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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은 날리고 남은 건 빚 뿐인 아파트

입력
2014.07.20 19: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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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파트에 한번 살아보겠다고 한 게 살던 집 잃고 빚만 떠안고, 믿을 수가 없어요.”땅만 내주면 아파트를 준다고 한 주택조합과 컨설팅 회사의 꾐에 넘어가 멀쩡한 집을 잃은 이수 리가 아파트 조합원들은 이게 누구 잘못인지 좀 밝혀내 달라고 호소했다. 왕태석기자 kingwang@hk.co.kr
“아파트에 한번 살아보겠다고 한 게 살던 집 잃고 빚만 떠안고, 믿을 수가 없어요.”땅만 내주면 아파트를 준다고 한 주택조합과 컨설팅 회사의 꾐에 넘어가 멀쩡한 집을 잃은 이수 리가 아파트 조합원들은 이게 누구 잘못인지 좀 밝혀내 달라고 호소했다. 왕태석기자 kingwang@hk.co.kr

452채의 아파트가 작년 가을에 완공됐다. 분양도 했다. 그런데 밤이 되면 아파트 전체가어둑어둑하다. 불이 들어오는 창이 별로 없다. 175세대만 입주를 했기 때문이다.

서울 동작구 사당동 171번지 일대, 지난 주 기사(7월 14일자 28면 보도)에서 파산 위기에 있다고 난 바로 그 아파트 단지이다.

이 아파트 단지도 고만고만한 단독주택이나 다가구 주택을 가진 지역주민들의 주택조합으로 건설됐다. 그런데 조합원 238 가구 가운데 입주한 집은 65가구 뿐이다. 그나마 처음부터 조합에 참여했던 이들 가운데 들어간 집은 45가구. 122가구는 조합이 마구 팔아 넘긴 ‘물딱지’(자격 없는 이들에게 발행한 분양권)여서 정리가 됐고 20가구는 추가로 조합원을 모집하면서 자격을 얻은 이들이다. 조합원으로 시작했으면서도 들어가지 못한 이들은 자식들의 집에 얹혀 살거나 주변에서 방을 얻어 살고 있다.

“33평 땅만 내놓으면 33평형 아파트 한 채를 준다기에 시작했어요. 우리 집이 35평짜리 단독주택이니까 남는 2평은 땅값을 쳐준대요. 2008년인가? 남편 통장으로 1,000만원이 입금됐어요. 평당 500만원이예요. 당시 땅값이 평당 1,200만원인가 그랬다는데 우리가 뭐 아나요? 그래도 새 아파트가 그걸로 생긴다니까 믿었지요. 그런데 공사비가 많이 들었다고 2009년에 분담금을 5,500만원씩 더 내래요. 이상하다 했는데 남들이 가만히 있으니까 가만히 있었어요. 그런데 2012년에 분담금을 2억8,700만원을 내라는 거예요. 기가 막혔지요. 그래서 조합이 도대체 어떻게 일을 했냐고 주민들이 알아보기 시작했는데 황당한 일 투성이예요. 그래서 조합 집행부도 바꿨어요. 그러면 뭐해요. 전에 조합이 잘못한 책임을 우리가 똑같이 져야 한다는 거예요. 지금 못 들어가는 사람들은 그 돈을 낼 수 없으니까 못 들어가는 거예요.”84년에 이곳에 이사왔다는 최연옥(57)씨 부부는 이렇게 해서 아들 넷을 키운 집을 잃었다.

1968년인가, 69년인가 이사온 해가 기억나지 않을 정도로 오래 전부터 이곳에 살았던 최세완(74)씨는 40평 남짓한 단독주택에 대추나무 감나무를 심고 삼남매를 키웠다. 길 가 집이고 상점도 있어서 최연옥씨보다는 가격을 높이 받았다. “6평 조금 넘는 땅값으로 평당 1.000만원씩 받고 상가권리금 3,000만원은 따로 받았어요. 그럼 뭐해요. 아파트에 들어가지도 못하고 반지하 전세에서 살고 있어요. 아파트만 안 했으면 지금쯤 상점 세(임대료) 받으면서 편하게 살았을 텐데. 전 조합장이 그랬어요. 나만 입다물고 가만히 있어주면 다 해준다고, 도장 좀 찍어달라고. 그 말을 믿었던 게 더 화가 나요.” 최씨는 꼭 이 일 때문인지는 모르겠으나 암이 발병해 수술만 세 차례를 받았다고 했다.

