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닫기
“돈 쏟아부어도 안될 건 안 되게… 법조계 책임윤리 확립해야”

알림

“돈 쏟아부어도 안될 건 안 되게… 법조계 책임윤리 확립해야”

입력
2016.07.15 04:40
0 0

법조 불신 커지는데

퇴임 후 2년6개월 무료법률상담

몰랐던 사회이면 경험 값진 시간

‘국민 위해 봉사’ 약속 지켜 보람

학연ㆍ지연ㆍ혈연 중심 탈피해야

개헌 논의와 김영란법

1987년 이후 변화 헌법에 담을 필요

개헌 미룰 수 없다면 공론화해야

김영란법 경제에 부정적 우려에도

부정부패 척결 시대적 요구 더 강해

이강국 전 헌법재판소장이 7일 ‘통일시대 헌법과 헌법재판 연구소’가 있는 서울 종로구 법무법인 한결 사무실에서 한국일보와 인터뷰하고 있다. 신상순 선임기자
이강국 전 헌법재판소장이 7일 ‘통일시대 헌법과 헌법재판 연구소’가 있는 서울 종로구 법무법인 한결 사무실에서 한국일보와 인터뷰하고 있다. 신상순 선임기자

“타인에 대한 봉사는 자신을 위한 힐링이라고들 하는데 그 말이 옳더군요. 헌법재판소 소장 임명을 위한 인사청문회에서 ‘국민들로부터 은혜를 많이 받았으니, 퇴임하고 나면 국민들을 위해 봉사하겠다’고 한 약속을 지키기 위해 법률상담을 시작했는데, 공직에 있을 때는 몰랐던 우리 사회의 이면을 생생하게 보고 들을 수 있어 값진 시간이었습니다.”

2013년 헌법재판소장에서 퇴임한 뒤 대한법률구조공단에서 2년6개월간 무료법률상담을 한 이강국(71·사시 8회) 통일시대헌법과헌법재판연구소 소장은 힘 없고 소외된 이들의 눈물을 닦아줄 수 있었던 것이 인생의 가장 큰 보람이라고 말했다. 최근 법조비리 의혹으로 법조계에 대한 불신이 커진 가운데, 퇴임 이후 수임활동을 거의 하지 않고 법률상담과 대학강의에 매진해온 이 소장은 법조계는 물론 사회전체의 귀감이 되고 있다. 이 소장은 제68주년 제헌절을 앞둔 7일 서울 종로구 사무소에서 한국일보와 인터뷰를 가졌다.

_‘정운호 게이트’와 진경준 검사장의 뇌물 의혹 사건으로 법조계에 대한 국민의 불신이 커지고 있다. 법조계는 어떤 노력을 해야 하나.

“위기에 몰린 사람은 지푸라기라도 잡으려 한다. 중요한 건 그런 사람들을 대하는 법조인의 자세다. 사건 당사자가 아무리 발버둥치고 비용을 쏟아 부어도 안 되는 건 안 되고, 되는 건 되는 판?검사들의 공명정대한 업무처리와 변호사들의 책임윤리가 확립돼있다면 돈이 할 수 있는 영역은 줄어든다. 궁극적으로는 우리 사회가 공(公)과 사(私)를 엄정하게 분리하고, 학연ㆍ지연ㆍ혈연 중심의 전근대적인 연고주의를 벗어나 더 합리적이고 생산적인 인간관계가 형성되는 현대사회로 발전하는 것이 중요하다.

국민들이 사법절차에 대해 의심하는 것은 법률지식 부족이나 오해에서 비롯된 점도 있지만, 재판ㆍ수사 담당자들의 사려 깊지 못한 언행과 처리이유ㆍ결과도 원인 중 하나다. 국민과 소통을 강화하고, 업무를 투명하고 공명정대하며 정확하게 처리하는 방법밖에 없다.

전관예우를 없애려면 제도적 뒷받침도 필요하다. 공증인ㆍ중재인 제도를 개선해 확충하고 전직 고위법관들이 시ㆍ군법원 등에서 재판업무를 계속할 수 있게 한다면 지원자가 꽤 있을 것이다.”

_헌재소장 퇴임 후 2년6개월간 무료법률상담을 하셨다.

“공단까지 찾아온 분들 중에는 대법원 판결까지 받고 재심청구도 3~4번 해서 더 이상 구제 방법이 없는 분들이 많았다. 법조에 대한 불신은 물론 사회에 대한 한과 서러움과 분노가 대단했다. 열심히 들어주는 것으로 위로했다. 울면서 30분~1시간씩 서러움을 토한 이들은, 헌재소장까지 지낸 사람이 자신의 이야기를 들어준 데 깊이 감동했고 결과적으로 문제해결이 안 돼도 케이크나 꽃을 사오는 이도 있었다. 그렇게 하루 4건씩 650건이 넘는 인생사를 들었다.”

