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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디션 프로-진학-취업… 서바이벌 게임을 끝없이 반복하는 현실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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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디션 프로-진학-취업… 서바이벌 게임을 끝없이 반복하는 현실세계

입력
2015.11.15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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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스탠리 패러블'은 1인칭 탐험 게임이다. 게임의 주인공 스탠리는 거대 빌딩에 입점한 회사에서 지령대로 키보드 버튼을 누르는 게 임무였다. 그런데 어느 날 아무런 지령도 없이 동료도 사장도 사라진다. 개발자 데이비 레든은 한 인터뷰에서 "이 게임은 다른 포맷으로는 이루어질 수 없는 방법을 통해 제 생각과 감정을 얼마나 심오하게 전달할 수 있느냐는 자기 성찰의 편린이며 게임성(gameness) 자체에 대한 명상”이라고 밝혔다. ⓒGalactic Cafe
'더 스탠리 패러블'은 1인칭 탐험 게임이다. 게임의 주인공 스탠리는 거대 빌딩에 입점한 회사에서 지령대로 키보드 버튼을 누르는 게 임무였다. 그런데 어느 날 아무런 지령도 없이 동료도 사장도 사라진다. 개발자 데이비 레든은 한 인터뷰에서 "이 게임은 다른 포맷으로는 이루어질 수 없는 방법을 통해 제 생각과 감정을 얼마나 심오하게 전달할 수 있느냐는 자기 성찰의 편린이며 게임성(gameness) 자체에 대한 명상”이라고 밝혔다. ⓒGalactic Cafe

우리 시대는 사회 전반에서 게임화(gamification)가 진행되고 있다. 기업의 마케팅 기법에서 정부 정책 홍보, 교육, 강연, 금융 거래와 군사 안보에 이르기까지 게임이 아닌 것을 게임처럼 생각하고, 재미있는 요소를 부여하여 게임처럼 만드는 것을 ‘게이미피케이션’이라고 한다. 이것은 노동자 스스로 자본의 신경에너지 착취에 순응하게 되는 통치 전략의 일환이기도 하다.

게임의 승자가 되고 싶다면 게임의 규칙을 따라야 한다. 개인의 실패는 게임에 능수능란하지 못했던 자기 책임이지, 게임의 체제를 추궁할 수도 없다. 이런 게임에 몰입할수록 게이머는 시스템에 더욱 강하게 속박된다.

현실이 된 게임, 게임이 된 현실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인셉션’(2010)도 스테이지마다 정해진 미션을 수행하고 다음 스테이지로 넘어가는 전형적인 게이미피케이션 형식을 따르고 있다. 지난해 개봉한 ‘인터스텔라’ 역시 이 계열의 변주였다. 주인공이 편집증 환자라고 느껴질 만큼 자기 행동의 목표와 의지가 분명하다는 것이 게임화된 서사물의 특징이다. 가령 A에서 B 지점까지 도달해야 한다면, 무슨 수를 쓰든 거기에 이르고야 만다. 평범한 인간을 주인공으로 내세워서는 이런 서사가 성립되기 쉽지 않다. ‘인터스텔라’의 히어로인 쿠퍼가 자식들을 버리고 우주로 떠날 때의 드라마에 관객들이 쉽게 감정을 이입하지 못하고 억지스럽다고 느꼈던 까닭은, 인생은 게이미피케이션으로 서사화하기엔 훨씬 더 복잡하고 아이러니하기 때문이다. 평범한 인간은 단순하고 평면적인 인간이 아니라 이 세계의 본래적 복잡성을 온몸으로 살아내는 존재다. 정해진 동선과 움직임밖에 수행할 수 없는 게임 캐릭터는 인간을 닮은 척하지만, 그들이 가장 복잡하게 행동할 때조차 인간처럼 느껴지기엔 너무 단순하다. 그런데 문제는 현실이 게임을 닮고, 현실의 인간이 게임화된 세계에 적응해야 되는 사회적 조건이다.

의식주에서 TV 오디션 프로그램, 진학, 취업에 이르기까지 서바이벌 게임을 끝없이 반복하는 사회가 우리가 사는 현실 세계다. 게임화된 스테이지를 지나 또 다른 스테이지로 옮겨 가는 일의 쳇바퀴를 벗어날 수가 없다. 그러니 게임중독증에 대한 논란은 문제의 핵심은 외면하고 엉뚱한 방향으로 시선을 돌리게 만드는 기만적인 소실점이다. 사회 전반의 게임화가 신자유주의의 지구적 확장과 궤를 같이하고 있음을 직시해야 한다. 플레이스테이션이나 X박스를 구입해서 하루에 몇 시간이고 게임에 빠져 살지 않더라도 우리는 늘 게임 플레이어의 삶을 살 수밖에 없는 형편이다.

