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8년 2월25일 우리나라 역사상 처음으로 단임을 실천했다는 자부심을 품고 12대 대통령직에서 물러나면서 『이제는 역사의 무대에서 내려가 역사의 구속과 책임자의 고독으로부터 해방되고 싶다』고 말했던 전두환 전대통령은 아직 역사의 사슬에 묶여있는 창백한 얼굴로 89년 세모의 국회증언대에서 고독하게 싸웠다.그는 증언대에 나와 『3권분립이 돼있는 대통령중심제의 나라에서 전ㆍ현직대통령이 국회증언대에 서는 것은 세계사에서 전례가 없는 일』이라고 말하고 『이런 불미스런 오점을 남기게 된 것은 나자신의 잘못으로 인한 업보임을 분명히 인식하고 있으며 죄책감을 느낀다』고 말문을 열었다.
그러나 그가 일해ㆍ정치자금ㆍ부실기업정리 등 5공비리에 대한 준비된 답변을 낭독하기 시작하자 의원석과 방청석에서는 곧 술렁임이 일어났고 『다 잘했다는 변명뿐이잖아?』 『여기가 연설듣는 자립니까?』 『무슨 소리야』라는 고함이 터져나왔다. 그의 답변이 겨우 끝나고 개회한 지 40분 만에 황명수 5공특위위원장이 정회를 선포하자 장내엔 당황한 분위기가 역력했다.
『큰일인데. 이래가지고는 5공청산 안되겠는데』 『청산이 아니라 또다른 시작이겠는데』 『이러다가 야당들까지 욕만 먹겠는데』 『저렇게 주변에 머리쓰는 인물이 없나』…라는 한탄이 방청석 중앙의 의원석에서 쏟아져 나왔다.
5공청산의 하이라이트로,또 전직대통령이 치르고 넘어가야 할 통과의례로 국회증언이라는 마당을 공동으로 펼쳤던 정치권은 변명 겸 해명으로 일관되는 첫 증언에 낭패감을 감추지 못했다. 저 정도의 증언으로는 국민을 납득시키기 어려울 것이라는 불안이 가득했다.
전 전대통령의 증언은 그가 현직에서나 백담사에서나 신뢰할 만한 참모를 충분히 갖지 못했다는 생각을 하게 했다. 역사의식이란 말이 너무 거창하다면 민심의 흐름이라도 바로 파악하는 참모,국민 앞에서의 사과란 어떤식이어야 한다는 사실을 인식하는 참모가 있어야 할텐데 그렇지 못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백담사에 집합한 5공의 충성스런 신하들이 머리를 짜서 만든 답변서는 너무나 5공의 꿈에 젖어있었다. 그들은 급변하는 세상 속에서 자기들끼리 5공이란 섬에 살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전직대통령의 국회증언은 그 자체가 치욕일 수는 없으나,그는 미흡한 증언으로 인해 치욕적인 공격에 휩싸였다. 전직대통령의 팀은 권인숙사건이나 박종철사건 등에서 당국이 『아니다』라고 말하면 아닌 것이 되던 5공식 마무리를 구할 뿐 국민과 역사 앞에서의 고해로 다시 살아나는 길을 외면했다.
전 전대통령은 작년 11월23일 백담사로 떠나면서 「국민여러분께 드리는 말씀」을 통해 <…대통령에 취임하면서 국민여러분에게 다짐했던 것과는 달리 「권력을 남용하고 부덕했던 전직대통령」이라는 낙인이 찍혀버린 지금 무엇을 더 숨기고 무엇을 더 변명하겠습니까. 다만 저는 지금 역사와 국민 앞에 심판의 자료를 제공하고 교훈을 남겨야 한다는 생각에서 몇가지 사실을 밝히고자 합니다…>라고 말했었는데 국회증언에서 그런 충정이 전달되지 못한 것은 유감이었다.
1년이 넘는 은둔생활에서 돌아온 전직대통령은 노인의 걸음걸이로 증인석에 걸어들어왔으나 의원들의 항의와 고함 속에서도 오랜 군인답게 침착한 자세를 견지했다. 그는 어두웠던 시절에 저항했거나 침묵했거나 협조했던 의원들이 저마다 소리칠 때 똑바로 그들을 응시하기도 했다.
10ㆍ26 이후 난국에 처한 나라를 구하기 위해 나서지 않을 수 없었다고 강변하면서 스스로 두 어깨에 날개를 달고 시저나 나폴레옹처럼 날고자 했던 그는 자신에게 열망과 갈채를 보내주던 국회에서 모멸과 항변 속에 증언하면서 민주주의가 무엇인지를 이해하려고 애쓰는 듯했다.
그의 증언하는 모습을 보며 나는 며칠전 읽었던 소설가 김주영씨의 「5공시절의 나에게 편지쓰기」란 글이 생각났다.
『…우리는 자신을 용서하는 데 관대하였고 남을 탄핵하는 데 가혹하였다』고 그는 쓰고 있다. 5공시절 정치인으로 지식인으로 국민으로 『아니다』라고 말해야할 때 말하지 못했던 사람들은 그 시절의 대통령에게 절대의 기준을 요구하는 대신 책임을 나눠지는 자세가 필요할 것이다.
전 전대통령의 증언은 4당대표들의 사전협의와 4당 간사들의 조정노력에도 불구하고 진통을 거듭했었다. 통과의례로 넘길 수밖에 없다고 생각하는 세력과 통과의례이기를 거부하는 세력이 충돌하고,많은 시간을 정회로 허비했다.
일부 야당의원들의 해프닝과 그로인한 정회소동은 그처럼 힘들게 마련된 전직 대통령의 국회증언에 대한 국회의원들의 성의 자체를 의심케 했다.
그들은 증인이 국회를 모독한다고 분개했으나 그들 스스로 국회를 모독하고 있었다.
31일 그의 증언은 끝내 중단되었고 국회의원들의 의사진행자세는 절망적이었다.
그처럼 역사적 의미가 큰 전직대통령의 국회증언은 한낱 정치쇼로 끝났다.
그러나 전 전대통령의 증언은 피차의 미흡함에도 불구하고 충분한 의미를 느끼게 했다. 자신의 재임시절 「불순세력」으로 감옥에 가뒀던 인물들이 의석을 차지하고 있는 국회에서 자신의 통치기간에 일어났던 일들을 해명하기 위해 고통스런 싸움을 벌이고 있는 전직대통령의 모습은 통치자란 결코 역사의 멍에로부터 해방될 수 없다는 교훈을 일깨워주었고,우리의 역사가 결코 뒷걸음칠 수 없으리라는 확신을 갖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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