_가장 기억에 남는 판결은.

“대법관 재직시절 관할법원장의 허가가 필요했던 개명을 보다 쉽게 할 수 있게 한 판결이 기억에 남는다. 당시 개명 허가율이 법원마다 달라 주소를 바꾸면서까지 개명신청을 하는 사람도 있었다. 헌법상 행복추구권과 인간의 존엄성과 가치를 보장받기 위해, 자신의 이름은 자기 의사에 따라 선택할 수 있어야 한다고 믿는다. 개인보다 이해관계가 훨씬 복잡한 기업들은 상호를 쉽게 변경할 수 있어 형평성 차원에서 보더라도 개명은 범죄나 위법행위에 남용되지 않는다면 보다 폭넓게 인정돼야 한다고 생각했다.

다른 사건은 헌법재판소와 대법원에서 한 양심적 병역거부 사건이다. 종교적 신념에 의한 병역거부는 인정하되 현역복무보다 훨씬 힘들고 기간이 긴 대체복무 제도의 도입이 합리적이라고 생각한다. 먼 장래에는 다수의견이 되리라 기대한다.”

이강국 전 헌법재판소장은 개명 사건을 떠올리며 “개인보다 이해관계가 훨씬 복잡하게 얽혀 있는 기업은 상호를 아주 쉽게 바꿀 수 있어 형평성 차원에서도 개명은 폭넓게 인정돼야 한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신상순 선임기자
이강국 전 헌법재판소장은 개명 사건을 떠올리며 “개인보다 이해관계가 훨씬 복잡하게 얽혀 있는 기업은 상호를 아주 쉽게 바꿀 수 있어 형평성 차원에서도 개명은 폭넓게 인정돼야 한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신상순 선임기자

_헌법이 국민에게 갖는 의미는 무엇인가.

“소송 당사자들이 ‘대법원에서도 안 되면 헌법재판소까지 가서 판단을 받겠다’고 말하는 것을 쉽게 듣곤 한다. 국민들이 마지막 분쟁해결 수단으로 헌법재판을 생각하게 된 것이다. 과거 헌법은 국민의 일상생활에 아무런 영향이 없는 명목적이고 형식적, 장식적 규범에 불과했지만, 헌법재판소 창립 이후 헌법의 위상은 크게 달라졌다. 헌재에서 헌법의 해석과 적용이 적극적으로 이뤄지면서 헌법은 구속력을 가지는 재판규범이 됐고 국민 생활에 큰 영향을 미치는 생활규범이 됐다. 대통령 탄핵심판이나 신행정수도 건설 등 중대한 국가적, 사회적 쟁점들도 헌법에 기초해 심판을 받았다. 이제 헌법은 국가권력의 남용을 억제하는 강력한 통제규범이자 우리 사회를 통합하는 규범이라고 할 수 있다.”

_개헌 논의가 활발하다. 헌법 개정 필요성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1987년 개정 이후 정치ㆍ경제ㆍ사회ㆍ문화 각 분야에서 일어난 많은 변화를 헌법에 담아낼 필요도 있고, 새로운 100년을 준비하는 중요한 시기라는 점에서 논의가 활발해진 것으로 보인다. 개헌 논의를 더 이상 미룰 수 없다면, 차라리 공론화해 국민들의 지혜와 경험과 깊이 있는 연구결과를 모아 개헌이 꼭 필요한지, 필요하다면 어떤 형태로 할 것인지 결론을 내야 한다. 전문가 집단과 국회의 개헌 특위가 심오하게 연구ㆍ검토한다면 일석이조의 성과를 거둘 수 있을 것이다. 우리 국민들은 그러한 결과를 창출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고 믿는다.”

_제20대 국회가 개원했다. 국회의원들이 입법시 주의할 점은.

“법률에 대한 위헌심판을 하다 보면 정부입법에 비해 의원 입법에 문제가 있는 경우가 많다. 의원들이 입법권을 갖고 있으나 입법전문가가 아니고 이익단체나 유권자들의 무리한 요구에 따르는 경우가 많아서다. 의원입법시 제일 먼저 법안에 위헌 요소가 없는지 검토해야 한다. 헌법 이념과 가치에 합치하지 않고 국민의 기본권을 과도하게 제한한다면 무효가 된다. 나아가 법안은 시대상황과 시대정신에 맞아야 하고, 체제 정당성과 완결성을 가져야 한다. 이를 위해 국회 입법조사처나 전문위원들의 적극적인 관여와 검토가 필요하다. 충분한 시간을 두고 공론화해 국민들의 지혜와 경험이 녹아 들어 가는 절차가 마련된다면 더욱 바람직할 것이다.”