이수 리가 아파트의 과거와 현재에는 우리나라 아파트 건설의 모든 부조리가 녹아있다. 주민들이 자기 권리를 빼앗기는 줄도 모르고 무조건 주택조합 설립에 도장을 찍어준 게 시작이다. 아파트가 건설되면 돈을 번다고 생각한 이기심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당사자 책임만 추궁하기에는 그들을 둘러싼 주변의 상황이 너무 가혹하다. 조합의 부패, ‘컨설팅사’로 불리는 아파트 건설 사전정지 업체의 부패, 그들의 자금줄이 되어주는 대형건설사의 무책임, 금융업계의 부도덕이 어우러져서 시민들의 주거지를 약탈하는데도 지방정부가 지역주민들의 권리를 보장해주기는커녕 업자들의 편의대로 움직였다. 주민들은 자기 땅이 아파트 단지로 바뀌어가는 과정에서 컨설팅사와 조합의 감언이설이 아닌 진짜 전문가들의 자문은 단 한 군데서도 받을 수 없었다.

6,600여평인 이곳을 아파트 단지로 만들려는 시도는 부동산 가격이 올라가는 2000년부터 꾸준히 있어왔다. 지금은 퇴진한 전 조합장(김인창)이 형까지 선고 받은 이전 주택조합자료에 따르면 2001년에 주택조합이 결성되었다. 7개 건설사가 시행사로 나섰다가 포기하는 우여곡절을 겪은 끝에 2007년 7월에 현재의 시공사인 LIG건영으로 확정이 됐다. 2008년 11월에 지역주택조합으로 인가가 났다.

지역주택조합은 재건축조합과 달리 서울에 거주하면서 집은 없는 이들에게 조합 자격을준다. 무주택자를 위한 주택 제공이 목적이기 때문이다. 집이 있으면서도 이곳 주민들이 지역주택조합을 하게 된 배경은 집들이 너무 깨끗해서 재건축 지역으로는 선정될 수 없었기 때문. 지역주택조합은 조합이 땅을 마련해서 짓는 것이기 때문에 지방정부가 강제할 임대주택 건설의무가 없는 대신 용적률이 좀 낮았다. 조합원들이 집이 없는 세대주여야 하기 때문에 원래 있던 집을 모두 조합에 출자하는 방식을 택했다.

지역주택조합의 용적률이 재건축조합보다는 낮다고는 해도 200% 가까이 됐고 착공에 들어갔을 때에는 224%로 올랐다. 그러니까 아파트 건설에 들어가는 땅값은 시세의 절반 이하였다. 더구나 33평형 아파트의 실평수는 25.7평이니까 주민들로부터 33평의 땅을 받아서 269%의 용적률로 아파트를 짓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거꾸로 계산하면 아파트 건설에 필요한 평당 땅값은 그보다도 훨씬 더 떨어진다는 말. 가령 평당 1,200만원에 땅값을 쳐줬다면 실제로 아파트 건설에 들어간 땅값은 평당 446만원이다. 평당 건설비는 310만원이라 주장했으니 평당 756만원이 아파트를 짓는 데 진짜로 들어간 돈이다. 땅을 시세대로 사들였다고 해도 33평형 아파트를 지은 원가는 2억 4,948만원이다. 그런데도 땅을 무상으로 내준 조합원들에게 추가분담금만 2억8,700만원을 더 내라는 것이 시공사의 주장이다. 원가에서 차지하는 비용면에서 땅값이 건설비용보다 훨씬 더 비싼 것을 감안하면 받아들이기 힘든 주장이다. 더구나 용적률을 감안하면 주민들은 89평의 땅을 제공한 셈이었다.

