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닫기

알림

[뒤끝뉴스] 박대통령 "아니, 청와대를 뭘로 알고…" 5자회동 뒷얘기

입력
2015.10.23 13:57
0 0
박근혜 대통령과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 원유철 원내대표, 새정치민주연합 문재인 대표 이종걸 원내대표가 22일 오후 3시 청와대에서 회동하고 있다. 연합뉴스
박근혜 대통령과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 원유철 원내대표, 새정치민주연합 문재인 대표 이종걸 원내대표가 22일 오후 3시 청와대에서 회동하고 있다. 연합뉴스

22일 박근혜 대통령과 여야 당 대표, 원내대표 5인이 만났던 청와대 ‘5자회동’은 시작 전부터 끝나고 나서까지 말이 많았습니다. 특히 논의 내용은 둘째 치고라도 참석자 수, 대변인 배석, 임석 여부, 회동 결과 브리핑 방식 등 형식과 외적인 요소까지도 어느 것 하나 말끔하게 처리되는 게 없었습니다. 오죽했으면 회동의 개최 여부 자체가 오전 11시(예정은 오후 3시)가 넘어서야 결정이 됐을 정도입니다. 그 만큼 청와대와 새정치민주연합의 신경전은 뜨거웠습니다.

새정치연합은 전날 저녁까지만 해도 회동 내용을 국민들에게 정확히 전달하기 위해서는 대변인이 현장에서 참가자들의 발언 내용을 정리할 수 있게 해야 하고 그것이 관행이었다며 이것이 받아들여지지 않을 경우 회동의 개최 여부 자체가 불투명해질 수 있다고 ‘견제구’를 날리기로 했습니다. 결국 청와대가 끝까지 대변인의 메모를 거부했고 새정치연합은 양당 원내대표들에게 ‘임시 대변인’ 역할을 맡기자는 청와대 요구를 받아들이는 선에서 어렵사리 회동에 참여하기로 했습니다.

사실 이 결정이 내려지기 전까지도 새정치연합 내부에서는 “어차피 가봐야 합의될 내용도 없고 각자 자기 얘기 하다 올 것 같은데 이 참에 회동을 미루거나 불참하자”는 의견과 “꿇릴 것 없고 역사교과서 국정화 이슈는 불리할 게 없는데 좀 불편하더라도 당당히 나서자”는 의견이 엇갈렸다고 합니다.

우여곡절 끝에 일단 열기로 했지만 청와대 회동 장소에서까지 신경전은 이어졌습니다. 회동 때 오간 발언을 되도록 ‘있는 그대로’ 전하려는 새정치연합과 청와대 사이에 승강이도 벌어진 것입니다. 문 대표가 “야당이 듣는 국민의 목소리를 듣는 기회가 되길 바라고 5자회동에 응했는데, 이렇게 기록도 될 수 없는 상황이라면 만나는 방식에 문제가 있는 것 아니냐”고 지적한 데 대해 박 대통령이 “한자 한자 따지는 것이 아니지 않느냐. 세밀하게 그렇게 적어야 하느냐”며 “우리끼리 이야기하는 게 좋겠다”고 난감해 했다는 후문입니다. 그러자 이 원내대표가 “휴대전화로 녹음이라도 할 수 있게 해달라”고 제안했으나, 박 대통령이 직접 "아니 청와대를 뭘로 알고 그러세요"라며 거절했다고 합니다. 이 원내대표는 곧이어 “현기환 정무수석이 기록하니 그것이라도 한 부 넘겨달라”고 거듭 요청했지만 박 대통령이 반대한데다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가 “그건 더더욱 안 된다”고 강하게 거부해 거부했습니다.

결국 회동 내용의 뒷마무리는 참석자들의 몫이었습니다. 지난 3월의 박 대통령과 김무성 대표, 문재인 대표가 만난 ‘3자회동’ 때는 이병기 청와대 비서실장이 김·문 대표와 1시간 가량 조율을 거쳐 공동 발표문을 만들고 양당 대변인이 언론에 브리핑했습니다.