게임중독자가 일종의 정신질환을 앓고 있어서 삶을 게임에 탕진한다고 진단하는 것은 문제의 본질을 단순화하는 것과 같다. 게임중독자는 게임 밖의 게임을 포기하는 사람들이다. 현실 세계에서 겹겹으로 수행해야 하는 게임의 룰(노동자 되기, 국민 되기, 납세자 되기 등) 중에서 오직 하나에만 집중하기 때문에, 이들은 게임 세계의 룰을 한층 더 강박적으로 따르게 된다. 이 세계의 규칙조차 능숙해지지 못하면 게임 세계에서조차 낙오된다. 모든 책임은 게임 바깥의 세계에서와 마찬가지로 자기 자신에게 쏠린다. 이들의 진짜 문제점은 뇌에 이상이 생겼다거나 생활 습관이 나쁜 것이 아니라, 게임의 룰을 비판적으로 상대화할 능력을 상실했다는 데 있다. 자기 계발 이데올로기를 숭앙하는 체제 순응자와 게임중독자는 쌍생아처럼 닮아 있다.

아이템 판매, 확률형 아이템, 시간제 이용료, 트라이 기회, 서브콘텐츠 등을 통한 부분 결제 시스템이 게임 문화 전반에 확산되고 있다. 게임은 파친코로 변화가고 있다. 사진은 ‘마구마구’의 지난해 크리스마스 이벤트 화면이다. ⓒ넷마블
아이템 판매, 확률형 아이템, 시간제 이용료, 트라이 기회, 서브콘텐츠 등을 통한 부분 결제 시스템이 게임 문화 전반에 확산되고 있다. 게임은 파친코로 변화가고 있다. 사진은 ‘마구마구’의 지난해 크리스마스 이벤트 화면이다. ⓒ넷마블

과정은 사라지고 결과만 남은 게임

게이미피케이션 사회는 게임 문화도 망치고 있다. 오늘날 게임계에서 벌어지고 있는 게이미피케이션 현상은 ‘결제의 놀이화’로 대표된다. 게임을 잘 하고 못하고를 나누는 숙련도는 플레이 경쟁이 아니라 결제 경쟁 속에서 결정된다. 게임에서 승리에 이르는 길이 결제를 통해 단순해지면서 놀이에서 배우는 경쟁의 본래적 의미는 퇴색했다.

지난 4일부터 매주 수요일 6주에 걸쳐 진행되는 게임사회학 콜로키움 ‘이것은 게임이 아니다’(인문학협동조합, 서울과학기술대 IT정책전문대학원 디지털문화정책 전공 공동주최)에서 게임비평가 이경혁은 현금 아이템 거래, 부주/대리게임, 캐시템, 확률형 아이템, 레벨업 부스터 등으로 대표되는 부분 유료결제 시스템의 문제점을 다음과 같이 비판했다.

“확률형 아이템 때문에 현대 게임은 퇴보하고 있다. 과정의 서사를 확률로 압축하고 결과만을 제공한다. 경쟁의 과정이 주는 재미는 사라지고, 남보다 높은 레벨에 올라서는 권력 구조의 쾌감만 남았다. 속도의 경제, 결과 중심의 세계관이 게임을 파친코로 만들어버렸다.”

파친코가 되어버린 게임은 플레이의 목적과 배경, 게임 속 시공간의 의미를 생각할 필요가 없다. 플레이어와 게임이 목표 달성을 위해 벌이는 상호 작용도 필요 없다. 과정에 충실함으로써 느낄 수 있는 실패, 승리, 좌절의 의미는 사라지고 말초적인 흥분만 강화되는 추세다.

‘이것은 게임이 아니다’의 또 다른 발표자인 미디어 연구자 신현우는 우리 시대의 게임 문화를 훨씬 더 비관적으로 진단했다. 신현우는 현대의 비디오 게임은 역사적인 연원에서부터 전쟁, 자본의 기술 코드를 내재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따라서 신자유주의 사회의 무한 경쟁을 내면화하는 훈육 장치로 비디오 게임이 동원되고 있는 것도 새삼스러울 게 없는 현상이다. 그는 그 흐름을 ‘게임이 된 전쟁, 전쟁이 된 노동, 노동이 된 게임’이라는 악순환의 구조로 정리했다. 현대전의 시각 체계는 갈수록 비디오 게임의 인지 환경을 닮아가고 있는데, 그 변화는 전장을 넘어 일상 전체에 확장돼 있다. 노동 환경 역시 전쟁화, 게임화 되어 있다. 그리고 게임플레이는 언제라도 전쟁과 자본에 동원할 수 있는 자원으로 인간 삶을 포획하는 병참 전략이 되었다.

