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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형 심폐소생술 지침’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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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형 심폐소생술 지침’ 나온다

입력
2015.11.17 0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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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공 호흡 말고 곧바로 분당 100~120회씩 가슴압박 시행을

한국방송광고진흥공사 공익광고협의회 심폐소생술 포스터
한국방송광고진흥공사 공익광고협의회 심폐소생술 포스터

올 들어 심폐소생술(CPR)을 배운 초등학생들이 소중한 인명을 구한 이야기가 심심치 않게 들려 왔다. 그렇지만 연 3만 명에 달하는 급성 심장정지 환자 가운데 심폐소생술을 받아 소중한 생명을 구한 이는 4.4%에 불과하다. 나머지 95.6%의 환자는 목숨을 잃는 게 현실이다.

반면 미국과 일본, 스웨덴 등은 심폐소생술 교육에 적극 나서 심장정지 환자 생존율을 각각 50%, 69%, 71%로 크게 끌어 올렸다. 특히 우리나라 심장정지 환자는 가정(52.9%)과 직장, 길거리 등에서 80% 정도 발생하므로 심폐소생술 교육 의무화가 시급한 실정이다. 전문가들은 “심장정지 환자에게 심폐소생술을 시행하면 생존율은 3배 가량 높아진다”고 했다.

대한심폐소생협회(이사장 김성순)는 일반인이 쉽게 배울 수 있는 새로운 ‘한국형 심폐소생술 지침’을 마련, 다음달 4일 발표한다. 새 지침에는 일반인이 쉽게 심폐소생술을 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구강 대 구강 인공호흡을 하지 말고 곧바로 가슴을 압박하도록 했다. 가슴압박만으로도 충분히 효과를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심폐소생술 지침은 전세계적으로 5년 간격으로 업데이트되며 우리나라에서는 대한심폐소생협회가 한국 실정에 맞게 한국형 가이드라인을 마련하고 있다.

대한심폐소생협회 강사가 최근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열린 나눔장터에서 유치원생에게 가슴압박법을 가르치고 있다. 대한심폐소생협회 제공
대한심폐소생협회 강사가 최근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열린 나눔장터에서 유치원생에게 가슴압박법을 가르치고 있다. 대한심폐소생협회 제공

‘4분 이내 심폐소생술을 시행하자’

심장이 정지되면 호흡이 멈추고 뇌를 비롯한 여러 장기에 혈액 공급이 중단된다. 이 상태가 3~4분 이상 지속되면 뇌가 손상되기 시작한다. 10분을 넘기면 뇌세포가 거의 죽게 돼 사망한다. 따라서 무엇보다 4분 이내에 심폐소생술을 시행하는 것이 중요하다.

심장정지 등으로 쓰러진 환자가 4분 이내 심폐소생술을 받으면 살 수 있는 확률이 크게 높아진다. 1분 이내 심폐소생술을 실시할 경우 생존율은 97%에 이르는 것으로 보고돼 있다. 2분 이내는 90%, 3분 이내 75%, 4분 이내는 50%다. 따라서 ‘4분 이내 심폐소생술을 시행하자’는 운동이 벌어지고 있다.

하지만 국내에서 일반인이 심폐소생술을 시행하는 경우는 2010년 3.3%에서 2013년 8.7%로 늘고 있지만 미국(33.3%), 일본(34.8%)에 비해 턱없이 낮다. 황성오 연세대 원주의대 응급의학과 교수는 “미국이 우리나라보다 심폐소생술을 많이 시행하는 이유는 1990년대부터 학교 교육과정에 심폐소생술 교육을 의무적으로 시행하고 있기 때문”이라며 “어린 학생들도 심폐소생술을 익혀 소중한 생명을 구할 수 있도록 정책이 마련돼야 한다”고 했다.

우리나라는 최근 1~2년 사이에서야 심폐소생술 교육이 확산되고 있다. 국내 심폐소생술 교육 이수자가 2012년 1,000여명에 불과했지만 2013년 6만 명, 지난해 7만 명이 관련 교육을 받고 있다.

이는 최근 심폐소생술 기본 수칙을 바꾼 것도 한 요인이다. 과거 심폐소생술의 기본 수칙은 A(Airwayㆍ호흡통로 확보), B(Breathingㆍ호흡), C(Circulationㆍ순환)였다. 즉 호흡이 가장 중요하고, 기도를 확보한 뒤 심장압박을 해야 한다는 뜻이다. 호흡과 관련된 것을 해결하지 못하면 심폐소생술을 할 수 없다는 결론이다.

