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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흥수 기자

등록 : 2017.11.21 17:50
수정 : 2017.11.21 19:32

드넓은 악양 들…만석꾼 최참판이 실제 살았던 듯

하동 평사리 최영욱 시인이 들려주는 '토지 알쓸신잡'

등록 : 2017.11.21 17:50
수정 : 2017.11.21 19:32

하동 악양면 평사리 ‘최참판댁’ 앞 마당에서 보는 풍경. ‘토지’의 주인공 서희와 길상의 사진 틀 뒤로 드넓은 들판과 섬진강이 한눈에 내려다보인다. 하동=최흥수기자

“최참판댁은 어디 최씨냐? 이 집에 지금도 후손들이 살고 있느냐?” 하동 악양면 평사리문학관 관장인 최영욱 시인이 방문객들로부터 자주 받는 질문이다.

박경리 소설 ‘토지’의 최참판댁을 재현한 공간을 현실로 오해하는 관람객이 그만큼 많다는 뜻이다. 역사를 고증하듯 소설 속 묘사를 충실하게 담아낸 ‘참판댁’에 17년 세월의 더께가 쌓여 사실감을 더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박경리와 모자(母子)처럼 지내 온 최영욱 시인의 안내로 최참판댁을 돌아보았다. 소설도 집도 달리 보인다.

최참판댁이 악양에 들어선 이유는

솟을대문 좌우로 행랑채가 담장처럼 둘러진 최참판댁 앞마당은 악양 들판을 한눈에 내려다 보는 전망대다. 바둑판처럼 정리된 들판 가운데 부부송(夫婦松)이 분재처럼 서 있고, 그 오른편으로 섬진강이 하얀 모래톱 사이에 파란 곡선을 그리며 반짝인다.

“박경리 선생이 ‘토지’의 주무대로 이곳을 택한 건 3가지 조건이 맞아 떨어졌기 때문입니다. 우선 만석지기에 어울리는 너른 땅이 있죠. 83만평(약 274만㎡, 서울 여의도보다 조금 작다) 평야는 경상도에 흔하지 않아요. 두 번째는 이야깃거리 풍성한 섬진강과 지리산을 끼고 있다는 겁니다. 마지막으로 진주 출신인 할마씨(시인은 박경리를 그렇게 불렀다. 연로한 어머니를 친근하게 칭하는 표현이다)가 경상도 사투리를 제대로 활용할 수 있는 공간이라는 점이죠.”

최영욱 시인이 ‘토지’와 ‘최참판댁’ 이야기를 풀어나가고 있다. 최근 세 번째 시집 ‘다시, 평사리’를 펴냈다.

주차장에서 ‘최참판댁’에 오르는 골목엔 자연스럽게 상가가 형성돼 소설을 더욱 실재처럼 느끼게 된다. 건너편 산은 구재봉.

갖가지 곡물과 나물을 파는 어머니 가게도 정겹다.

악양은 추수 끝나고 개치나루로 들어온 거지가 봄에는 살이 쪄서 떠난다는 인심 좋은 동네인데, 소설에는 자식 일곱을 거느린 과부가 최씨네 문전에서 구걸하다가, “최가놈 집구석에 재물이 쌯이고 쌯이도 묵어줄 사램이 없을긴께”라고 저주를 퍼부으며 굶어 죽었다는 대목이 나온다. 최씨 집안이 재물을 쌓은 이면에 죄악이 있었음을 의미하는 동시에 후손이 귀하게 될 거라는 암시다.

그렇게 서두를 풀고 나서 솟을대문을 통과해 안채로 들어선다. 하동이 본관인 조선시대 문인 정여창(1450~1504)의 고택을 본떠 지었다는 얘기며, 마을사람 대부분이 이 집의 소작이었으니 행랑채는 외부의 소식을 물어 나르는 공간이었다는 설명도 덧붙여진다. 판서댁도 대감댁도 아니고 왜 하필 참판댁인지도 궁금해진다. 박경리가 가장 존경하는 위인이 이순신이었는데, 그의 최종 관직인 삼도수군통제사가 종이품 벼슬이었다는 점이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추론한다. 참판 또한 종이품이다.

최참판댁은 안채를 중심으로 동편에 사랑채, 서편에 별당을 배치했다. 귀중한 것을 동쪽에 둔 이치에 따른 것이다. 사랑채는 윤씨부인의 아들 최치수가 기거하는 공간이다. 너른 들과 건너편 구재봉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흐뭇할 텐데, 만석꾼 치수의 호는 ‘애처로운 구름’, 석운(惜雲)이다. 어미의 부정을 어렴풋이나마 짐작한 명민한 아이였던 그는 결국 이복동생에게 아내마저 빼앗기고 성불구자가 되는 불운의 인물로 그려진다.

‘최참판댁’ 안채 외벽에 걸린 곡식과 농기구

별채 담장 아래는 해당화가 심겨져 있다.

