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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아리] 강한 청와대

입력
2017.03.24 16: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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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의 비극 초래한 제왕적 리더십

대선주자마다 ‘작은 청와대’ 공약

위기 헤쳐 나갈 강력한 지휘부 필요

박근혜 대통령이 신년을 맞아 청와대 상춘재에서 춘추관 출입기자들과 만나 대화를 나누고 있다.2017.1.1청와대 제공/2017-01-01(한국일보)
박근혜 대통령이 신년을 맞아 청와대 상춘재에서 춘추관 출입기자들과 만나 대화를 나누고 있다.2017.1.1청와대 제공/2017-01-01(한국일보)

‘작은 청와대’. 박근혜정부 출범 당시 구호였다. 박 전 대통령은 비대해진 청와대 조직을 축소하고 내각의 힘을 키워 주겠다고 약속했다. 대통령실을 비서실로 바꾸고 정책실과 기획관 제도를 없애는 개혁 코스프레도 했다. 책임 총리제, 책임 장관제도 강조했다. 김용준 대통령직인수위원장은 “각 부처는 장관이 실질적으로 업무를 수행하며 결과에 책임지는 체제로 전환할 것”이라고 밝혔다. 청와대 비서실은 행정부가 놓치는 일을 챙기면서 국정 운영의 핵심 의제를 발굴하는 등 대통령 보좌 역할에만 충실하겠다는 다짐이었다.

그런데 웬걸. 뒷간 갈 적 마음과 나올 때 마음이 다르다더니, 청와대를 접수하자마자 돌변했다. 박 전 대통령은 법적 권한을 한시적으로 위임받은 민주공화국의 지도자가 아니었다. ‘주군(主君)’이었다. 혼자 모든 일을 결정하는 만기친람(萬機親覽) 리더십으로 일관했다. 관료들은 받아 적기에 급급했다. 청와대 수석은 대통령을 등에 업고 각부 장관 위에 군림했다. 공적 행정체계는 마비됐다. 최순실 국정농단의 직격탄을 맞은 문체부 관료들은 “청와대에서 모든 걸 다했다”고 토로했다. 행정부의 자율성, 창의성은 사라졌다. 영혼 없는 관료들은 청와대 눈치를 보며 5년 임기가 끝나기만 기다렸다.

또다시 ‘작은 청와대’다. 박근혜정부의 처참한 실패는 제왕적 리더십 탓이라는 게 중론이다. 청와대 문턱 낮추기 공약이 봇물을 이루는 배경이다. 밀실과 불통의 상징인 청와대의 폐쇄적 구조를 개방형으로 바꾸고 비대해진 조직을 축소하겠다는 게 골자다. 대통령 집무실을 비서실이나 정부청사로 옮겨 소통을 강화하고 보좌 조직의 군살을 빼겠다는 것이다. 권위적이고 봉건적인 구체제의 상징 청와대를 시민 휴식공간으로 돌려주겠다는 데는 전적으로 공감한다. 하지만 조직 슬림화가 청와대 개혁의 요체일 수는 없다.

청와대 직제상 정원은 465명. 노태우 정부(384명) 시절보다 늘었다고는 하나 전체 공무원 100만명에 견주면 조족지혈이다. 더욱이 다음 대통령은 북핵 위기와 미국 보호주의 압력 등 총체적 위기와 맞닥뜨릴 운명이다. 적폐 청산과 통합이라는 시대적 과제도 해결해야 한다. 청와대 보좌조직은 대통령의 두뇌에 해당한다. 안정적 국가 위기관리 체제를 가동하려면 정확한 정보에 따른 정책 판단 기능이 필수적이다. 오히려 비서실 예산과 정원을 확대해 보좌역량을 강화해야 할 때다.

아무리 유능한 지도자라도 혼자 모든 정책을 꿰차고 조정하는 건 불가능하다. 대통령은 국정 운영의 큰 방향만 제시하고 구체적인 정책 수립과 집행은 내각에 맡기는 게 옳다. 제왕적 권력 집중의 관건은 인사권이다. 수석실의 부처 통제와 인사 전횡을 막아야 청와대와 내각의 역할 분담이 가능해진다. 청와대가 부처 실ㆍ국장과 산하 공기업 인사까지 관여하면 공무원들이 장관보다 권력 실세 눈치를 보게 된다. 이는 국정과제 수행을 방해하고 부패를 유발하는 주원인이다. 청와대는 정무직(장ㆍ차관급) 인사만 챙기고 1급 이하와 공공기관은 각부 장관에게 맡기는 게 옳다. 그래야 인재 선발과 적재적소 배치 등 인사권을 제대로 행사하지 않았을 때 장관에게 책임을 물을 수 있다.

청와대는 내각과 긴밀히 협력하며 장기 국정과제에 집중해야 한다. 안보 위기 해결, 저출산 고령화 대응, 가계부채 축소, 공교육 개혁, 경제민주화를 통한 불평등 완화 등 핵심 과제별 정책 역량을 키우는 게 중요하다. 관련 부처를 관장하는 경제, 외교안보, 고용복지, 교육문화 등 기존 수석비서관제는 안 어울린다. ‘북핵 수석’, ‘저출산 수석’, ‘교육개혁 수석’ 등 국정과제별 수석으로 이름을 바꾸자.

대통령 임기 5년은 쏜살같이 지나간다. 정책 어젠다를 설계하고 관련 조직을 갖추는데 1년, 임기말 1년을 빼면 정책 실행 기간이라야 고작 3년 남짓이다. 향후 5년을 어떻게 대응하느냐가 대한민국의 명운을 가를 것이다. 풍부한 전문인력과 자원을 토대로 ‘강한 청와대’ ‘개혁사령부 청와대’가 돼야 한다. 그래야 밀려오는 위기 쓰나미를 돌파할 수 있다.

고재학 논설위원 goindol@hankookilbo.com

고재학 논설위원, 국장 /2016-12-21(한국일보)
고재학 논설위원, 국장 /2016-12-21(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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