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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엔 정말 앉을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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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엔 정말 앉을 수 있을까요

입력
2018.06.04 18:00
1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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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용부 판매직 건강보호 대책

의자 비치ㆍ가이드라인 배포 등

10년 전 캠페인 때와 판박이

4일 낮 12시쯤 서울의 한 백화점 매장에서 판매사원들이 선 채로 근무하고 있다. 정혜지 인턴기자.
4일 낮 12시쯤 서울의 한 백화점 매장에서 판매사원들이 선 채로 근무하고 있다. 정혜지 인턴기자.

4일 낮 12시쯤 서울 중구의 한 백화점 4층. 점심시간이 한창이라 비교적 한가한 시간이지만 이곳에 있는 30여개 매장의 판매사원들은 모두 선 채로 손님을 기다리고 있었다. 방문객이 없는 매장의 직원들도 계산대나 벽에 기대 잠시 쉬는 것이 전부. 의자에 앉아서 업무를 보거나 잠시 휴식을 취하는 모습은 전혀 찾을 수 없었다. 이곳 스포츠용품 매장에서 일하는 주모(34)씨는 “하루 9시간 근무 중 식사시간 등을 빼고 거의 7시간은 서 있는다”며 “매장에 의자도 없고, 있더라도 고객을 응대할 때 눈치가 보여서 앉기는 어려운 분위기”라고 설명했다.

2008년 노동계와 시민사회단체는 판매직 노동자들의 휴식권을 보장하기 위해 ‘서서 일하는 서비스노동자들에게 의자를’이라는 캠페인을 벌였다. 캠페인 시작 4개월 만에 신세계ㆍ현대백화점 등 대형 유통업체들이 매장에 의자를 비치하겠다고 선언했고 이들의 ‘앉을 권리’는 보장되는 듯했다. 하지만 10년이 지난 지금, 몇몇 매장에 의자가 생기긴 했지만 판매직 노동자들에게는 그저 ‘그림의 떡’이다. 지난해 말 한국노동사회연구소가 대형마트ㆍ백화점 등 유통업체의 판매사원 2,204명을 대상으로 한 실태조사 결과 하루 이들은 평균 8.7시간 근무 중 약 7시간을 서서 일했다. 이로 인해 족저근막염(22.2%)과 하지정맥류(17.2%), 디스크(24.1%) 등을 앓는 경우가 상당수였다.

이처럼 각종 질병으로 고통받는 노동자들의 건강을 보호하기 위해 고용노동부는 4일 ‘판매직 노동자 건강보호 대책’을 수립하고 시행하겠다고 밝혔다. ‘판매 사원은 서서 손님을 맞아야 한다’는 고정관념을 바꾸기 위해 사업주와 고객을 대상으로 홍보하고, 사업장에서 실질적인 건강 보호 조치가 이뤄질 수 있도록 ‘서서 일하는 노동자 건강가이드’를 보급한다는 것이 주요 내용이다. 고용부는 당장 이번 달부터 47개 지방관서 주관으로 ‘의자 비치ㆍ앉을 권리 찾기ㆍ휴게시설 설치’ 캠페인에 돌입하고 8월 중에 가이드라인을 마련해 배포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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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제성 없어 반짝 이벤트 우려

눈치 보지 않는 환경 마련해야”

[저작권 한국일보]유통매장 판매직 노동자. 박구원기자
[저작권 한국일보]유통매장 판매직 노동자. 박구원기자

하지만 고용부의 이번 대책은 10년 전 캠페인 당시 발표한 내용과 별반 다르지 않다. 2008년 8월 고용부가 발표한 ‘서서 일하는 근로자 건강보호 대책’ 의 주요 골자 역시 사업장 의자 비치 계도, 고객 인식 개선을 위한 홍보 강화, 근로자 건강가이드 사업장 배포 등이었다. 고용부 산업보건과 관계자는 “2008년에도 건강 가이드가 각 사업장에 배포됐지만 의자를 비치한 사업장이 늘어나는 등 상황이 많이 바뀌었다”며 “휴게공간 설치에 관한 내용을 각 매장에 권고하는데 중점을 둘 것”이라고 설명했다.

노동계는 그러나 정부의 실질적 감독이 없이 지침만 늘어날 경우 이번 대책도 반짝 이벤트에 지날 수 있다고 우려한다. 이성종 민주노총 서비스연맹 정책실장은. “산업안전보건기준에 관한 규칙에 의자를 비치하라는 규정(제80조)이 마련됐지만 강제성이 없는 데다 사용 여부에 대한 내용은 없어 실효성은 거의 없다”며 “지침을 추가하기보다는 노동자가 휴식을 취하며 눈치를 보지 않을 수 있는 환경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종진 한국노동사회연구소 연구위원은 “독일 등 해외 선진국의 경우 의자를 비치하는 것은 물론 그 높이를 계산대에 맞추도록 권장해 노동자가 앉아서 근로하는 것도 가능하다”며 “노동자 입장에서 휴식과 건강을 위해 꼭 필요한 조건이 무엇인지 실태조사부터 한 뒤 실효성 있는 규제를 마련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신혜정 기자 arete@hankookilbo.com

정혜지 인턴기자(고려대 정치외교학과 졸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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