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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 실패·세계화 위험성 직시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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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 실패·세계화 위험성 직시하라

입력
2015.05.21 11: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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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 타계한 석학 울리히 벡

칼럼집 '오늘도 괜찮으십니까' 국내 출간

2008년 한국을 찾은 울리히 벡. 한국일보 자료사진
2008년 한국을 찾은 울리히 벡. 한국일보 자료사진

“민족주의는 우리의 정치, 사회, 과학체계와 지식의 범주를 경직시킨다.”

올 1월 심근경색으로 타계한 사회학의 거장 울리히 벡 전 뮌헨대 사회학연구소장의 칼럼집이 국내 번역 출간됐다. ‘울리히 벡의 오늘도 괜찮으십니까’(도도)는 그가 2009~2011년 유럽 주요 신문에 발표한 칼럼을 모은 책으로 독일에서 2010년, 영어권에서 2012년 소개됐다.

그는 1986년 ‘위험사회’ 출간 이후 성찰 없이 근대화를 향해 질주해온 세계의 실상을 지속적으로 지적하며 석학의 반열에 올랐다. 그는 이 책에서 19편의 칼럼을 통해 세계화나 초국가주의와 국가 및 민족주의가 별개일 수 없는 ‘세계내부정치(세계국내정치ㆍglobal domestic politics)’의 여건 속에서 “민족주의에 작별을 고하고 세계화된 세상과 그 위험을 직시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는 특히 줄곧 위험성을 강조해온 원자력발전을 둘러싼 논란을 언급하는데 집중한다. 그는 “갑작스러운 기후변화와 석유 고갈 위기 때문에 (온실가스를 발생시키지 않는) 원자력에너지가 마치 녹색의 만병통치약처럼 느껴질 수 있는 상황이지만 이는 무모한 도박”이라고 단언한다. 원자력을 녹색에너지라고 강조하는 움직임에 대해 “안전과 합리성을 보증해야 할 국가, 과학, 산업이 양면적인 게임에 참여하고 있다”며 “그들은 더 이상 신탁관리자가 아니라 용의자이며, 위험 관리자가 아니라 위험의 근원”이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이들이 “아직 활주로가 지어지지도 않은 상태에서 사람들에게 탑승하라고 강요하고 있다”는 것이다.

일본 후쿠시마 원전 사고 직후 메르켈 총리가 임명한 전문가위원회 일원으로 활동한 그는 메르켈 총리의 탈핵 방침 비판에 대해 “애벌레의 실수”이라고 적기도 했다. 재생에너지라는 나비를 예감하지 못한 채 고치가 사라지는 현상만 한탄한다는 것이다.

세계화로 인해 심화한 불평등 문제도 깊이 성찰한다. 벡은 ‘계층’이라는 용어조차 완곡적으로 느껴질 정도로 악화한 현실에서 불법체류자, 이민자에게 거친 일을 떠맡기는 각 세계의 가족이 “오래 전부터 세계 내부정치의 범죄 현장이 돼왔다”고 일갈한다. “아웃소싱이 세계의 핵심 수익원이 됐고, 부자들의 지배와 가난한 이들에 대한 착취, 자연 파괴가 국경에 상관없이 급격하게 진전하고 있다.”

그가 민족주의적인 시각을 시종일관 비판하는 것은 이런 까닭이다. 그는 “피부색이나 국적, 출신이 다른 사람들이 낯설더라도 몰락과 고통과 착취의 세상에서 서로 공존하고 협력해야 한다”고 호소한다.

그는 추구해야 할 세 가지 지향점을 강조한다. 지리적, 정치적 구분이 허물어진 세계의 시민들이 인식의 지평을 넓히라고, 국가의 실패를 직시하고 대중이 각성하라고, 사회의 취약점, 위험의 축적, 존엄성 상실에 관심을 가지라고. 급작스레 운명을 달리하기 전까지 줄곧 학계를 향해 실천적 지성의 역할을 호소했던 그는 이 책의 서문에서 “이해할 수 없는 현실이 이미 전방위로 맹렬히 확산돼 우리의 사고방식과 제도를 지배하고 있다”며 “이 야생의 현실은 밑에서부터, 두더지와 같은 관점에서 발견하고 탐구돼야만 한다”고 희망했다.

김혜영기자 shin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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