그러나 시공사측은 조합이 732억원을 시공사에 빌렸고 시공사 보증으로 빌린 프로젝트파이넌싱(PF) 대출금 900억원까지 받기 전에는 아파트를 내줄 수는 없다고 했다. 조합원들이 아파트로 들어갈 길이 막힌 것은 이 때문이다.

이에 대해 조합측은 PF 대출을 한 금융업체와 시공사를 상대로 채무 부존재 소송을 냈으나 올 5월 1심 판결 결과 일부 패소했다. 시공사의 채무는 694억원으로 줄었으나 나머지는 인정하라는 것이 재판부 입장이다. 결국 694억원과 PF 대출금 900억원, 미지급 공사비에 연체이자까지 포함해서 2,780억원을 갚아야 아파트를 내주겠다는 것이 시공사 입장이다. 미분양 아파트를 판매해서 갚는다고 해도 1,377억원의 채무는 조합원들이 책임져야 한다는 것이다. 인근 시세보다 높은 분양가에 아파트가 다 분양된다는 보장도 없다.

반면 조합은 조합이 정식 인가가 나기도 전인 2008년 4월에 컨설팅회사에게 PF 대출을 900억원이나 해줬는데 그 비용이 어떻게 쓰였는지 불확실하기 때문에 그건 연대보증인인 시공사가 책임져야 한다는 입장이다.

주택조합은 외형적으로는 조합원들이 비용을 모아 땅을 사고 건설사를 지정해서 아파트 단지를 만드는 것으로 되어 있지만 실제로는 조합은 허수아비거나 이권에 관심많은 개인일 뿐이라 속칭 ‘컨설팅 회사’로 불리는 부동산 기획회사들이 주민들을 접촉하고 설득하고 땅을 사들여서 건설을 주도한다. 이때 진짜 비용을 대는 것은 아파트 단지 건설로 이득을 보는 시공사이다. 2008년 4월에 컨설팅 회사인 피엔씨에이원이 대구은행 새마을금고연합회 등으로부터 900억원을 대출할 수 있었던 것도 LIG건설이 보증을 해줬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돈이 시공사로 들어갔다가 모회사로 옮겨간 후 그 중 694억원이 다시 대출 형식으로 건설비로 투입되었다고 조합원들은 보고 있다. 그런데도 2009년 4월 시공사와 PF 대출이 별개로 되어있는 컨설팅회사의 부채를 조합이 그대로 떠안는 것으로 정관이 바뀌었다.

앞서 말했듯이 이 지역에 현재의 아파트 단지를 건설하는 데 드는 순비용은 1,128억원 정도이다. 여기서 주민들이 땅을 전부 제공했다고 하면 순수건설비는 462억원이 고작이다. 그런데 땅을 내놓고도 1,377억원의 채무를 나눠 갚아야 자기 아파트 한 채를 가질 수 있게 된 것이 현재 조합원들의 처지이다. 조합인가부터 완공까지 5년, 착공부터 완공까지 3년간의 관리비용을 감안해도 과도한 비용추궁이다. 문제를 일으킨 이전 조합은 땅을 팔지 않겠다는 ‘알박기’ 주민들로부터 땅을 사들이는데 들어간 돈이 많았다고 주장했으나 증거는 없는 상황. 걔중에는 38평을 61억원에 사들였다는 컨설팅 회사의 자료가 있으나 이 돈이 실제로 지급됐는지는 확인하기 어렵다.

설사 이처럼 알박기 비용을 무리하게 지급한 것이 사실이라고 해도 이 같은 자금은 땅이나 조합원 외에는 실제로는 아무 것도 갖지 못한 조합에서 나온 돈도 아니고 컨설팅 회사가 자체 조달한 돈도 아니다. 시공사와 대출해준 금융기관에서 나온 돈이다. 그렇다면 그 돈이 제대로 쓰였는지 감시하지 못한 책임을 조합에만, 주민들에게만 지우는 것이 올바를까.

서화숙선임기자 hssu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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