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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로공사로 파헤쳐진 고향, 안전한 곳은 있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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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로공사로 파헤쳐진 고향, 안전한 곳은 있는 걸까

입력
2015.11.20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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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책, 세상을 그리다] 로드킬, 우리 길이 없어졌어요

로드킬, 우리길이 없어졌어요

김재홍 지음

스푼북 발행ㆍ40쪽ㆍ1만원

비가 오락가락하는 칠흑 같은 밤, 국도를 달린다. 헤드라이트 불빛에 피곤한 눈을 부릅떴다. 도로 한가운데에 커다란 고라니 한 마리가 버젓이 서있다. 급 브레이크! 고라니는 그제서야 슬그머니 도로 밖으로 물러선다. 놀란 가슴 쓸어 내리며 다시 속도를 낸다. 그러자 이번엔 젖은 도로 위를 개구리 떼들이 점령하고 있다. 아무리 천천히 차를 몰아도 개구리들의 목숨을 앗아갈게 분명하다. ‘로드 킬’. 국도에서 주검들을 스쳐 지나는 것이 일상의 흔한 풍경이 되어버렸다.

올 가을, 순천 그림책 미술관에서는 ‘동강의 아이들’ 그림책으로 알려진 김재홍 작가의 원화전이 열렸다. 그림책으로만 보았던 터라 경탄과 안타까움을 동시에 느껴야 했다. 사진촬영과 인쇄 과정을 거치면서 사라진 캔버스 원화 고유의 질감과 색감을 느낄 수 있는 감동스러운 시간이었다. 특히 어떤 그림 앞에서 발길을 뗄 수 없었다. 도로 위, 아마도 로드 킬로 죽은 개 옆에서 또 다른 개 한 마리가 황망하게 먼 산 능선을 바라보고 있다. 반려자를 잃어버린 슬픈 풍경은 인간과 다를 바가 없었다. 이 그림은 ‘로드 킬, 우리 길이 없어졌어요’의 면지에 들어가 있다.

짙은 밤 도로를 헤매던 강아지와 너구리가, 희생된 수많은 동물의 영혼이 발하는 빛을 만나는 장면은 아프지만 눈부시다. 스푼북 제공
짙은 밤 도로를 헤매던 강아지와 너구리가, 희생된 수많은 동물의 영혼이 발하는 빛을 만나는 장면은 아프지만 눈부시다. 스푼북 제공

차 사고로 친구를 잃고 망연자실 앉아있는 개에게 다리를 절룩거리는 너구리가 다가온다. 자신이 예전에 살던 안전한 고향으로 가자고 한다. 큰 차들이 굉음을 내며 질주하는 도로는 너무도 위험하다. 두 친구는 차도 옆 도랑에 빠져 오도 가도 못하는 동물들을 보지만 도와줄 방법이 없다. 차에 치여 죽은 어미고양이 옆에서 여전히 새끼고양이들이 어미젖을 빨고 있는 모습도 본다. 밤이 되자 희생된 수많은 동물의 영혼들이 빛을 발하며 도로 위를 서성이고 있다. 천신만고 끝에 도착한 고향은 도로공사로 온통 파헤쳐져 예전의 모습을 찾을 수 없다. 과연 두 친구는 안전하고 평화로운 보금자리를 찾아갈 수 있을까?

김재홍은 1990년대를 대표하는 리얼리즘 계열의 유명 화가이다. 대중과의 소통을 추구했던 당시 리얼리즘 작가들 중 일부는 출판 미술을 통해 활발한 작품 활동을 펼쳐나갔다. 국내 창작 그림책의 근간을 마련했고 높은 수준의 작품들을 발표해 오고 있다.

인간과 환경에 대한 깊이 있는 시선을 꾸준히 그림책에 담아내고 있는 김재홍의 원화작품들을 볼 수 있는 기회가 많아지길 바란다.

소윤경ㆍ그림책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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