기업 경영에도 도입된 게임

기업 경영의 최신 트랜드도 게이미피케이션을 좇고 있다. 예를 들어, 미국의 증권 거래사 아메리 트레이드(Ameri Trade)는 고객들에게 ‘다윈 : 적자생존’ (Darwin: Survival of the Fittest)이라는 게임을 무료로 배포하고 있다. 고객들의 온라인 주식 거래를 활성화하기 위해 개발된 게임이다. 세계에서 가장 큰 화장품 회사인 로레알 그룹(L'Oreal Group)도 온라인 게임을 회사 경영에 적극 활용하고 있는 곳으로 유명한데, 연구 개발과 마케팅 비용 산출, 생산 비용 절감 방법에 이르는 경영 전반의 과제를 비디오 게임을 활용한 시뮬레이션 실험으로 모색한다. 캐논(Cannon)은 애프터서비스 직원들을 수리 게임을 통해 훈련하고, 시스코(CISCO)는 모래 폭풍이 몰아치는 화성에서 네트워크 전산망을 정비하는 게임으로 직원들을 교육하고 있다. 고객과 노동자 모두 이런 게임을 꽤 즐거워한다고 한다. 하지만 그 즐거움의 정체를 묻는 일이 노동 소외의 현실을 각성하는 문제와 다르지 않다는 걸 자각한 이들은 많지 않아 보인다.

신현우는 게이미피케이션 사회에 대응할 방법으로 “게임 기술에 대한 항구적인 재발명을 통해 자본화된 지각-인지-육체의 변화”가 이뤄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게임이라는 기계에 내재한 전쟁, 자본의 기술 코드를 재설계해서 게이미피케이션 사회를 재발명하자는 비전이다.

미약하나마 변화의 씨앗은 게임에서 찾을 수 있다. 2010년대에 접어들면서 게임계는 형편없이 타락하고 있지만, 또 한편으론 놀라운 미학적 갱신을 거듭하고 있다. 문학계가 수 세기에 거쳐 서서히 이뤄온 성취를 무서운 속도로 추격하고 있다. 조지 오웰의 디스토피아를 퍼즐 게임의 문법을 빌려 재창조한 ‘페이퍼 플리즈’(Papers, Please), 음악과 그래픽, 스토리 모두 총체예술의 경지에 도달한 ‘저니’(Journey), 에셔의 패러독스를 게임화한 ‘모뉴먼트 밸리’(Monument Valley), 카프카가 게임 제작자가 되었다면 만들었을 법한 ‘더 스탠리 패러블(The Stanley Parable)은 어느 분야의 평론가든 관심을 갖고 음미할 이 시대의 걸작이다. 빼어난 작품성과 오락성을 두루 갖춘 다양한 게임이 일일이 다 열거할 수 없을 만큼 꾸준히 발표되고 있다. 이 중 ‘더 스탠리 패러블’은 게임이 진중한 독서나 사색에 버금가는 가치 있는 습관이 될 수 있음을 필자에게 절절히 깨닫게 해준 작품이다.

‘더 스탠리 패러블’은 ‘게임이란 무엇인가’를 근본적으로 묻는 2010년대 게임계의 질문이라는 점에서 주목을 요한다. 게이미피케이션 사회에선 누구라도 이 질문을 진중히 마주해야 한다. ‘더 스탠리 패러블’은 여느 게임과 달리 주어진 미션을 완벽히 수행하는 것만으론 결말에 도달할 수 없다. 게이머는 게임이 진행되는 내내 내레이터의 일방적인 사설을 들어야 한다. 그는 목소리로만 등장한다. 그의 장광설은 셰익스피어나 조이스 혹은 카프카의 문장을 변주한 것처럼 들리는데, 핵심 메시지는 간단하다. ‘게임을 스스로 중단할 수 있는 능력이 있는가?’ 이것은 이 게임의 결말에 닿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기도 하다.

게이미피케이션 사회는 신자유주의 사회의 최종 진화형이다. 신자유주의에 최적화된 게임형 인간의 탄생은 이미 도래한 현실이다. 게임중독자를 손가락질하기 전에 우리가 놓인 삶의 비참함에 눈떠야 한다. 더 나쁜 게임을 그만두는 실천이 절실히 필요한 시대다.

임태훈 인문학협동조합 미디어기획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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