 나오고 보통 2일씩 휴무한다.
북한은 정권수립후 줄곧 양력설을 권장해 왔다. 법적으로는 1,2일이 연휴이나 대부분 직장에서는 31일부터 쉬는게 관례가 되어있다. 설날아침에는 가까이 있는 일가친척들이 어른이 있는 집으로 모이는데 음식이나 술 등을 싸 갖고 오는게 특이한 모습이다.
상을 차려놓고 차례를 지내거나 세배하고 새뱃돈을 주는 풍습은 대부분 지역에서 남아 있다고 최근의 귀순자들은 전한다. 일가친척들은 TV를 보거나 주패놀이(트럼프)를 하며 소일하고 재미있는 영화가 들어오면 극장이 젊은이들로 북적댄다고 한다. 그러나 남한에서처럼 수백만이 귀향길에 오르는 모습은 없다.
당간부 등 상류층에서는 큰절대신 묵념을 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그러나 귀순자 임정희씨(24ㆍ여)는 자기가 살던 개성에서는 조상의 위패를 모셔놓고 절을 하거나 세배하는 것을 거의 보지못했다고 전하는 것으로 보아 남한과 같은 세시풍습은 전주민적인 분위기는 아닌 것같다. 임씨는 당간부나 충성심이 강한 사람들은 12월31일 밤12시에 김일성동상앞에 절을 하고 헌화한다고 밝혔다.
북한이 지난해부터 구정을 공식적으로 승인함에 따라 북쪽에서도 이중과세의 논란이 있을 것으로 예상되는데 지난해 TV를 통해 성묘와 차례지내는 법 등을 자세히 소개한 것으로 봐 구정이 설날로 정착돼 갈 것으로 보인다.
북한정권은 그동안 추석과 구정을 봉건잔재의 뿌리를 뽑아야 한다는 명분으로 금지해 왔다. 그러나 88년과 지난해 추석과 구정이 민족고유의 명절로 권장되고 그네뛰기 널뛰기 등 민속놀이가 대대적으로 소개됐다.
구정의 부활은 남한이 3일연휴와 함께 구정을 설날로 공식화해 축제분위기에 들떠있는 것에 대한 대응조치라는 해석도 있으나 음성적으로 치러지는 민족 전래의 명절을 더이상 막을 수만은 없는 것이며 개방의 한 단면이기도 한것이다. 한식은 남한에서 다소 퇴색한 것과 달리,북한주민들은 큰 행사로 삼고 있다.
한식날에는 열차가 콩나물시루가 되며 평양 등 대도시에는 성묘객들로 교통혼잡이 빚어진다고 한다. 혁명전사가 되는 것이 가장 큰 미덕이지만 부모를 공경하고 조상을 숭배하는 유교적 미풍양속도 그대로 남아 있는 것이다.
그러나 미신은 철저하게 타파되었다. 관상과 점 굿 서낭당 등은 일부 문예작품이나 영화 연극에서만 나타날 뿐인데 길흉화복에 대한 관심이 획일화된 통제사회속에서 거의 소멸된 것이다.
남한에서처럼 보편화되지는 않았지만 망년회도 많이 하는 것으로 전해진다. 그러나 종파주의를 배격하기 때문에 동창회 향우회 종친회 등의 이름을 빌린 망년회는 없고 직장동료나 가까운 친구끼리 모여 술을 마시고 노래를 부른다.
환갑이나 생일,돌,백일잔치와 집들이 풍습은 남한과 비슷한 형태로 남아있다. 환갑때는 술과 음식을 장만하여 인근의 일가친척은 물론,이웃들과 함께 나누어 먹는다. 일가친척들은 부조를 하는데 돈으로 할때는 대개 10원정도로 노동자의 월급이 보통 50∼1백원인 것을 감안하면 큰 돈이다. 그러나 돈이 있어도 물건을 쉽게 구할 수 없기때문에 받는 쪽에서는 술이나 음식 등 물건으로 받는 것을 더 좋아해 가까운 집안사람들은 음식과 술 등으로 부조한다고 한다.
백일이나 돌잔치 또는 집들이에 초대되어 갈때는 참석자들끼리 돈을 모아 아기옷이나 벽시계 등 생활에 도움이 되는 물건을 장만해서 선물한다.
지난해 귀순한 김남준씨(27)는 『결혼후 장인의 첫생일을 2백원정도 들여 대단하게 차려준 적이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너무 호사스런 생일잔치라 하여 장인이 한동안 직장에서 비판을 받았다고 전했다. 북한사회에서는 이처럼 명절이나 집안잔치때의 「과소비」현상이 심심찮게 나타나기도 하는데 당국의 손길이 덜 미치고 인심이 후한 농촌지역이 특히 심한 편이라고 한다.
그래서 북한당국은 최근 「60청춘 90회갑」이라고 대대적으로 선전하고 있는데 이는 노동력확보와 함께 과소비억제 시책으로 나온 것이 아닌가 풀이되기도 한다.<원인성기자>원인성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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