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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 뒤흔든 '정윤회 파문' 결정적 장면들(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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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 뒤흔든 '정윤회 파문' 결정적 장면들(3)

입력
2014.12.12 15: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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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6년 박정희 대통령(왼쪽부터)이 대한구국선교단 야간진료센터를 방문해 박근혜 대한구국선교단 명예총재, 최태민 총재와 얘기를 나누는 장면. 한국일보 자료사진
1976년 박정희 대통령(왼쪽부터)이 대한구국선교단 야간진료센터를 방문해 박근혜 대한구국선교단 명예총재, 최태민 총재와 얘기를 나누는 장면. 한국일보 자료사진

'정윤회 문건 파문'으로 나라가 뒤숭숭하다. 박근혜 대통령은 "터무니없는 찌라시 얘기에 나라 전체가 흔들리는 건 대한민국이 부끄러운 일"이라고 말했지만, 문건의 진위 와는 별개로 의혹이 꼬리를 문다. 일각에서는 이번 사태를 두고 '박근혜 정부의 위기'라고 진단한다.

'비선 실세들의 국정농단 의혹 파장'이 거센 이유가 뭘까? 한국일보닷컴에서는 총 세 차례에 걸쳐 '정윤회 파문'의 모든 것을 다루고 있다. 1편에선 '문고리권력'과 '민정수석실'로 상징되는 청와대 내부 권력의 줄다리기를 살펴봤다. 2편에선 청와대 밖에서 벌어진 정윤회씨와 박지만씨의 세력 다툼과 비선들의 인사 개입 의혹을 정리했다. 3편에선 현 사태의 핵심 연결고리인 박 대통령과 비선 실세들의 과거를 돌아보고, 이번 사태의 원인을 짚어본다.

# 나라 뒤흔든 '정윤회 파문' 결정적 장면들(1) ▶기사보기

# 나라 뒤흔든 '정윤회 파문' 결정적 장면들(2) ▶기사보기

# 나라 뒤흔든 '정윤회 파문' 결정적 장면들(3) ▶기사보기

scene3. 과거 속으로… 권력 암투 첫 고리는 '최태민'

① '정윤회 문건' 금기를 깨다

11월28일 세계일보의 '정윤회 문건' 보도 이후 '숨은 실세'로 불린 정윤회씨와 관련된 의혹이 수면위로 떠오르면서 금기가 깨졌다. 과거 정씨의 이름이 주목 받을 때마다 박근혜 대통령은 민감한 반응을 보여왔다. 세월호 침몰 당일 박 대통령의 7시간 논란에서다. 청와대는 이를 보도한 산케이신문의 서울시국장을 명예훼손으로 고소했다. (▶기사보기) 지난해 2월, 박 대통령을 비방한 혐의로 실형을 산 조웅 목사 사건에서도 핵심 등장 인물은 정씨였다. (▶기사보기) 문건 유출 이후 정씨는 "결백"을 주장하며 전면에 나섰다.

② '최태민의 사위' 정윤회

정윤회씨는 미스터리한 남자다. 박근혜 대통령의 국회의원 시절 비서실장을 지냈지만, 2004년 이후 종적을 감춰 정치적 활동이 없었다. 박 대통령의 '비선조직'을 이끄는 '그림자 권력'이라는 얘기지만, 실체가 확인된 적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각종 의혹은 난무한다. 그가 박 대통령과 가까웠던 故최태민 목사의 다섯째 사위였고, 그 연유로 박 대통령의 정치 활동을 돕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기사보기)

지난 11일 정윤회씨가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검에서 강도 높은 조사를 받은 뒤 굳은 표정으로 청사를 나오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 11일 정윤회씨가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검에서 강도 높은 조사를 받은 뒤 굳은 표정으로 청사를 나오고 있다. 연합뉴스

③ 최태민은 누구인가

박근혜 대통령과 최태민씨, 정윤회씨로 이어지는 연결고리를 잘 이해하려면 최씨가 누구인지 알아둘 필요가 있다.