시인이 공을 들여 설명하는 공간은 안채도 사랑채도 아닌 별당이다. 별당은 일반적으로 양반집 규수가 신부수업을 받는 곳으로, 혹은 첩을 들이는 공간으로 활용된다. 그런데 ‘토지’에서는 치수의 아내가 ‘별당아씨’로 등장한다. 치수의 첫째 부인이 죽고 재혼한 처이기 때문이다. 원래는 안채에서 윤씨부인이 기거하는 안방과 마루 하나를 사이에 둔 건넌방에서 생활하는 게 옳은 설정이다. ‘토지’를 여러 번 읽은 사람도 눈치채기 힘든 대목이다.

별당이 특별한 이유는 소설이 시작되고 끝나는 무대이기 때문이다. 소설의 도입부에서는 최참판댁 머슴으로 들어온 치수의 이복동생 구천이 별당아씨와 눈이 맞아 도망한 곳이고, 끝 부분에서는 서희가 해방 소식을 듣고 스러진 곳이다. 일본 천황이 방송으로 항복했다는 소식을 수양딸 양현에게 전해 듣고, “서희는 해당화 가지를 휘어잡았다. 그리고 땅바닥에 주저앉았다. 그 순간 서희는 자신을 휘감은 쇠사슬이 요란한 소리를 내며 땅에 떨어지는 것을 느낀다.” 1969년부터 25년간 이어 온 ‘토지’의 집필도 이로써 긴 여정을 마감한다.

안채와 구분하는 담장 아래에 해당화를 심어 놓은 모습이 그제야 눈에 들어온다. 붉은 꽃잎은 모두 떨어지고, 잎도 노랗게 물들어가는 터라 더더욱 알아채기 어렵다. 왜 하필 가시가 촘촘히 박힌 해당화 가지를 휘어잡았는지는 여전히 모르겠다. 별당 뒤편에는 대나무 숲이 우거지고, 앞마당에는 작은 연못이 자리 잡고 있다. 일반적으로 마당에 정원을 꾸미는 것은 일본식으로 알고 있지만, 조선의 전통 건축에도 정방형 연못이 있었다고 시인은 덧붙인다. 사각형은 땅을 의미하고 가운데 나무를 심은 동그란 동산은 우주를 의미하니 땅과 하늘, 즉 자연을 집안으로 끌어들이는 방식이다.

이렇게 세세한 설명을 곁들이며 참판댁을 둘러보고 나면 소설과 현실이 뚜렷이 구분돼야 할 텐데, 도리어 평사리와 악양들, 섬진강과 지리산 등 소설의 무대가 더욱 사실적으로 보인다. 대하소설이 대개 그렇듯 동학이 일어난 1894년부터 해방에 이르기까지 과정을 그린 ‘토지’에도 절반은 역사적 사실이 녹아 있기 때문이다.

평사리 시인에게 듣는 ‘토지 알.쓸.신.잡’

평사리에는 최참판댁을 중심으로 소설 속 민초들의 초가가 꾸며져 있고, 가장 꼭대기에는 지난해 문을 연 ‘평사리문학관’이 자리 잡고 있다. 전시관에선 박경리의 친필 원고를 비롯한 유물과 각 출판사가 발행한 ‘토지’ 등을 볼 수 있다. 관련 사진과 영상물도 상영한다.

최참판댁 주변에는 소설 속 민초들의 생활공간도 재현해 놓았다.

한 주민이 경운기를 몰고 평사리 마을을 지나고 있다.

박경리는 생전에 소설을 이용해 아무것도 하지 말라고 했단다. 그래서 최참판댁을 짓고 ‘토지문학제’를 허락 받기 위해 최영욱 시인은 2000년 말부터 이듬해 5월까지 하동에서 박경리가 살고 있는 원주까지 7회나 방문했다. 무려 ‘칠고초려(三顧草廬)’ 끝에 그 해 11월(현재는 10월 두째 주) 주인공을 모시고 처음으로 문학제를 열 수 있었다.

평사리문학관이 진행하는 ‘지역명사 문화 기행’에 참여하면 ‘토지’와 박경리에 관해 알아 두면 쓸모 많은 깨알 지식을 얻을 수 있다. 예를 들면 ‘소설 속 두 주인공 서희와 길상은 무얼 먹고 역병 속에서 살아남을 수 있었을까?’ ‘박경리는 악인 2명을 왜 끝까지 살려 두었을까?’ 등을 수수께끼 문답풀이로 들려준다. 박경리가 소설가로 등단하게 된 내력과 사위 김지하와의 관계, 교류했던 문인들이나 출판과 관련한 비화도 들을 수 있다.

“(전략) 내 언젠가는 최참판댁 솟을대문을 등 뒤로 두고/ 개치나루쯤에서 나룻배 하나 얻어 타고/ 흐르듯 떠나가겠지/ 나는 늘 평사리에서 누군가를 기다렸지만/ 이제 평사리가 나를 기다려도 좋지 않을까/ 싶은 것이다”(최영욱 ‘다시, 평사리’ 中). 평사리에서 시인은 여전히 ‘토지’를 들어줄 사람들을 기다리고 있다. 평사리문학관(055-882-2675)으로 문의하면 된다. 참고로 소설 속 최참판댁은 영천 최씨고, 시인은 전주가 본이다.

하동=최흥수기자 choissoo@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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