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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코올 중독’ 마을 변화시킨 인도 10대 소녀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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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코올 중독’ 마을 변화시킨 인도 10대 소녀들

입력
2017.10.28 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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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주ㆍ폭력 가득했던 타밀나두주 한 마을

소녀들 의기투합, 토론 거쳐 개선안 마련

가로등 수리, 도서관 설립 등 변화 현실로

“학대받는 친구들 위해 모임 활동 지속”

뗀나마데비 마을의 ‘여학생 모임’ 회원들. 소녀들은 일주일에 한 번씩 모여 마을 개선 방안을 논의한다. 가디언 캡처
뗀나마데비 마을의 ‘여학생 모임’ 회원들. 소녀들은 일주일에 한 번씩 모여 마을 개선 방안을 논의한다. 가디언 캡처

‘술독’에 빠진 마을을 변화시키기 위해 10대 소녀들이 뭉쳤다. “한 번 바꿔보자”는 이들의 작은 목소리는 거대한 울림으로 변해 폭력과 증오만 감돌았던 마을은 어느덧 생기 넘치는 공동체로 탈바꿈하고 있다. 인도 남동부 타밀나두주에서 일어난 일이다.

영국 일간 가디언은 26일(현지시간) 매주 토론을 거쳐 인도 타밀나두주 뗀나마데비 마을을 변모시키고 있는 ‘여학생 모임’을 소개했다. 뗀나마데비에선 대낮부터 술에 취해 비틀거리는 남성들과 쉽게 마주칠 수 있다. 마을 남성 150여명이 대부분 알코올 중독자인 탓에 제대로 일을 하기는커녕, 자녀 학대 등 폭력을 일삼는 날이 부지기수였다.

침체의 수렁에 빠진 마을을 되살리려면 뭔가 특단의 대책이 필요했다. 어른들도 주저하고 있을 때 선뜻 손을 든 건 20명 남짓한 어린 여학생들이었다. 이들은 6개월 전 소모임을 만들었다. 매주 목요일마다 회의를 열고 마을 개선 방안을 논의했다. 작은 문제 하나 허투루 넘기는 법 없이, 인내심을 갖고 열띤 토론을 거쳐 끝내 합의점을 찾아 냈다.

처음에는 누구도 소녀들의 의견에 귀 기울이지 않았다. 하지만 민주주의 의사결정 절차를 통해 나온 합리적 개선안에 점차 공감하는 분위기가 형성되면서 변화는 나타나기 시작했다. 몇 달째 고장난 채 방치된 가로등을 수리하는 등 작은 민원 해결은 기본. 이제는 도서관 설립같은 주민복지 방안도 현실이 됐다. 버스가 지나가지 않아 불편하다는 불만이 비등하자 지방의회에 낼 탄원서를 작성하는 것도 소녀들의 몫이다. 모임 대표 소미야(16)양은 “구성원 각자가 리더라는 주체의식과 사명감을 갖고 좋은 마을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공동체의 체질을 바꾼 10대들의 이야기는 마을 울타리를 넘어 인도 전역으로 퍼졌고, 수많은 이들이 소녀들에게 응원을 보내고 있다. 저소득 계층에 직업기회를 부여하는 ‘스코프 인디아’의 책임자 사디야 바부는 “뗀나마데비를 책임지기로 결정한 아이들이 원하는 건 진정한 변화”라고 강조했다.

물론 아직 갈 길은 멀다. 마을에서는 여전히 많은 아이들이 사라지고 있다. 아버지의 계속된 학대를 견디지 못해 삶의 터전을 등지는 것이다. 이들의 종착지는 거주지에서 6㎞ 정도 떨어진 기차역 빌루푸람역. 이 곳에선 올해 5월까지 무려 4,000건의 범죄 신고가 접수됐다. 구걸 강요부터 강제 결혼, 성매매 등 다양한 아동 범죄가 기승을 부리고 있다. 바부는 “도망쳐 나온 어린이들의 상태는 처참함 그 자체”라며 “옷은 찢겨져 있고, 심지어 알몸인 채로 발견되기도 한다”고 전했다.

아버지의 술주정을 피해 거리를 떠돌았던 카난 지바나담(16)군도 그 중 하나였다. 발견 당시 흐느끼기만 했던 소년은 다행히 스코프 인디아의 도움으로 현재 직업 교육을 받고 있다. 그리고 여학생 모임 소식을 듣고 집에 돌아갈 날을 손꼽아 기다리는 중이다. 모임 회원인 고살라 라하키시난양은 가디언에 “우리의 운명을 받아 들이고 비참한 처지에 놓여 있는 또래 친구들에게 더 나은 미래를 선사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힘주어 말했다.

박혜인 인턴기자 (중앙대 정치국제학과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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