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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브리 만화 속 건축의 발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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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브리 만화 속 건축의 발견

입력
2015.10.02 14: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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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튜디오 지브리 영화 '코쿠리코 언덕에서'에 등장하는 건물 중 하나인 '카르티에라텡'은 메이지 시대 일본 건축물이지만 서양식 건물을 흉내낸 스테인드 글라스 장식 등을 볼 수 있다. 대원미디어 제공
스튜디오 지브리 영화 '코쿠리코 언덕에서'에 등장하는 건물 중 하나인 '카르티에라텡'은 메이지 시대 일본 건축물이지만 서양식 건물을 흉내낸 스테인드 글라스 장식 등을 볼 수 있다. 대원미디어 제공

“나는 건물보다 건물 안에 있는 사람에게 관심이 있는 편입니다. 건물 안에 있는 사람의 행동… (중략) 그런 생각을 하다 보면 대단한 건물이 아니더라도 흥미진진하게 건물을 볼 수 있지요.”

올해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아시아영화인상을 수상한 일본 애니메이션 제작사 스튜디오 지브리를 30년간 이끌어 온 미야자키 하야오(74) 감독은 애니메이션 속 건물의 사소한 세부 사항들을 주의 깊게 챙겼다. 인물의 행동을 현실감 있게 연출하기 위해서는 배경이 분명해야 한다는 생각에서다. 부산시립미술관 2층에서 전시 중인 ‘스튜디오 지브리 입체건축전’에 소개된 설정화를 보면, 미야자키 감독과 스튜디오 지브리가 매력적인 캐릭터에 가려 눈에 띄지도 않는 배경 설정에 얼마나 공을 들이는지 알 수 있다.

미야자키 감독의 스튜디오 창립 파트너인 다카하타 이사오(80) 감독이 연출을 맡고 미야자키 감독이 장면설정을 담당한 ‘알프스 소녀 하이디’(1974)부터 이런 특징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하이디의 친할아버지 알름의 오두막은 스위스의 통나무집 샬레를 모델로 세세하게 설계했다. 예를 들면 오두막 양 옆에는 목공실과 가축장이 달려있고, 창문은 2개가 나 있는데 둘 중 한 창 아래에 벤치가 있다. 앞문은 문짝이 하나, 뒷문은 두 개다. 이런 설정들이 실제 애니메이션 제작 시 캐릭터의 움직임에 반영됐다.

건축전은 스튜디오 지브리 애니메이션의 아날로그 감성을 드러내는 건축물과 실제의 모델을 소개하고 있다. 가장 많이 등장하는 배경은 18~19세기 유럽 건축물이다. ‘마녀 배달부 키키’(1989) ‘붉은 돼지’(1992)처럼 가상의 유럽 도시를 무대로 한 작품에서 이 특징이 두드러진다. ‘코쿠리코 언덕에서’(2011)는 개화기 일본이 배경이지만 ‘카르티에라텡’이라 불리는 의양풍(疑洋風ㆍ일본 목수들이 서양식 건물을 흉내낸 목조 건축) 건축물을 주무대로 설정했다. 스테인드 글라스로 장식된 건물 내부 모습은 고딕 양식을 애호하는 미야자키 감독의 취향이 반영됐다.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의 무대는 유바바에 있는 거대 목욕탕이다. 에도 시대 목욕탕은 유바바의 목욕탕만큼은 아니지만 2층 규모로 화려하게 장식된 위락시설이었다. 대원미디어 제공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의 무대는 유바바에 있는 거대 목욕탕이다. 에도 시대 목욕탕은 유바바의 목욕탕만큼은 아니지만 2층 규모로 화려하게 장식된 위락시설이었다. 대원미디어 제공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2001)이나 ‘가구야 공주 이야기’(2013)처럼 에도 시대를 연상시키는 작품도 있는데, 일본 전통 건축물의 구조를 반영하고 있다. ‘센과…’는 에도 시대 서민들이 화려한 거대 목욕탕을 위락시설로 여기고 이용했다는 설정을 차용했다. ‘가구야 공주 이야기’와 ‘바람이 분다’(2013)에는 에도 시대부터 메이지 시대(1868~1912)까지 남아있던 오래된 민가의 모습이 나타난다. 이번 전시는 에도 도쿄 건축박물관과 협력해 일본 전통 가옥의 다다미 구조와 이를 제작한 목수들이 실제 이용한 목재도 소개하고 있다.

비현실적인 공간을 배경으로 한 작품은 잘 알려진 세계유산에서 모티브를 따왔다. ‘천공의 성 라퓨타’(1986)에 나오는 하늘을 떠다니는 섬 라퓨타는 북유럽 르네상스의 대표화가 피터 브뢰겔이 그린 바벨탑을 모델로 삼았다. 라퓨타 위의 건물들은 이스탄불의 아야 소피아에서 볼 수 있는 비잔틴 양식을 닮아 있다.‘바람계곡의 나우시카’(1984)의 사막지대 국가 ‘페지테’의 건축물은 서아프리카 젠네의 진흙 모스크를 닮았다.

영화 ‘바람계곡의 나우시카’에는 환경이 파괴된 사막지대에 건설된 도시국가 ‘페지테’가 등장한다. 이 도시는 서아프리카 사막지대의 진흙마을 젠네에서 모티브를 따왔다. 대원미디어 제공
영화 ‘바람계곡의 나우시카’에는 환경이 파괴된 사막지대에 건설된 도시국가 ‘페지테’가 등장한다. 이 도시는 서아프리카 사막지대의 진흙마을 젠네에서 모티브를 따왔다. 대원미디어 제공

전시를 감수한 일본의 건축사가 후지모리 데루노부는 “지브리 건축의 특징은 구조와 디테일의 설정이 현실적이라는 것인데 이런 섬세한 설정은 충분한 경험 없이는 불가능하다”고 평가했다. 그는 또 “지브리의 건축물은 내가 이상으로 생각하는 자연과 인공의 접점을 찾은 건축”이라 말하기도 했다. 전시장에는 스튜디오 지브리 박물관에서 가져온 미니어처와 애니메이션 속 건물 내부를 실제 인체 크기에 맞게 재현한 장소 등이 있어 관람에 재미를 더한다. 11월 29일까지. (051)747-9384

부산=인현우기자 inhyw@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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