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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순간, 기적을 바랄 것인가 이별을 준비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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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순간, 기적을 바랄 것인가 이별을 준비할 것인가

입력
2015.06.05 15: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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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에서도 무의미한 연명치료를 거부하는 사전의료의향서 작성 운동이 일었다. '안녕카드'는 의식을 회복할 수 없는 환자의 입장을 대변한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국내에서도 무의미한 연명치료를 거부하는 사전의료의향서 작성 운동이 일었다. '안녕카드'는 의식을 회복할 수 없는 환자의 입장을 대변한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죽음을 피하고자 하는 마음은 지당하다. 우리가 마지막까지 삶을 갈구하는 것은 생에 끝이 있음을 몰라서가 아니다. 오히려 이별이 남길 상실 허무 그리움의 무게를 너무나 생생하게 기억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생명을 보호하고 연장시키는 의료 시스템의 작동에 안도하고, 오작동이나 정지를 목도할 때 분노를 느낀다. 외과 수술, 방사능 치료, 화학 치료 등 현대의학의 처치들의 행동강령은 단연 ‘생명 연장’이다.

‘어떻게 죽을 것인가’는 비약적으로 발전해 온 이 현대의학이 오히려 존엄하고 품위 있는 죽음을 방해한다고 지적한다. 저자 아툴 가완디는 ‘나는 고백한다, 현대의학을’ ‘닥터, 좋은 의사를 말하다’ 등의 전작으로 미국에서 과학 저술가로 탄탄한 입지를 다져온 의사다.

'어떻게 죽을 것인가' 아툴 가완디 지음ㆍ김희정 옮김 · 부키 발행ㆍ400쪽ㆍ1만6,500원
'어떻게 죽을 것인가' 아툴 가완디 지음ㆍ김희정 옮김 · 부키 발행ㆍ400쪽ㆍ1만6,500원

그는 가족이나 자신을 거쳐간 환자들의 경험을 토대로 ‘할 수 있는 것은 다 해보겠다’는 현대 의학이 망가뜨린 죽음의 순간을 담담하게 풀어낸다. 8시간 반에 걸친 수술로 척추 종양은 제거했지만 수술의 부담에서 회복되지 못한 환자는 호흡부전, 전신감염, 출혈로 무너져 내렸고 가족들은 결국 2주 만에 의료진에게 ‘이 모든 것을 멈춰 달라’고 말했다. 저자는 숱한 환자들을 겪으며 “아주 조금 나아질 가능성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이유로 뇌를 둔화시키고 육체를 서서히 무너뜨리는 치료를 받으며 점점 저물어 가는 삶의 마지막 나날들을 모두 써 버리게 만드는 것”이 과연 의사의 바람직한 책무인지 자문한다.

“우리는 19세기의 원시적인 의사들보다 조금도 나을 게 없었다. 우리가 환자에게 새로운 형태의 육체적 고문을 가한 것을 생각하면 말이다.”

저자는 처할머니의 사례를 통해 많은 환자들이 고립돼 치료를 받는 요양원 중환자실의 비인간성을 언급한다. 생의 주도권을 잃은 그녀는 “깨우면 일어나고, 목욕시켜 주면 하고, 먹으라고 하면 먹었으며, 아무하고나 같은 방을 써야”했고 그간 삶에서 가장 중요하게 여긴 모든 것, 가족 친구 부엌 서재 일상으로부터 단절될 채 몰개성화된 일상을 견뎌야 했던 것이다.

그래서 저자는 인간적 ‘삶의 질’을 희생하지 않는 여러 치료 및 요양 시설들의 실험에 주목한다. 미국 오리건주에 설립된 ‘어시스티드 리빙’은 ‘아무도 감금됐다고 느끼지 않도록 하자’는데 목표를 뒀다. 모두 독립된 공간에서 원하는 반려동물과 지냈고 음식, 위생관리, 약 복용에 대한 도움만 받았다. 환자들의 우울증이 급감했고 정부 보조금도 20% 절감됐다.

가완디는 소모적이기 일쑤인 생명연장 치료를 줄이기 위해 의료계가 먼저 변해야 한다고 촉구한다. 또 우리 각자 삶의 마지막 단계에 대한 구상을 준비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미국 위스콘신주 라 크로스 지역에서는 의료진과 환자에게 이 구상을 장려했더니, 생의 마지막 6주에 병원에서 보내는 시간과 종말기 의료비용이 전국 평균의 절반으로 떨어졌고 기대 수명이 1년이나 늘었다. “언젠가 벌어질 일임에도 우리는 이 문제에 대해 생각하기를 싫어한다. 그 결과 대부분 아무런 준비 없이 그 단계에 도달한다. 도움을 필요로 할 때 어떻게 살 것인지 거의 신경 쓰지 않고 지내다가 뭔가 해보기에는 너무 늦은 시기에 이르게 되는 것이다.”

마지막 순간, 생에 대한 갈망 절박 의욕을 탓하는 것이 저자의 목표는 아니다. 오히려 그가 외치는 것은 “냉혹하고 가차없는 삶의 사이클을 받아들이기를 거부하는 우리의 습성 때문에 늙고 병든 구성원들이 이미 희생되고 있는 것은 아니냐”는 인간성의 회복이다.

이 때문에 책의 마지막 장 제목은 ‘용기’다. 누구에게나 끝이 있다는 것을 받아들여야 할 최후의 순간은 찾아오기 마련이며, 이 때 필요한 유일한 덕목이 용기라는 것이다.

가완디의 담담하고 진솔한 고백을 따라가다 보면, 결국 애석하게도 인간이 극복해야 할 가장 난해한 불치병은 ‘죽음을 이길 수 있을 것이라는 헛된 희망’이라는 생각에 이른다. 마지막 순간 기적을 향한 노정을 택할 것인가, 담담한 이별을 준비할 것인가. 선택은 결국 독자의 몫이다. 언젠가 존엄한 죽음을 택하고 싶지만, 질긴 희망을 등질 용기가 도통 나지 않을 것 같은 이들에게 일독을 권한다.

김혜영기자 shin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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