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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정우가 말하는 배우, 감독 그리고 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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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정우가 말하는 배우, 감독 그리고 화가

입력
2016.06.02 18: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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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정우는 “박찬욱 감독님의 팬으로서 함께 작업해 보고 싶었다”며 영화 ‘아가씨’에 출연한 이유를 밝혔다. 이정현 인턴기자
하정우는 “박찬욱 감독님의 팬으로서 함께 작업해 보고 싶었다”며 영화 ‘아가씨’에 출연한 이유를 밝혔다. 이정현 인턴기자

영화 ‘아가씨’는 배우 하정우(39)에게 그리 새로운 도전은 아니었다. ‘아가씨’의 후지와라 백작은 지질한 남자 병운(‘멋진 하루’)과 끝없는 욕망만을 쫓는 재현(‘비스티 보이즈’)과 닮은 꼴이다.

조선인이면서 일본 귀족인 척 사기를 치는 후지와라 백작은 진짜 일본 귀족이면서 막대한 유산을 상속받은 히데코(김민희)를 꾀어 재산을 빼내려 한다. 자신을 좋아하게 만들라며 히데코의 하녀로 들이는 숙희(김태리)를 꼬드기기도 한다. ‘말 빨’ 좋은 사기꾼에 허풍과 허세로 가득한 후지와라 백작을 보고 있자니 그간 봐왔던 하정우표 연기가 물씬 풍긴다. 최근 한국일보와 만난 하정우도 같은 의견이었다.

“박찬욱 감독님이 ‘멋진 하루’와 ‘비스티 보이즈’ 등 속 캐릭터와 비슷하게 백작 역할을 해 줄 수 있는 캐릭터가 필요했던 것 같아요. 시나리오를 받아 봤을 때 제시된 지문과 대사가 낯설지 않았으니까요.”

익숙한 듯한 백작 역에 흔쾌히 응한 건 박찬욱이라는 감독에 대한 호기심이 발동해서다. “박 감독의 세계에 들어갔을 때 어떤 형태를 띨까가 스스로 궁금”했다고. 그렇게 시작한 ‘아가씨’는 첫 관문부터 만만치 않았다. 알아듣지도 읽을 줄도 모르는 일본어 대사가 큰 난관이었다. 시대극이라는 특성을 살려 문어체적 대사를 “능글능글 리듬감을 살려”해야 했는데 입에 잘 붙지 않았다.

박찬욱(가운데) 감독이 ‘아가씨’ 촬영장에서 배우 하정우와 영화에 대해 의견을 나누고 있다. CJ엔터테인먼트 제공
박찬욱(가운데) 감독이 ‘아가씨’ 촬영장에서 배우 하정우와 영화에 대해 의견을 나누고 있다. CJ엔터테인먼트 제공

영화 속에서 백작이 처음 등장하는 장면이 가장 힘들었다고 한다. 일본어와 한국어 대사를 적절히 섞어 히데코와 그의 후견인인 이모부 코우즈키(조진웅)에 대해 설명하고, 히데코에게 사기칠 계획을 숙희에게 늘어놓는 장면이다. 하정우는 “말투와 캐릭터가 자연스럽게 녹아 들어 잘 버무러져야 살아나는 장면이었는데 그게 힘들었다”고 털어놨다.

그나마 하정우에게 신선했던 건 “창피할 정도로” 자신을 내려놓은 연기들이다. 숙희에게 사타구니 부위를 잡히거나, 막판에 손가락이 잘려나간 고통 속에서도 신체 주요 부위를 지칭하는 대사를 거침없이 내뱉는 장면이 있다. 그는 “그런 장면들은 상당히 세다. 하지만 도전하고 소화해 볼만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했다”고 했다.

“일단 백작에게 연민이 갔어요. 불쌍한 캐릭터죠. 사실 영화를 선택할 때 연민이 가는 역할들에 많이 끌려요. ‘멋진 하루’의 병운이나 ‘러브 픽션’의 주월 등은 지질하지만 연민이 많이 가잖아요.”

하정우는 ‘아가씨’를 통해 박 감독만의 연출 스타일에 익숙해져야만 했다. 촬영 3개월 전부터 배우들과 대본 리딩만 하면서 배우가 대사를 제대로 소화하지 못하면 상황에 맞게 수정하는 작업이 정교하게 이뤄졌다. 그로서는 “처음 하는 경험”이었다. 매 장면마다 막내 연출부의 아이디어를 허투루 넘기지 않고 꼼꼼히 적은 후 대본에 반영하는 것도 박 감독 스타일이었다. 하정우는 “모든 장면과 인연들을 소중히, 정성스럽게 대하는 태도를 박 감독에게 배웠다”고 했다.

