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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의 분쟁지역] 라카인족 “로힝야족이 성폭행” 혐오 확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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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의 분쟁지역] 라카인족 “로힝야족이 성폭행” 혐오 확산

입력
2017.11.03 19:00
2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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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얀마ㆍ방글라 거주 불교계 종족

소수민족 일괄휴전 서명하고도

꾸준히 폭력사태 개입 의혹

로힝야족 난민들이 1일 국경을 넘어 방글라데시로 가고 있다. AP 연합뉴스
로힝야족 난민들이 1일 국경을 넘어 방글라데시로 가고 있다. AP 연합뉴스

지난달 26일 방글라데시 대테러 특수부대인 ‘신속행동부대’는 다카 공항에서 미얀마로 출국하려던 우 칫 마웅(67)을 긴급 체포했다. 현재 테러리즘 혐의로 구금 중인 칫 마웅은 ‘라카인 개발재단’이라는 자선단체를 운영해 온 방글라데시 태생 라카인족이다. 라카인족은 로힝야 인종학살이 발생한 미얀마 북서부 라카인주(또는 아라칸주)의 주류 종족으로, 방글라데시 치타공 일대에도 20여만명이 살고 있다. 이들 라카인 대부분은 불교 신자들이다.

방글라데시 당국에 따르면, 칫 마웅과 그의 아내 소우 므라 라자 린(58)은 정보를 수집해 미얀마 당국에 제공해 왔다. 미얀마 라카인족 출신인 므라 라자는 라카인족 반군무장단체인 ‘아라칸 해방당(ALP)’의 간부다. 방글라데시 당국은 칫 마웅의 노트북에서 므라 라자가 총을 들고 있는 모습의 사진이 발견됐고, 남편의 자선단체(라카인 개발재단)가 아내의 무장단체(ALP)를 지원한 혐의를 포착했다고 밝혔다.

므라 라자는 억울함을 호소했다. 현재 미얀마에 체류 중인 그는 기자와의 통화에서 “총을 든 그 사진은 30년 전에 찍은 것이다. 나는 지금 ALP에서 오로지 평화협상을 담당하면서 라카인 여성단체 일에만 매진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남편은 무장단체와 아무런 관계가 없고, 인종이나 종교에 대한 차별 없이 자선활동을 해 왔다는 것이다.

이 같은 항변에 설득력이 있는지 판단하려면 우선 그가 소속된 ALP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ALP는 2012년 4월 라카인 주정부와 휴전협정을 맺었다. 2015년 10월에는 미얀마 중앙정부가 20개 이상의 소수민족 무장단체들과 일괄휴전을 목표로 추진 중인 ‘전국 휴전’(NCA)에도 서명했다. 그러나 ALP는 2012년 6월 발생한 폭력사태를 비롯, 그 이후에도 로힝야족을 겨냥한 폭력 사태에 계속해서 개입한다는 의혹을 꾸준히 받아 왔다. 현지 주민들의 주장뿐만 아니라, 이를 뒷받침하는 정황들은 꽤 구체적이다.

ALP 조직원들은 ‘로힝야족 혐오’를 거침없이 표현해 왔다. 예컨대 므라 라자 본인도 2007년 4월 4일 BBC 버마어 서비스와의 인터뷰에서 “벵갈리(로힝야족을 방글라데시계 불법 이민자로 낮춰 부르는 말)들이 아라칸주로 (불법)이주해 수많은 라카인 여성들을 성폭행하고 있다”고 말했다. 바로 이 ‘성폭행 레토릭’은 구체적 사례 없이도 반복 재생산되면서 ‘로힝야 혐오 스피치’의 중심 콘텐츠가 됐다. 므라 라자는 그러나 이 인터뷰를 기억하지 못했다. 인종학살 과정에서 벌어진 라카인족의 로힝야 가옥 방화에 대해서도 그는 “불가능하다”고 강하게 부인했다. 하지만 최근까지도 계속된 로힝야 가옥 방화, 살상 위협 현장에 라카인족들이 ‘가해자’로 등장하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지난해 12월 초에는 동부 카렌주에서 ALP 대원 3명이 서북부 라카인주로 AK-47 소총 19정과 탄약, 현금 6백만 쨧(한화 약 490만원)을 소지하고 이동하다 검문에 걸린 적이 있었다. 당시 ALP 협동사무처장인 카잉 아웅 소 탄은 미얀마 언론 ‘이라와디’와의 인터뷰에서 “칼라(‘검둥이’에 해당하는 인종주의적 표현으로, 로힝야족을 가리키는 말) 쪽에는 무기가 많다. 그래서 우리도 (로힝야족 주거주지인) 마웅도ㆍ부띠동 지역 ALP 진영에 무기를 공급할 계획이었다”고 했다. 그는 “정부의 우려를 이해하지만, 우리의 최대 현안은 (로힝야족) 무슬림”이라고도 덧붙였다.

로힝야족에 대한 ALP 간부들의 적대감은 2013년 북부 카친주 반군 영토에서 만난 당시 사무총장 까잉 투 까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벵갈리들이 지하드를 치르겠다고 라카인주로 계속 이주하고 있다”면서 경계심과 혐오감을 표출했다. 그러면서 그 무렵 94세 무슬림 여성이 라카인족 불교도에 의해 피살된 사건은 완강히 부인했다. 그 이후 까잉 뚜 까는 다른 라카인족 무장단체인 ‘아라칸 군(AA)’ 대변인으로 자리를 옮겼다. 두 조직은 지난 8월 인도-미얀마 국경 근처에서 충돌하긴 했으나, 이런 경쟁관계가 로힝야 문제로까지 이어지진 않는다. 로힝야 혐오가 보편화한 라카인족 사회에서 가장 인기가 높은 AA의 최고 사령관인 트완 므랏 나잉 소장은 이러한 현상에 대해 기자에게 다음과 같이 설명한 바 있다.

“벵갈리(로힝야족) 인구가 고작 5% 안팎이라고들 하지만, 5%든 1%든 자그마한 암덩어리를 그냥 내버려두면 치명적인 것과 같은 논리다.”

이유경 국제분쟁전문 저널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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