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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미읍성 호야나무엔 피로 물든 박해의 흔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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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미읍성 호야나무엔 피로 물든 박해의 흔적…

입력
2014.07.02 21: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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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미읍성 중앙에 자리잡고 있는 350년 수령의 회화나무. 이곳 발음으로는 '호야나무'로 고유명사가 됐다. 천주교에서는 옹이 부근 철사자국이 박해의 증거라며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
해미읍성 중앙에 자리잡고 있는 350년 수령의 회화나무. 이곳 발음으로는 '호야나무'로 고유명사가 됐다. 천주교에서는 옹이 부근 철사자국이 박해의 증거라며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

순교자의 피로 물든 슬프고도 아름다운 마을, 해미읍성

내포지역 천주교성지의 종착점은 서산시 해미순교성지다. 이곳은 한국 천주교회 역사에서 이름 없이 죽어간 수많은 순교자들의 피로 물든 땅이다. 병인박해 시기 해미천에서 수많은 신자들이 생매장된 것으로 전해지는데 이름이 밝혀진 순교자는 132명에 불과하다. 순교기념전시관의 희생자 명단에는 ‘장마티아의 모친, 아들, 며느리, 증손자’처럼 이름이 없는 경우가 허다하고 일부는 아예 물음표로 표시돼 있다. 서울 전주 등 다른 지역의 순교자 중에는 양반계층이 많아 기록이 남았지만, 내포지역 순교자는 중인 이하 신분이 많아 정확한 희생자 수조차 파악되지 않는다. 해미에서 희생된 신자 수는 1,000~2,000여명으로 추정하는데, 조선 전체 순교자가 8,000명 정도였다고 하니 인구분포를 감안하면 내포지역의 교세를 짐작할 만 하다. 처형장으로 끌려가는 교인들이 끊임없이‘예수 마리아 예수 마리아’를 외친 소리가 종교적 이해가 부족했던 주민들에게 회자되면서 ‘여숫골’이라는 지명으로 남았다.

해미에서 희생자가 많은 이유는 순교성지와 2km남짓 떨어진 해미읍성을 떼고 말할 수 없다. 해미읍성은 호서좌영으로 인근 12개 군영을 관할하고 재판권을 행사하는 곳이었다. 국사범으로 잡혀온 인근의 천주교인들이 이곳에서 집단 처형당한 것이다. 읍성 중앙에 위치한 원옥 앞에는 큰 회화나무가 한 그루 서 있는데, 지역 주민들이 ‘호야나무’로 불러 지금은 호야나무가 고유명사처럼 됐다. 특히 천주교인들은 호야나무의 옹이 부근에 철사를 맨 자국을 고문의 흔적으로 보고 순교지로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 진실은 350년 넘게 모든걸 지켜봤을 호야나무만이 알고 있다.

해미읍성은 기독교인 박해보다 역사가 오래다. 조선 태종 1417년 병영성을 세운 것이 시초이며 왕명으로 5년 만에 완성됐다. 성 입구 오른편 석축에 ‘公州’라는 글자가 희미하게 보인다. 충청지역 전역에서 차출된 인부들은 지역별로 할당된 공사구간에 지명을 새기고 하자가 생기면 보수까지 책임져야 했다. 지금으로 보면 공사 실명제쯤 되겠다. 다른 읍성과 마찬가지로 해미읍성도 일제시대에 완전히 해체돼 목재와 석재는 도로와 건축자재로 쓰이고, 땅은 일반에 팔렸다. 1963년 국가사적지로 지정했지만 복원은 더디게 진행돼 1990년대까지 이곳에서 농사짓던 사람이 있을 정도였다. 해미읍성이 고향이라는 사람들이 지금도 수두룩하다. 지금의 모습을 갖춘 것은 2000년대에 들어와서다. 성곽을 제외한 모든 건물은 복원 당시의 고증과 기술수준을 벗어나지 못했다는 점을 감안하고 봐야 한다.

해미읍성은 다른 문화재와는 달리 엄숙함이 없다. 동네 할머니가 무기 전시장 앞 나무그늘에 앉아 더위를 피하고, 가족단위 방문객들이 자리를 깔고 소풍을 즐기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다. 6만평에 달하는 넓은 잔디밭에도 ‘금지’ 표시는 없다. 내포 사람들만큼 넉넉하다. 이곳이 엄격한 군영이었다는 것은 정문을 지키는 전통복장의 군졸과 성문 양쪽에 내걸린 오방색 병영깃발뿐이다. 현재 성벽 주변에는 교황 방문을 환영하는 현수막이 곳곳에 내걸려 서산의 들뜬 분위기를 대변하고 있다.

내포의 다른 유적지와 마찬가지로 해미읍성도 축성 당시에는 바로 앞이 바다였다. 삽교천방조제와 서산방조제로 막힌 물길을 지금은 그보다 더 촘촘한 도로망이 대신하고 있지만, 물길을 따라 오르내리던 수많은 이야기와 역사의 흔적들은 아직도 넉넉히 내포 땅을 적시고 있다.

해미순교성지의 야외성당은 병인박해 때 희생된 수많은 순교자를 기리기 위해 교인들이 돌을 날라 좌석을 만들었다.
해미순교성지의 야외성당은 병인박해 때 희생된 수많은 순교자를 기리기 위해 교인들이 돌을 날라 좌석을 만들었다.
합덕방죽을 따라 난 길은 버그네순례길에서 가장 운치 있는 곳이다.
합덕방죽을 따라 난 길은 버그네순례길에서 가장 운치 있는 곳이다.

언덕 위의 작은 숲, 한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공세리 성당

순례길 코스에서는 벗어나 있지만 내포지역 천주교 유적지에서 공세리 성당을 빼놓을 수 없다. 삽교천방조제와 아산만방조제가 만나는 교차로 부근 작은 언덕 위에 그림같이 자리잡은 공세리 성당은 이미 70여편의 영화와 드라마를 찍었을 만큼 소문난 곳이다. 2005년에는 한국관광공사가 뽑은 한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성당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120년이나 된 고딕양식의 아담한 성당건물을 더욱 돋보이게 하는 것은 오래된 나무들이다. 보호수로 지정된 느티나무와 팽나무가 3그루 외에도 배롱나무 은행나무 엄나무 쪽동백나무등 건물보다 오래일 법한 나무들이 계절마다 새로운 풍경을 만든다.

공세리는 말 그대로 조선시대에 공공세금을 걷어 보관 하던 공세창고가 있던 자리다. 세금은 당연히 곡식현물이었고, 공세곶을 통해 외부로 실려나갔다. 방조제 공사 이후 지금은 논이 됐지만, 언덕 위의 작은 성당이 바닷물에 투영된 모습은 어떨까라는 부질없는 상상을 해보게 된다.

공세리 성당은 수많은 영화와 드라마 촬영지로 이름을 날린 우리나라에서 가장 아름다운 성당이다.
공세리 성당은 수많은 영화와 드라마 촬영지로 이름을 날린 우리나라에서 가장 아름다운 성당이다.

당진·서산·아산=최흥수기자 choisso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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