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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계성 칼럼] 박근혜 김정은 러시아서 만나려면

입력
2015.02.23 18: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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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생 위해 손잡을 기회 놓친 남북

北 핵동결 선제조치는 신의 한 수

러 전승절 남북 공동참석 길 열려

박근혜 대통령이 집권 3년 차 국정운영 최우선 순위로 경제활성화를 꼽았다. 23일 청와대 수석비서관회의를 주재하는 자리에서 향후 30년 성장의 도약 발판을 만들겠다며 내건 화두다. 박 대통령의 경제활성화 강조는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지만 올 들어 한층 유난하다. 지난 달 신년기자회견서는 모두발언 25분 가운데 18분을 경제에 할애했고, 언급한 경제관련 단어와 용어만도 42개나 됐다. 국민의 먹고 사는 문제를 그 만큼 절실하게 여긴다는 뜻일 것이다.

북한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의 올해 화두도 경제다. 그는 신년사에서 인민생활 향상을 5번이나 강조했다. 1월28일 ‘축산업 발전에 새로운 전환을 일으키자’라는 논문을 발표하면서는 “잠이 오지 않는다. (인민들이) 언제 한번 풍족한 생활을 맘껏 누려보지 못했다”고 토로했다고 한다. 광복과 노동당창당 70주년 구호로는“뼈를 깎아서라도 인민생활 문제를 풀겠다는 비상한 각오를 가지고 발이 닳도록 뛰고 뛰라”를 내걸었다.

새해 들어 남북 집권자들이 역점을 두고 있는 포인트가 일치한다. 물론 남북이 처한 경제상황이 너무 달라서 최고지도자들의 경제 관련 언급을 같은 선상에 놓고 비교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을지 모른다. 하지만 남북이 손을 맞잡으면 남측의 경제활성화, 북측의 인민생활 문제를 풀어가는 데 크게 도움이 된다는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경제만이 아니라 소용돌이치고 있는 동북아 정세에서 활로를 찾기 위해서도 남북 협력이 절실하다.

하지만 현실은 남북이 쉽게 손을 잡을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 지난해 하반기부터 올 연초까지 조성됐던 몇 번의 기회를 그냥 흘려 보냈다. 내달 초부터 4월에 걸쳐 실시되는 키 리졸브 및 독수리 한미합동군사훈련 기간은 남북관계가 얼어붙는 엄동설한의 시기다. 이 기간 조성된 긴장의 강도와 내용에 따라서는 그 이후의 해빙도 장담하기 어렵다.

그러나 국면 전환의 기대를 걸어볼 만한 계기가 없지는 않다. 5월9일 모스크바에 열리는 러시아의 제2차 세계대전 승전 70주년 행사가 바로 그것이다. 러시아는 이 행사에 남북을 포함해 세계 주요국 정상들을 초청해 놓고 있다. 우크라이나 사태와 관련한 서방세계의 대 러시아 제재로 얼마나 많은 나라의 정상들이 참석할지는 불투명하지만 북한 김정은은 참석 의사를 굳힌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김정은이 실제로 이 행사에 참석하면 그로서는 국제외교무대에 정식으로 데뷔하는 셈이다. 당연히 지구촌의 주목을 받게 될 것이다. 하지만 리스크도 무시할 수 없다. 막무가내 식 핵개발, 최악의 인권상황 등 국제사회가 용납하기 어려운 김정은 체제의 온갖 부정적 측면도 함께 조명을 받을 것이고, 그로 인해 이미지 실추라는 막대한 대가를 치를 수도 있다.

김정은이 이런 리스크를 회피하려면 통 크게 선제적 조치를 취하면 된다. 바로 추가 핵실험 중단 내지는 핵 동결 선언이다. 국제외교무대 데뷔 비용으로는 너무 비싸다고 할지 모르겠다. 그러나 김정은 체제는 현재 확보한 핵 능력 수준만으로도 정치ㆍ군사적 효과를 충분히 얻었다고 할 수 있다. 이제는 경량화 소형화에 쏟을 한정된 자원을 그가 강조해마지 않는 인민생활로 돌려야 할 때가 되었다.

김정은이 러시아 전승절 행사 참석에 앞서 추가 핵실험 중단 내지 핵동결 선언을 한다면 한 북한전문가의 표현대로 ‘신의 한 수’가 될 수 있다. 무엇보다 러시아 전승절 참석을 계기로 그에 대한 국제사회의 부정적 인식을 단박에 바꿔놓을 수 있다. 집권 직후 3차 핵실험 강행으로 벌어진 중국과의 관계 회복도 용이해진다. 국제사회의 인식이 달라지면 그간 역점을 기울여왔던 경제개발구 사업에도 외국 자본들이 관심을 갖게 될 게 분명하다.

동맹국 미국의 입장 때문에 고심하고 있는 박 대통령의 행사 참석 부담도 덜어주게 된다. 5ㆍ24조치 해제 등 남북관계 진전에 추동력이 붙을 것임은 물론이다. 6자회담도 긴 잠에서 깨어날 것이다. 물론 그렇게 되기까지 박 대통령이 해야 할 역할이 있다. 김정은이 그런 신의 한 수를 둘 수 있도록 그에게 믿음과 희망을 주는 것이다. 서로를 인정하고 신뢰하지 않고서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수석논설위원 wks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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