그러나 이번에는 달랐습니다. 박 대통령과의 회동이 끝나자 마자 여야 지도부는 추가회동 없이 곧바로 청와대를 떠났습니다. 청와대와 새정치연합이 별도의 발표문을 만들지 않기로 했기 때문입니다. 대신 자체적으로 ‘작전 타임’을 가졌습니다. 새정치연합은 문 대표, 이 원내대표가 각자 메모한 내용을 가지고 시내 한 호텔에서 대변인단과 함께 A4 용지 5장에 대화 내용을 복기해 언론에 브리핑했습니다. 야당의 경우 별도의 작전 타임 때문에 언론 브리핑도 예전보다 2시간 가까이 늦춰진 오후 7시가 돼서야 진행됐습니다. 브리핑에 나선 이 원내대표는 “손이 아프도록 적었다. 얘기하랴 적으랴…”라고 ‘받아쓰기’의 고충을 털어놓았습니다.

새누리당 원 원내대표도 곤욕을 치렀습니다. 원 원내대표는 “거의 토론 수준으로 진행됐다”는 이날 회동에서 발언과 필기를 번갈아 한 자신의 처지가 “(농구의) 올코트 프레싱(공격, 수비 정신없이 뛰어다니는 것)”이었다고 빗댔습니다. 회동 상황을 자세히 묘사해달라는 기자들의 요구에 원 원내대표는 회동 때 받아 적은 메모지를 뒤적이느라 진땀을 빼기도 했습니다. 원 원내대표는 “말하고 적고 그러느라 (대화 내용을 모두 기억하는 게) 물리적으로 불가능하다”고 토로하면서 “어떨 땐 저도 뜨거워져 흥분해서 이야기도 했다”고 소개했습니다. 심지어 원 원내대표는 김 대표의 발언을 박 대통령의 발언으로 잘못 전달했다가 정정하는 해프닝도 빚었습니다. 원 원내대표는 애초 박 대통령이 “예단해서 교과서를 친일이니 독재니 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라고 말했다고 전했으나, 나중에 “당 대표님 말씀으로 기억한다”며 이 발언이 김 대표의 입에서 나온 것이라고 바로잡았습니다.

이런 상황들은 언뜻 봐서는 ‘청와대ㆍ여당 vs 야당의 기 싸움’으로 비칠 수도 있지만, 정치권에서는 여태껏 대통령과 야당 대표의 만남 때와는 사뭇 다른 풍경인지라 다른 정치적 해석을 내놓기도 합니다. 청와대로서 박 대통령의 구체적 발언 등 너무 많은 내용이 야당 대변인 입을 통해 알려지는 게 불편했을 수 있다는 뜻에서 일종의 ‘방어용 조치’라는 것이지요.

그런데 청와대는 이날 오후 9시가 넘어 언론에 긴급 메시지 하나를 보냈습니다. 5자회동에서 역사교과서와 관련해 박근혜 대통령의 발언을 추가한다는 내용이었습니다. 기사 작성에 참고하라는 뜻인데요. 양당 대표, 원내대표들의 입을 통해 전달되는 대통령의 발언이 서로 엇갈리고, 진의가 잘못 전달되는 것 같다는 판단에 바로 잡을 필요가 있다는 판단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때문에 기사를 쓰던 기자들도 어떤 발언이 맞는지 확인 또 확인을 해야 했지만, ‘원유철 버전’, ‘이종걸 버전’으로 기사를 쓰거나 썼던 기자들은 ‘녹음 파일’ 원본을 갖고 있는 것은 청와대였으니 ‘청와대 버전’이 나온 다음 뒤늦게 대통령 발언 부분을 고치기도 했습니다. 그러면서 자연스레 ‘굳이 이럴 거면서 왜 대변인들의 받아 적기를 거절했을까’ 하는 아쉬움도 떠올랐죠.

야당도 회동 후 빚어진 혼선을 두고 ‘이건 아니다’라는 분위기였습니다. 김정현 새정치민주연합 수석부대변인은 23일 논평을 내고 “이런 식이라면 어느 야당이 앞으로 청와대와 회담을 하려 하겠으며, 어느 반대세력이 대통령과 허심탄회한 이야기를 하려 하겠느냐”며 “더욱 가관은 청와대가 국정교과서 관련한 대통령의 워딩만 쏙 뽑아 야밤에 뿌린 것이며 국정교과서에 대한 대통령의 입장을 전면에 내세워 현재의 수세국면을 돌파해보려는 의도가 뻔하지만 대통령이 색깔론을 정면으로 제기해 결국 국론을 분열시키는 결과만 초래할 뿐이다. 이것은 대통령이 해야 할 일이 아니”라고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청와대 5자회동은 108분 동안 진행됐지만 결국 시작 전부터 끝나고 나서까지 참으로 많은 버전의 ‘말’들이 떠돌아 다녔습니다.

박상준기자 buttonpr@hankookilbo.com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