_헌재가 심리 중인 김영란법은 필요하다고 생각하나.

“이 법의 입법 목적은 부정부패 척결과 부조리의 시정이지, 경기 부양이 아니다. 입법 과정에서도 경제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우려가 제기됐지만, 국회에서 압도적으로 통과된 것은 부정부패를 일소하자는 시대정신과 국민의 요구가 더 강했기 때문이다. 이 법이 제대로 시행돼 반만 년 동안 이어 내려온 부정부패와 부조리를 끊을 수 있는 계기가 됐으면 좋겠다. 언론인과 사립학교 교원까지 적용대상에 포함시키고 선물ㆍ접대비의 범위를 너무 엄격하게 제한해 국민들의 기본권을 과도하게 침해하고 있는지 등은 헌법재판소에서 가려줄 것이다.”

_대법원과 헌법재판소의 권한 다툼 논란이 가라앉지 않고 있다. 두 기관의 올바른 관계 정립에 대한 견해는.

“대법원과 헌재의 대립과 다툼은 엄밀히 따지고 보면 ‘한정위헌(전면 위헌은 아니지만‘…라고 해석하는 한 위헌’이라는 취지) 결정의 기속력(羈束力ㆍ법원이나 행정기관이 스스로 내린 재판ㆍ처분에 구속되어 자유롭게 취소ㆍ변경할 수 없는 효력)’에 관한 것뿐인데, 조만간 해결될 것으로 기대한다. 헌법재판 선진국인 독일에서도 거의 같은 과정을 거쳐 논란이 종결됐기 때문이다. 독일에서도 처음에는 한정위헌과 그 기속력에 대한 법적 근거가 없었지만 헌재가 법리를 개발해 한정위헌 결정을 만들어냈고 기속력에 관한 논란이 23년간 지속되다가 1974년 독일연방헌법재판소법 개정에 의해 근거 조문이 만들어지면서 결국 해결됐다.”

이강국 전 헌법재판소장은 법조인들에 대한 신뢰추락을 걱정했다. 그는 “사건 당사자가 아무리 발버둥치고 돈을 쏟아 부어도 안 되는 건 안 되도록 공명정대하게 업무처리를 해야 신뢰가 생긴다”고 강조했다. 신상순 선임기자
이강국 전 헌법재판소장은 법조인들에 대한 신뢰추락을 걱정했다. 그는 “사건 당사자가 아무리 발버둥치고 돈을 쏟아 부어도 안 되는 건 안 되도록 공명정대하게 업무처리를 해야 신뢰가 생긴다”고 강조했다. 신상순 선임기자

_헌법재판소장 임기에 대해 혼란이 여전하다. 헌법재판관을 지내다 소장에 임명된 사람은 6년의 재판관 임기 중 남은 임기 동안만 소장을 맡는 것인지, 새로 임기를 시작하는 것인지 별도 규정이 없는데, 어떻게 생각하나.

“오래 된 논란이다. 헌법 제111조 4항의 ‘헌법재판소의 장은 재판관 중에서 대통령이 임명한다’는 규정을 놓고 여러 해석이 있다. 이 규정은 헌법재판소장이 재판관 중 1명이라는 취지를 선언하는데 방점이 있다고 풀이하고 임기문제도 그런 입장에서 해결(6년 보장)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 헌법이 개정되면 이 또한 헌법에 명확히 할 수 있을 것이다.”

_‘통일시대 헌법과 헌법재판 연구소’에서는 어떤 연구를 하나.

“지난해 12월 통일헌법의 정당성과 기본방향, 통일헌법의 헌법재판 등을 주제로 제1회 학술세미나를 열었다. 올 연말엔 각국의 통일헌법 사례와 제도의 장단점 등을 주제로 제2회 학술세미나를 계획하고 있다. 현재는 개인 연구소지만 사단법인화하는 절차를 진행하고 있다. 사단법인이 되면 지속성과 독립성이 강화되리라 기대한다.”

강철원 기자 strong@hankookilbo.com

박지연 기자 jyp@hankookilbo.com

◆이강국은 누구

1972년 판사로 임관해 서울형사·민사지법 부장판사, 법원도서관장, 대전지법원장을 거쳐 대법관과 법원행정처장, 헌법재판소장을 지냈다. 3대가 법조인이다. 그의 선친은 고(故) 이기찬 변호사, 아들은 이훈재 판사다. 2013년 퇴임 후 2년6개월간 법률구조공단에서 무료법률 상담을 했고, 같은 해 9월부터는 서울대 법대 일반대학원에서 초빙석좌교수로 ‘헌법기본판례연구’ 등의 강좌를 맡았다. 여러 차례 정치권의 영입제의를 고사하고 헌법연구에 정진하고 있다.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