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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5도] “유아인을 국회로!”

입력
2015.11.23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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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삼 전 대통령의 빈소를 찾은 ‘YS키즈’들의 면면을 살펴보다 문득 궁금해졌다. 오늘날 한국 정치를 쥐락펴락하는 거물급 정치인들을 대거 발탁한 ‘정치 9단’의 용인술은 공에 속하는 걸까, 과에 속하는 걸까. 정치적 상주(喪主)를 자처하며 온종일 빈소를 지켰다는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를 비롯해 서청원 최고위원, 홍준표 경남지사, 김문수 전 경기지사의 기사를 유심히 찾아 읽었다. 모두 슬픔이 클 것이다. 그 슬픔의 진의에 누구도 의혹을 제기할 수 없다.

하지만 아이러니한 것은 어쩔 도리가 없다. 민주화의 상징이 서거한 자리에 권위주의체제로의 퇴행을 상징하는 인물들이 모여 ‘민주화 운동의 추억’을 회고한다. 언론 통화에서 “같이 모시고 민주화 투쟁 하던 시절이 생생한데…”라며 울먹였다는 김무성 대표는 불과 며칠 전 ‘못 살겠다’ 외치며 거리로 나선 ‘시위대=국민’들을 향해 “전 세계가 IS 척결에 나선 것처럼 불법시위를 척결해야 한다”고 말한 바 있다. 귀환한 과거가 오래된 미래를 추모하는 초현실주의적 광경. 시대에도, 개인에게도, 시간은 결코 선조적으로 흐르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주는, 가히 문학적인 한 장면이다.

마지막으로 스타 정치인을 가져본 게 언제였던가. 연애는 하고 싶은데 만나는 상대마다 불쾌하기 그지없는 청춘들처럼, 우리는 너무 오래 고독한 유권자였다. 사랑할 준비가 되어있는데, 사랑할 사람이 없는 비애. 온건하게 말하면 외면 받고, 과격하게 말하면 진압되는 슬픔. 시위 중 경찰의 물대포에 맞아 중태에 빠진 국민이 사과 한 마디 못 받고 사경을 헤매고 있는데, 국회의원이라는 이가 “미국은 경찰이 총을 쏴 시민을 죽여도 10건 중 8, 9건은 정당한 것으로 나온다”고 막말을 한다. 제때 규탄되지 못한 패륜적 언사는 바이러스처럼 창궐하고, 정치혐오는 더욱 만연한다. 직업으로서의 정치는 조금도 매력적이지 않으며, 젊고 유능한 인재는 당연히 유입되지 않는다. 정치가 그저 탁한 영혼들의 전유물로 여겨지는 구조 속에서, 캐나다의 트뤼도 총리 같은 정치인을 욕망하는 건 사치다.

김영삼 전 대통령은 최연소(26세) 국회의원 기록을 갖고 있는 스타 정치인이었다. 스타가 없어 악역이 주목 받는 지금의 정치 지형에서 돌이켜 보면, 고 김대중 대통령과 더불어 두고두고 그리울 정치인이다. 시대의 열망을 그대로 체화한, 내가 원하는 것이 고스란히 국민이 원하는 것인 그런 정치인을 우리는 언제까지 기다려야 할까? 시대와 뜨겁게 호흡했던, 젊었던 두 전직 대통령의 사진을 들여다 보며 공연히 울컥하는 이유다.

올해 29세인 배우 유아인씨가 2년 전 보육시설 아동 급식비 지원을 위해 7,700만원을 기부하며 쓴 편지가 최근 화제가 됐다. 이제 어떤 문장도 내 무딘 관성의 각질을 뚫지 못하리라 비관해온 나는 감동했고, 치유 받았다. “이웃 아이들을 돕고도 나는 기름진 삼겹살로 외식할 수 있을 만큼의 충분한 행운아입니다. 그런 나의 행운이 소외 받는 아이들의 의도치 않은 불행에 나누어져 조금이라도 가치 있게 쓰이기를 바랍니다. 나는 부자이길 원하고, 성공하길 원하고, 사랑 받기를 원하는 그런 평범한 사람 중 하나입니다.” 나는 자신의 성공을 행운으로, 아이들의 곤궁을 의도치 않은 불행으로 보는 그의 사고 구조에 반해버렸다.

엉뚱하게 들리겠지만, 유아인씨가 정치에 입문했으면 좋겠다. 정치가 매력적인 직업이라는 것을 입증해 선량하고 건강한 인재들이 정치인을 꿈꾸게 만들었으면 좋겠다. YS처럼 저돌적으로 시대의 열망을 체현해낼 에너지가 그에게는 있을 것 같고, 그 자신 “정치와 삶의 관계를 치열하게 고민하는 젊음이고 싶다”고 말한 바도 있다. 대선 직후 “생계의 저변에 정치가 완벽하게 침투해 있다는 사실을 잊지 않으며 내 일에 집중하겠다고”한 마음을 이제는 바꿔주면 안 될까? 정치는 젊은이들이 이렇게 내버려둬도 좋을 직역이 결코 아니며, 정치에야말로 스타가 필요하다. 총선까지 얼마 남지 않았다. 유아인씨를 만나 설득하는 일은 시켜만 주면 내가 해볼 의향이 있다. 사심은 결코 아니다.

박선영 문화부 기자 aurevoir@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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