최태민은 누구인가

박 대통령과 최씨와 인연을 맺은 건 故육영수 여사가 유명을 달리한 후다. 1975년 박 대통령이 대한구국선교단 명예총재로 활동을 할 당시 최 목사가 총재를 맡고 있었다. 이후 최씨는 박 대통령의 정치적 후견인 역할을 맡았다. 최 목사는 박정희 전 대통령 시절부터 이어진 각종 비리 혐의가 논란이 되기도 했다. (▶기사보기)

④ 최태민과 최순실, 그리고 정윤회

문건 파문 이후 정윤회씨 만큼 관심을 받았던 인물은 정씨의 전 부인이자 최태민씨의 다섯째 딸인 최서원(올 4월 최순실에서 개명·7월 이혼)씨다. 특히 문건 파문 이후 정씨 부부가 승마 국가대표인 딸을 지원하기 위해 체육계에 외압을 행사했다는 의혹이 집중 제기됐다. (▶기사보기)

정씨 부부 자녀의 ‘승마 국가대표 밀어주기’ 의혹이 제기된 후 최씨의 존재에 관심이 모아졌다. 최씨는 박근혜 대통령과 '각별한 관계'로 알려져 있다. 박 대통령과 20대 시절부터 친분을 쌓았고, 1980년대에는 박 대통령이 이사장을 맡았던 육영재단 업무에 아버지인 최태민씨와 함께 관여했다. 최근에는 "박 대통령의 트레이너를 최씨가 소개했다"는 얘기도 나왔지만, 확인된 바 없다.(▶기사보기)

⑤ 박 대통령의 아킬레스건 최태민?

최태민, 최순실, 정윤회씨 모두 관련 의혹의 핵심은 박근혜 대통령과 가까운 관계를 무기로 각종 전횡을 휘둘렀다는 데 있다. 그래서 박 대통령을 견제하는 세력에선 ‘최태민 스캔들’을 약점으로 겨누곤 했다.

2007년 한나라당 대선 경선 후보자 청문회에서 이명박 당시 후보 측은 과거 중앙정보부의 '최태민 수사자료'를 공개했다. 이 자료에는 김재규씨가 항소이유서에서 최씨 문제를 박정희 대통령에게 보고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은 게 10·26을 일으킨 한 요인이라고 밝힌 내용도 담겼다. 김재규씨는 구국봉사단의 실권을 장악한 최태민씨의 각종 비리 의혹을 제기했고, 이에 대한 박정희 전 대통령의 처분에 불만이 많았다고 한다. (▶기사보기)

2012년 대선에서도 '최태민 스캔들'은 논란이 됐다. (▶기사보기) 하지만 최씨 관련 의혹이 불거질 때마다 박 대통령은 그를 감쌌다. 2004년 박 대통령은 "그분(최태민)이 저를 많이 도와주셨다"면서 "저에게는 고마운 분이고 그래서 음해도 많이 받았다"고 말한 바 있다. (▶기사보기)

2012년 박근혜 당시 새누리당 대선후보와 박지만씨가 서울 동작동 국립서울현충원에서 열린 고 육영수 여사 38주기 추도식에 참석해 고인의 육성녹음을 듣고 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2012년 박근혜 당시 새누리당 대선후보와 박지만씨가 서울 동작동 국립서울현충원에서 열린 고 육영수 여사 38주기 추도식에 참석해 고인의 육성녹음을 듣고 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⑥ 박근혜-박지만-박근령 애증 관계?

박근혜 대통령은 측근들과 허물없이 지낸 것과는 달리 혈육인 박지만·박근령씨와는 소원했다. 박 대통령 남매의 관계가 틀어지게 된 건 육영수 여사가 생전에 설립한 육영재단 운영권을 둘러싸고 분란이 일어나면서다. 2000년대 들어서 박지만씨와 박근령씨는 법정 분쟁을 넘어 폭력까지 동원하며 육영재단 경영권을 두고 박 대통령측과 다투기도 했다. (▶기사보기) 2005년 박지만씨의 부인인 서향희 변호사가 큰 아들을 낳으면서 박 대통령과의 관계가 회복됐지만, 오래가지 못했다. (▶기사보기)

⑦ 최태민 vs 박지만 ‘오래된 갈등'

박근혜 남매의 갈등은 ‘최태민-최서윤-정윤회’로 이어진 최측근 그룹과의 관계에서 비롯된다.