이처럼 가슴압박과 인공호흡을 병행하는 기존 심폐소생술에서 가슴압박 만해도 된다 것으로 전환됐다. 가슴압박만으로도 생명을 구할 확률이 줄지 않는다는 연구결과가 잇따라 나왔기 때문이다. 그레이엄 니컬 미국 워싱턴대 교수는 “심폐소생술을 시행할 때 지속적인 가슴압박에 인공호흡을 병용해도 예후는 가슴압박만 하는 것보다 더 좋아지지 않는다”는 논문을 ‘뉴잉글랜드 저널 오브 메디신(New England Journal of Meidicine)’에 발표했다.

급성 심장정지가 발생하면 1분 당 7~10%로 생존 가능성이 감소하고, 119구급대가 도착하는 시간이 10분 정도여서 호흡 문제로 시간을 낭비할 필요가 없이 곧바로 가슴압박을 시행해 119구급대가 도착할 때까지만 시간을 벌어줘도 사망위험을 줄일 수 있기 때문이다.

<심폐소생술 방법>

자료: 대한심폐소생협회

아기를 업은 한 남성이 최근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열린 나눔장터에서 가슴압박법을 시행하고 있다. 대한심폐소생협회 제공
아기를 업은 한 남성이 최근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열린 나눔장터에서 가슴압박법을 시행하고 있다. 대한심폐소생협회 제공

가슴 압박은 1분 당 100~120회 실시

대한심폐소생협회가 일반인을 위해 마련한 ‘한국형 심폐소생술 지침’의 새로운 내용은 ▦현재 시행 중인 구강 대 구강 인공호흡 삭제 ▦가슴압박 횟수를 과거 분당 100회 이상에서 100~120회로 규정 ▦가슴압박 깊이를 5~6㎝로 구체화 ▦자동제세동기(AED)를 가능한 한 일찍 시행하기 등이다.

우선 환자가 호흡이 없고 심장정지가 의심되면 환자의 양쪽 어깨를 가볍게 두드리며, 큰 소리로 “여보세요, 괜찮으세요? 눈 떠보세요”라고 말한다. 심장정지가 확인되면 곧바로 주위에 도움을 요청하거나 119에 신고해야 한다. 환자가 반응이 없더라도 움직임이 있거나 호흡을 하는 경우는 심장정지가 아니다.

이후에 심폐소생술을 시행한다. 먼저 환자의 가슴 중앙(양 젖꼭지 사이의 복장뼈)에 깎지 낀 두 손의 손바닥 뒤꿈치를 댄다. 이 때 손가락이 가슴에 닿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양팔을 쭉 펴 환자 가슴 중앙을 압박한다. 팔을 환자 몸과 수직인 상태에서 가슴이 5~6㎝ 깊이로 눌릴 정도로 강하고 빠르게 압박한다. 노태호 대한심폐소생협회 홍보이사(가톨릭대 성바오로병원 순환기내과 교수)는 “6㎝를 초과하면 생명에는 위협이 되지 않지만 환자가 부상을 입을 수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노 교수는 “심폐소생술을 하다가 갈비뼈가 부러질 수도 있지만 갈비뼈가 부러져도 생명을 살리는 것이 중요한 만큼 시행을 꺼리지 말아야 한다”고 덧붙였다.

가슴압박은 1분 당 100~120회가 가능한 속도로 ‘하나’, ‘둘’, ‘셋’… ‘서른’하고 횟수를 세어가면서 30회를 실시한다. 강하고 깊이 누를수록 더 많은 피가 신체에 공급되기 때문에 확실하게 체중을 실어 해야 한다. 호흡을 시키느라 가슴압박을 중단하는 것을 최소화하라고 새 지침에 포함됐다. 노 교수는 “가슴압박 실시율을 최소한 60% 이상 올리는 것이 중요하다”고 했다.

주변에 ‘심장충격기’로 알려진 자동제세동기(AED)가 있다면 목격자가 보는 앞에서 즉시 이를 사용해야 한다. 가슴압박으로 기본적인 혈액을 심장과 뇌에 보내줄 수 있지만, 심장 리듬을 정상화시키지는 못하기 때문에 AED를 사용해 환자의 정상 심장 리듬을 회복시키는 것이 중요하다.

AED는 제대로 수축하지 못해 떨기만 하는 심장에, 전기적 충격을 보내 심장을 기절시킨 후 심장이 정상 심장 리듬으로 회복하도록 돕는 기기다. 노 교수는 “심장정지 상태는 심실 내에 무질서한 전기가 수없이 맴돌면서 심실이 바르르 떨리는 심실세동(細動)이 가장 많다”며 “이런 심실세동은 가슴압박을 한다고 정상으로 회복되기가 쉽지 않기에 AED로 순간적으로 심장에 강력한 전기적 충격을 가해 심실세동을 일순간에 없애 버리는 것”이라고 했다.

AED 사용법 등 심폐소생술을 배울 수 있는 곳도 있다. 대한심폐소생협회, 대한적십자사 등에서 심폐소생술 교육을 시행하고 있다. 홈페이지에서 수강 신청을 할 수도 있다.

권대익 의학전문기자 dkwo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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