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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끝뉴스] 국회 떠들썩하게 만든 1000여 명의 정체는

입력
2015.10.06 15: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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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어촌 지방 선거구 사수'를 요구하며 상경한 농어촌 지역구민들이 6일 국회 잔디마당을 걸으며 시위하고 있다. 연합뉴스
'농어촌 지방 선거구 사수'를 요구하며 상경한 농어촌 지역구민들이 6일 국회 잔디마당을 걸으며 시위하고 있다. 연합뉴스

6일 여의도 국회 앞마당은 1,000여 명의 사람들도 떠들썩 했습니다. 강원, 전남, 전북, 경북, 충북 등에서 모여든 지역 주민들과 이들 지역의 여야 국회의원들이 플래카드와 손팻말을 들고 행진을 하며 구호를 외치고 기념사진을 찍느라 어수선했습니다. 이들은 ‘인구기준 선거구 획정 대도시만 웃고 농어촌 지방 피눈물 난다’ ‘여야 대표는 각성하라! 300만 농어민 앞에 석고대죄 하라’ ‘농어촌 지방 죽이는 선거구 획정 결사반대’를 외쳤습니다. 중장년 층이 대대수였던 이들이 국회 앞마당을 종횡무진하는 모습을 지켜보는 국회 경호담당 직원들과 경찰들도 다소 당황해 하는 분위기였습니다. 이들이 국회 본청 안으로 진입할 수 있다는 ‘정보’ 때문인지 수 십명의 국회 직원들과 경찰들이 이들의 움직임을 예의주시했습니다.

사실 평소 같으면 해당 지역구 의원의 초청으로 국회 견학을 올 ‘평범한 동네 아저씨, 아줌마, 어르신들’ 이지만 이날의 국회 방문 목적은 달랐습니다. 이들이 국회를 찾은 까닭은 국회 농어촌지방주권지키기의원모임(농어촌모임) 소속 의원들이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의 선거구획정위원회가 지역구 의석수와 선거구 획정을 마무리해야 할 시점(13일)이 다가오면서 마련한 상경집회에 참석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전남에서 올라왔다는 장모(68)씨는 “아침 8시에 버스를 타고 올라왔다. 점심은 천안휴게소에서 해결했다”고 했습니다. 장씨는 기자가 묻지는 않았는데 “이거 절대 누가 시켜서 한 거 아니다. 우리가 직접 하자고 한 거다”라는 말을 꺼내더니 “선거구가 엉망으로 만들어 진다니 가만히 있을 수는 없지 않느냐”고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기자가 “헌법재판소에서 인구 편차를 맞추라는 결정을 한 건데 그걸 어기면서까지 농어촌 지역구를 살리자는 말씀이냐”고 묻자 곁에 있던 박모(66)씨가 “그건 우리가 모르겠고... 어쨌든 몇 개 군을 묶어서 선거구 하나 맹근다고 하는 것이 말이 되는 것이오”라고 핏대를 세웠습니다.

하지만 이날 국회 앞마당에서 마주친 대다수 참석자들의 표정에서는 심각함보다는 밝음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서로 사진 잘 나와야 한다며 좋은 위치를 놓고 실랑이를 벌이거나 농담을 하는 모습에서 ‘야유회’ 분위기 마저 느껴졌습니다. 여기에 전라도, 경상도 서로 다른 지역에서 온 다른 지역 주민들을 향해서 "파이팅" "고생 많으십니다" 하며 서로 웃으며 응원해 주는 모습까지 목격됐습니다. 평소 여야 의원들 심지어 같은 당 의원들끼리 으르렁 거리는 모습만 보던 여의도 국회에서는 너무나도 낯선 광경이었습니다.

반면 당장 지역구가 없어지거나 옆 지역구와 합쳐져야 할 운명에 처한 국회의원들은 표정이 무거워 보였습니다. 현장에서 만난 한 야당 의원은 “사실 뭐 이분 들이야 지역구가 어찌 되는 것이 얼마나 큰 변화를 가져올 지에 대해서 아직은 잘 모르실 것”이라며 “국회의원 한 사람이 챙겨야 할 지역이 넓어지면 의원들은 고달파 지고, 지역 주민들도 어쨌든 이래저래 피해가 가지 않겠느냐”고 하소연했습니다.

이날은 선거구획정위가 회의를 열어 지역구 의석 수와 선거구를 어떻게 나눌 지에 대해 논의하는 날입니다. 획정위는 앞서 2일 열린 회의에서 8시간 마라톤 논의 끝에 답을 만들지 못했습니다. 가장 큰 이유가 농어촌 지역의 특수성을 어떻게 반영하느냐였습니다. 농어촌 지역 의원들의 반발과 이들의 반발에 여야 지도부(특히 새누리당)가 호응하면서 선거구 획정위가 선뜻 결론을 내리지 못하고 주저주저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그 동안 기자회견, 연좌농성 등 다양한 방법으로 농어촌 (자신의) 지역구를 사수하려는 농어촌 지역 의원들의 노력이 어느 정도 효과를 낸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과연 이들의 원하는 바를 끝까지 관철해 낼 수 있을까요.

농어촌에 지역구를 둔 한 야당 의원에게 물었습니다. “설사 농어촌 지역구 몇 석을 살리더라도 결국 농어촌 의원 중 일부는 분명 지역구를 잃게 될 텐데 그럼 그 때는 어떻게 하실 건가요”. 그러자 이 의원은 “그것도 큰 문제죠. 전남에 1석 살린다고 하면 그걸 가지고 의원들끼리 가위바위보를 할 수도 없는 노릇이고. 근데 그건 그 다음 문제 아니겠습니까.”

국회 앞마당을 왁자지껄하게 만들었던 지역 주민들은 여의도의 단골 집회 장소인 국민은행 앞에서 모여 집회를 열기 위해 줄 지어 국회 정문을 빠져나갔습니다.

박상준기자 buttonpr@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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