불화가 세상에 처음 알려진 것은 1990년 8월. 박지만-박근령 남매가 노태우 전 대통령에게 보낸 편지에서 흥미로운 부탁을 했다. 이 편지에서 남매는 "저희 언니와 저희들을 최씨의 손아귀에서 건져 주십시오"라면서 최태민씨의 정횡·비리를 주장했다. 노 전 대통령은 청와대 하명사건을 담당하는 이른바 ‘사직동팀’에 최 씨에 대한 내사를 지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기사보기)

⑧정윤회 vs 박지만 갈등, 미행으로 이어졌나

‘정윤회 문건 파문’ 정국에서 정윤회씨만큼 이름이 자주 등장한 건 박근혜 대통령의 동생인 박지만씨다. 사건을 촉발한 건 지난 3월 '시사저널'의 '정윤회, 박지만 회장 미행' 보도가 큰 몫을 했다. 검찰조사에서 정씨는 "결백"을 주장하며 박씨와 대질 조사를 요구했고, 박씨도 직접 나서서 반박할 것으로 보여 귀추가 주목된다. (▶기사보기)

그렇다면 ‘정윤회 문건’은 대체 왜 작성된 걸까. 문건이 작성된 계기와 유출을 놓고 '문고리 권력 3인방 vs 조응천 전 비서관'이 대리전을 치르고 있지만, 미행설 보도 이후 박씨 측이 정씨 측을 견제하는 과정에서 비롯된 일이라는 게 중론이다. (▶기사보기)

지난 10일 오전 청와대 집현실에서 열린 한.말레이시아 정상회담에 박근혜 대통령이 나집 말레이시아 총리의 인사말을 듣고 있다. 홍인기기자 hongik@hk.co.kr
지난 10일 오전 청와대 집현실에서 열린 한.말레이시아 정상회담에 박근혜 대통령이 나집 말레이시아 총리의 인사말을 듣고 있다. 홍인기기자 hongik@hk.co.kr

⑨ '공식 라인' 무력화한 비선 실세들?

문건의 진위나 유출 경위를 파악하는 검찰 수사가 한창이지만, 이번 파문에서 제기된 각종 의혹들은 모두 비선 ‘권력 실세’들의 전횡을 고발하는 데 있다. 과거 정권에서도 대통령 친인척이나 실세그룹이 인사 주도권을 놓고 충돌했지만, 정도가 지나치다는 얘기다. 당대 최고의 권력자로 알려졌던 김기춘 비서실장조차 ‘문고리 3인방’과 긴장관계에 있다는 얘기도 나왔다. (▶기사보기) 박 대통령이 ‘공식 라인’보다 ‘비선’의 의견을 중시한다는 불만이 정부 각료들이나 당에서 터져 나온 것도 주목해야 한다. (▶기사보기)

⑩ 박 대통령의 ‘불통’ 화 키운다

결국 모든 문제는 대통령에서 출발한다. 박 대통령 특유의 비밀주의와 불투명한 인사, 1인 국정 운영 스타일이 사태를 키웠다는 지적이다. 장관조차 박 대통령을 만나기 어렵게 만들면서 청와대의 문은 '문고리 권력들'에만 열어놓은 게 아니냐는 얘기다. (▶기사보기)

박 대통령은 여전히 문을 닫고 있다. 박 대통령은 "문건은 찌라시, 문고리 권력은 없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이상돈 중앙대 명예교수는 언론인터뷰에서 "박근혜 대통령의 비서관 세 명(이재만·정호성·안봉근)에 대한 의존도가 정상이 아니다"고 비판하면서 "박 대통령이 비선들을 정리하기 쉽지 않을 것"으로 내다봤다. (▶기사보기)

김지현기자 hyun1620@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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