“후배 영화인으로서, 감독님의 팬으로서 그 작품 세계에 들어가고 싶었죠. 같이 작업하면서 박 감독님은 축복 받은 사람이라고 생각했어요. 자신이 표현하고 싶은 걸 다 표현해 내는 점이요. 저 역시도 어린 나이에 좋은 감독, 좋은 작품을 만났고 성장하고 있다는 건 축복 받은 일이죠.”

영화 ‘아가씨’의 주연 배우 하정우. 이정현 인턴기자
영화 ‘아가씨’의 주연 배우 하정우. 이정현 인턴기자

‘롤러코스터’(2013) ‘허삼관’(2014)을 통해 감독으로도 인정 받은 하정우는 세 번째 영화의 구상을 이미 마쳤다. 하와이의 한인회장을 주인공으로 한 코미디 장르란다. 존경 받는 한인회장의 이면에 마피아, 정치 세력 등이 연결된 내용을 다루는 블랙코미디라고도 했다. “비슷한 작품은 영화 ‘번 애프터 리딩’”이라고 귀띔도 했다. ‘번 애프터 리딩’은 미국 유명 형제 감독인 조엘 코엔, 이선 코엔이 연출한 영화로 조지 클루니, 존 말코비치 등이 출연한 블랙코미디다. 하정우는 “2년 후에나 만들어지지 않을까”라며 “시나리오부터 써야 한다”고 말했다.

차기작에 대해 자신 있게 말하는 건 역설적으로 ‘허삼관’에 대한 스스로의 실망 때문인 듯했다. ‘롤러코스터’로 뜻하지 않게 감독으로서 호평 받으면서 ‘허삼관’으로 흥행이라는 성공까지 잡아보고 싶었다고 했다. 하지만 사람의 일이 어디 모두 뜻대로 되랴.

“‘허삼관’을 찍으면서 관객 수나 어떻게 하면 사랑(흥행)받을 수 있을까만 신경 썼어요. 저만의 것을 넣었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했죠. 처음부터 제가 보고 싶은 영화, 제가 하고 싶은 영화를 만들었어야 했는데… ‘허삼관’은 저의 교만이었다고 생각해요. 세 번째는 다시 ‘롤러코스터’ 같은 작품을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어요.”

하정우는 ‘아가씨’에서 막대한 유산을 상속 받은 일본 귀족 히데코(김민희)에게 접근하는 사기꾼 백작 역을 맡았다. 이정현 인턴기자
하정우는 ‘아가씨’에서 막대한 유산을 상속 받은 일본 귀족 히데코(김민희)에게 접근하는 사기꾼 백작 역을 맡았다. 이정현 인턴기자

하정우는 배우와 감독에 이어 화가라는 직함까지 얻으며 남다른 예술적 재능을 발산하고 있다. “어떻게 하면 연기를 잘하고 오랫동안 할 수 있을까를 고민하다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는 그는 지난해 미국 로스앤젤레스(LA)에서 열린 전시회를 떠올렸다.

“사실 LA전시회 당시 굉장한 혹평을 받았고 반응이 좋지 않았어요. 마이클 고반 LA카운티미술관 관장님께서 전시회가 끝날 무렵 한마디 하셨죠. 드로잉 작품은 좋은데 페인팅에 왜 눈치를 보느냐는 것이었어요. 페인팅도 드로잉 작품처럼 해야 한다고 하시는데 무릎을 딱 쳤죠. 앞으로 제가 하는 일들에 대한 충고 같았어요.”

‘아가씨’가 개봉으로 바쁜 하정우는 ‘터널’ ‘신과 함께’ ‘앙드레 김’ 등 여러 작품의 개봉과 촬영 일정이 몰려 있다. ‘용서받지 못한 자’(2005)를 시작으로 ‘추격자’ ‘황해’ ‘범죄와의 전쟁: 나쁜 놈들 전성시대’ ‘베를린’ ‘더 테러 라이브’ ‘암살’ 등 쉴 새 없이 달려온 그이지만 좀처럼 쉴 틈이 없어 보인다. 그래도 그는 행복하단다. 배우로서 부모로부터 물려 받은 재능과 함께 좋은 사람들과의 만남으로 인해 스스로 무언가를 이루어가는 것 같다며. “아버지(김용건)께 너무나 감사 드리죠. 또 많은 감독님들과의 작업을 통해 인간이 혼자 할 수 있는 건 없다는 걸 깨달았어요. 이 모든 게 합쳐져서 오늘이 온 게 아닐까요?”

강은영기자 kis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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