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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년간 똘똘 뭉친 입사동기, 우정 여행서 돌아오는 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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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년간 똘똘 뭉친 입사동기, 우정 여행서 돌아오는 길에…

입력
2016.10.15 0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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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늦게 부인과 탈출한 생존자

“나오라 소리 질렀지만 미동 없어”

형제 부부 중 동생만 살아 남기도

훼손 심해 DNA 검사로 신원 확인

유족들 “제발 시신 보여달라” 오열

14일 울산 울주경찰서에서 전날 발생한 관광버스 화재사고 사망자 유족들이 숨진 가족의 짐을 찾아가고 있다. 울산=연합뉴스
14일 울산 울주경찰서에서 전날 발생한 관광버스 화재사고 사망자 유족들이 숨진 가족의 짐을 찾아가고 있다. 울산=연합뉴스

13일 밤 경부고속도로 언양분기점에서 발생한 관광버스 사고로 37년 동안 동료애를 다져 온 전ㆍ현직 입사동기들이 화마(火魔)에 목숨을 잃었다. 사망자 10명 중 3쌍은 부부가 한날 한시에 숨져 안타까움을 더하고 있다.

한화케미칼 울산공장 소속 생산직 김모(57)씨 등 8명은 이날 오후 7시55분쯤 4박5일 중국 장자제(張家界) 여행을 마치고 대구공항에서 울산행 버스에 몸을 실었다. 김씨를 제외한 7명은 5,6년 전 회사를 떠났지만 모두 1979년 6월 입사한 직장 동기였다. 이런 인연은 ‘육동회’라는 이름의 정기 모임으로 이어졌고 허물없이 우정을 나눠 온 덕분에 이번 여행에도 아내와 형제들이 함께 했다.

하지만 ‘지상의 무릉도원’이라 불리는 장자제에서의 5일은 동기들의 마지막 추억이 됐다. 운전기사와 가이드를 포함, 사고 당시 승객 20명 가운데 화염에 휩싸인 버스에서 살아 나온 이는 10명. 동료이자 가족이었던 이들의 생사는 수분 사이에 갈렸다. 형제 부부 중 퇴직자인 동생 진모(61)씨만 가까스로 죽음을 면했고, 부인 서모(57)씨와 형 부부인 진모(72) 박모(66ㆍ여)씨는 숨졌다. 현직인 김씨와 퇴직자 중 김모(61) 성모(61)씨가 숨져 함께 육동회 회원 8명 중 3명이 유명을 달리했다. 이밖에 2명의 퇴직자 부인 이모(57) 서모(57)씨, 퇴직자 지인으로 함께 여행한 이모(61) 김모(59ㆍ여)씨 부부가 사망했다.

사고 소식을 접하고 인근 병원으로 달려간 유족들은 발생 하루가 지난 뒤에도 가족 신원조차 확인하지 못해 발을 굴러야 했다. 14일 시신 6구가 안치된 울산 울주군 서울산보람병원에서 만난 한 유족은 “‘제발 시신을 보여달라’고 해도 경찰은 훼손 정도가 심해 유전자정보(DNA) 채취 검사로 신원을 확인해야 해 기다려 달라고만 한다”고 울먹였다. 유족들은 이날 오전 3시30분쯤 사건을 수사 중인 울산 울주경찰서에 수거된 사망자의 유류품을 겨우 확인할 수 있었다. 유족들은 시커멓게 그을린 10여개의 여행가방과 휴대폰, 신발 등 사망자들의 남은 흔적을 끌어 안고 오열했다.

가까스로 구조돼 인근 병원으로 옮겨진 생존자들도 참사를 믿지 못하는 눈치였다. 가장 늦게 부인과 탈출했다는 한화케미칼 퇴직자 김모(62)씨는 “돌아오는 길에도 다들 들떠서 잠도 안자고 수다를 떨었다. 어디서부터 잘못됐는지…”라며 말을 잇지 못했다. 그는 “안전벨트를 겨우 풀고 뒷사람들에게 나오라고 소리를 질렀는데 미동도 없었다. 이미 질식해 사망한 상태였던 것 같다”고 사고 당시를 떠올렸다.

입사 30주년인 2009년 부부 동반 여행을 떠난 호주에서 기념 사진을 찍은 한화케미칼 입사동기 모임 ‘육동회’ 회원들. 돌아오는 길에 참변을 당한 이번 중국 여행도 십시일반 모은 돈으로 떠났던 것으로 전해졌다. 육동회 제공
입사 30주년인 2009년 부부 동반 여행을 떠난 호주에서 기념 사진을 찍은 한화케미칼 입사동기 모임 ‘육동회’ 회원들. 돌아오는 길에 참변을 당한 이번 중국 여행도 십시일반 모은 돈으로 떠났던 것으로 전해졌다. 육동회 제공

이번 여행은 육동회 중 유일한 재직자인 김씨가 계획했다. 그는 입사 후 줄곧 동기 모임 총무를 맡아 오면서 궂은 일을 도맡아 처리했다고 한다. 퇴직자 김씨는 “내게는 고교 후배이고 동기 중 가장 막내라 애교도 많았던 친구인데 젊은 사람이 귀한 목숨을 잃었다”고 말했다.

한화케미칼 동료들도 참담한 소식에 안타까움을 금치 못했다. 희생자들의 1년 후배라고 밝힌 이모(57)씨는 “공장 동료들끼리는 선ㆍ후배 따지지 않고 모두 형제처럼 지냈다. 하루 아침에 절친한 선배와 형수님들을 잃게 돼 회사가 초상집 같은 분위기”라고 전했다. 한화케미칼 관계자는 “수십 년 회사에 청춘을 바쳤던 분들이 어이없는 사고로 희생됐다”며 “퇴직자가 많지만 회사 차원에서 지원 가능한 모든 방안을 찾을 계획”이라고 말했다.

울산=이현주 기자 memory@hankookilbo.com

곽주현 기자 zooh@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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