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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 통합진보당 해산이 민주주의의 승리인가

입력
2014.12.23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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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법재판소는 통합진보당이 특정세력에 장악된 채 은밀히 북한식 사회주의혁명을 추구하면서 민주적 기본질서에 구체적 위험을 가하고 있다는 이유로 통합진보당에 대해 해산결정을 내렸다. 정부와 보수진영은 자유민주주의 승리라고 환호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 정치현실을 자유민주주의의 개념에 견주어 보면, 이번 해산결정은 협량한 ‘반공주의’ 내지 ‘반좌파’의 승리라고는 할 수 있을지언정 ‘진정한 자유민주주의’의 승리라고는 할 수 없다.

자유민주주의는 다양한 견해들과 이익집단들 사이의 자유롭고 공개적인 경쟁을 보장하는 정치질서다. 이와 같은 정치적 개방성은 내용의 측면에서도 제한돼서는 안 된다. 그러므로 자유민주주의의 개별원리들, 심지어는 그 전체를 의문의 대상으로 삼는 것도 폭력적으로 그런 주장을 관철하려 하지 않는 한 수용해야 한다. 자유로운 국가라면 체제내적 비판만을 허용해서도 안 된다. 자유민주주의는 시민의 자발적인 동의를 먹고 산다. 이것이 민주주의의 큰 약점이자 장점이다. 이 약점을 국가권력을 동원해서 보완하려고 하면 민주주의는 쉽게 권위주의로 전락하게 된다. 대중민주주의에서 불가결적 의미를 갖는 정당도 폭력적인 방법으로 자신의 정책을 관철하려 할 때에만 해산대상이 돼야 한다.

그렇다면 우리 정치현실에서 누가 정녕 자유민주주의를 보다 심각하게 위협하고 있는가? 비현실적인 이념을 교조적으로 고집하는 시대착오적 정치세력으로 낙인찍혀 정치적으로 고립된 미미한 세력의 정당인가, 아니면 정권을 거머쥐고 공영언론을 장악하고 정치적 반대파들을 기준도 실체도 모호한 종북세력으로 모는 등 이념적 대결을 부추겨 이성적 논의의 틀을 깨버리는 정당인가?

정치적 힘이 약해 아스팔트 위에서 과격한 구호나 외쳐 댈 뿐인 입만 거친 양인가, 아니면 특정 부분이익에 심하게 기울어진 채 공안기관들을 동원해 정치적 반대나 비판을 툭하면 국가보안법 위반이나 명예훼손 또는 모욕으로 몰아 위축시키는 양의 탈을 쓴 늑대인가? 당내경선 과정에서 탈선한 일부 당원들이 자파의 후보가 당의 공천을 받을 수 있도록 인터넷으로 대리투표를 하는 세력인가, 아니면 국가차원의 선거에서 국가기관을 동원해 여론조작을 감행하는 세력인가?

답은 자명하다. 기득권에 대해 입만 사나운 미약한 정당은 헌법보호를 위해, 아니 많은 경우 헌법보호라는 미명아래 희생되기 쉽지만, 이미 강력해져 집권에 성공한 정당은 민주주의질서 제거를 획책하더라도 해산대상이 될 수 없다. 역사는 민주주의의 파괴는 사회체제 자체를 변동시킬 수 있는 힘을 갖춘 사회적ㆍ경제적ㆍ정치적 세력의 뒷받침이나 군대와 같은 물리력의 동원 없이는 생각하기 어려우며 군소정당의 경우에는 대부분 그런 지지를 확보하기 전에 집권세력에 의해 제거된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것이 정당해산제도의 근본적 한계다.

현 집권세력은 많은 시민들의 희생 속에 쟁취해 낸 ‘자유민주주의의 최소한’인 ‘선거민주주의’마저 위기에 빠뜨렸다. 독일 연방헌법재판소는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의 핵심적 구성요소의 하나로 ‘정부의 책임성’을 들었다. 이를 구현하는 핵심수단이 민주적 선거다. 국가기관의 조직적 선거 개입은, 민주주의의 기능에 불가결한 정치세력들 상호간의 신뢰를 깨고 국민의 선택권을 침해해 선거를 무의미하게 만드는 것이라는 점에서 민주적 기본질서를 침해하는 중대범죄인 것이다. 그럼에도 새누리당은 해산의 대상이 될 수 없는 것이 정치적 현실이다. 그들이 민주적 기본질서에 대한 해석권을 쥐고 해산대상 정당을 정할 수 있는 정치적 다수파이기 때문이다.

정당해산은 자유민주주의 수호를 위한 필요조건도 충분조건도 아니다. 자유민주주의는 그 소중함을 알고 민주의식을 갖춘 채 민주주의를 지키려는 의지를 갖춘 다수의 시민이 존재하는 곳에서만 번성한다. 우리처럼 민주적 정치문화의 토대가 취약하고 민주정치의 법적 기반을 공정하게 지켜낼 수 있는 법치주의가 미숙한 나라에서 “온전히 작동하는 자유민주주의”는 여전히 성취하기 쉽지 않은 과제다. 권위주의와 결합돼 있는 정당해산제도는 터키의 예가 말해주는 것처럼 ‘정당의 도살장’으로 전락하기 쉽다.

정태호 경희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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