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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동문’에서 벼랑 끝 한국축구 ‘캡틴’ 된 김영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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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동문’에서 벼랑 끝 한국축구 ‘캡틴’ 된 김영권

입력
2017.08.30 0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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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상에서 회복해 1년 여 만에 국가대표에 뽑힌 김영권이 ‘캡틴’이 됐다. 오는 31일 이란-9월 5일 우즈베키스탄과 2연전을 앞두고 신태용 감독은 김영권에게 수비 안정의 중책을 맡겼다. 사진은 2011년 6월 세르비아와 평가전에서 득점한 뒤 기뻐하는 김영권의 모습. 연합뉴스
부상에서 회복해 1년 여 만에 국가대표에 뽑힌 김영권이 ‘캡틴’이 됐다. 오는 31일 이란-9월 5일 우즈베키스탄과 2연전을 앞두고 신태용 감독은 김영권에게 수비 안정의 중책을 맡겼다. 사진은 2011년 6월 세르비아와 평가전에서 득점한 뒤 기뻐하는 김영권의 모습. 연합뉴스

“기량은 최고지. 그런데 가끔 정신을 좀 놓는 경우가 있단 말이야.”

홍명보(48) 전 국가대표 감독이 수년 전 사석에서 ‘애제자’인 중앙수비수 김영권(27ㆍ광저우 에버그란데)에 대해 한 말이다. 그러면서 홍 감독은 한 마디 덧붙였다.

“그래서 영권이는 늘 주시해야 해. 뭔가 풀어질 것 같으면 팽팽하게 한 번씩 당겨줘야 하거든.”

홍 감독뿐 아니라 대부분 축구 전문가들의 평이 비슷하다.

김영권은 184cm, 74kg의 탄탄한 체격에 넓은 시야를 지녔고 영리하다. 수비수지만 발 기술이 뛰어나다. 전주대 2학년 시절 풋살 국가대표에 뽑혀 아시아챔피언십에 출전한 특이한 이력도 있다. 왼발잡이라 프리킥 찬스 때 강력한 중거리포로 골을 터뜨리기도 한다. 연령별 대표를 거치며 엘리트 코스를 밟았고 2012년 런던올림픽 동메달, 2015년 호주 아시안컵 준우승의 주역이었다. 2015년 12월에는 기성용(28ㆍ스완지시티)과 손흥민(25ㆍ토트넘) 등 쟁쟁한 동료들을 제치고 대한축구협회가 수상하는 ‘올해의 선수상’을 받았다.

그러나 ‘자동문’이라는 비아냥도 듣는다. 이따금 치명적인 실수를 저지르기 때문이다. 2014년 브라질 월드컵에서 참패한 뒤에는 비난을 한 몸에 받기도 했다.

김영권이 축구대표팀 ‘캡틴’이 됐다.

지난 해 9월 정강이뼈가 부러지는 중상을 당해 개점 휴업했던 그는 지난 6월 그라운드에 복귀했다. 이후 꾸준히 소속 팀 경기를 뛰었고 신태용(48) 축구대표팀 감독은 31일 이란(홈)-9월 5일 우즈베키스탄(원정)과 러시아 월드컵 최종예선 9,10차전을 앞두고 김영권을 발탁했다. 그가 국가대표에 뽑힌 건 1년여 만이다.

김영권의 국가대표 활약 모습. 오른쪽 맨 아래는 조소현(여자부문)과 함께 2015년 대한축구협회 '올해의 선수상'(남자부문)을 받았을 때 모습. 한국일보 자료사진연합뉴스대한축구협회 제공
김영권의 국가대표 활약 모습. 오른쪽 맨 아래는 조소현(여자부문)과 함께 2015년 대한축구협회 '올해의 선수상'(남자부문)을 받았을 때 모습. 한국일보 자료사진연합뉴스대한축구협회 제공

김영권은 신태용호 1기 주장으로도 낙점됐다.

그는 2015년 중국 우한 동아시안컵 때 주장을 한 적이 있지만 해외파들이 합류하지 않은 대회였다. 온전한 국가대표 멤버를 이끄는 완장을 찬 건 이번이 처음이다.

신 감독은 28일 파주 국가대표트레이닝센터(NFC)에서 진행된 인터뷰에서 “김영권을 중심으로 선수들이 미팅을 진행하더라. 2015년 동아시안컵 때 주장으로 우승한 경험도 있다. 그 기운을 이어갈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김영권의 주장 선임은 적지 않은 의미를 지닌다.

일단 중앙수비수 두 자리 중 하나는 그가 꿰찼음을 알 수 있다. 이번 소집에서 어지간하면 선수 개개인의 평가나 선발 여부 이야기를 꺼리는 신 감독도 “김영권은 이란전에서 선발로 뛸 가능성이 높다”고 못 박았다.

한국은 전임 울리 슈틸리케(63ㆍ독일) 감독 시절 늘 수비가 불안했다. 9회 연속 월드컵 본선 진출에 빨간불이 켜진 가장 큰 원인도 최종예선 8경기에서 10실점이나 한 허술한 수비였다. 신 감독은 부임 후 “이는 수비수 개개인의 문제가 아니다. 조직력을 극대화해 변화를 주겠다”고 공언했는데 김영권을 중심으로 수비 안정을 꾀할 작정이다.

그는 이란에 갚아야 할 빚도 있다.

김영권은 2013년 6월 이란과 브라질 월드컵 아시아 최종예선 마지막 경기에서 어이없는 실수로 0-1 패배의 빌미를 제공했다. 한국은 8회 연속 월드컵 진출을 확정했지만 안방 분위기는 초상집 같았다. 그는 지난 23일 훈련 전 취재진을 만나 “실수가 4년 전에 나와 다행이다. 이번엔 나오지 않도록, 반대로 이란 선수들이 실수하도록 유도해서 이기겠다”고 입술을 깨물었다.

김영권은 중국 슈퍼리그에서 한국 선수의 고액 연봉 시대를 열어젖힌 선수다. 현재 광저우에서 활약 중인데 20억 원 이상(추정치)의 연봉을 받는 것으로 알려졌다. 광저우가 지난 2012년 아시아축구연맹(AFC) 챔피언스리그 정상에 올랐을 때는 보너스로만 10억 원이 넘는 돈을 챙겨 국가대표 동료들의 부러움을 사기도 했다. 하지만 이런 이유로 그가 부진하거나 실수할 때마다 ‘배가 불렀다’ ‘정신력이 글렀다’는 손가락질이 나온다. 이른바 ‘중국화’ 논란이다.

하지만 김영권은 알고 보면 어려운 시절 은인들을 잊지 않는 선수다

그는 어렸을 때 남부럽지 않게 살다가 중3때 아버지가 하던 일이 잘못돼 가세가 기울었다. 부모님은 아들을 전주에 둔 채 수도권으로 올라와 돈을 벌었다. 김영권이 전훈비가 없는 등 돈이 모자라 고민할 때마다 슬쩍 봉투를 내미는 등 물심양면 도움을 준 사람 중 한 명이 그의 모교인 전주공고 강원길 감독이다. 김영권은 국가대표로 유명세를 탄 이후 지금까지도 꼬박꼬박 은사를 찾는다.

김영권(가운데)가 지난 28일 파주 국가대표트레이닝센터(NFC)에서 훈련하는 모습. 대한축구협회 제공
김영권(가운데)가 지난 28일 파주 국가대표트레이닝센터(NFC)에서 훈련하는 모습. 대한축구협회 제공

중국에서 뛰며 받는 이런 저런 편견을 깰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은 실력으로 입증하는 거다. 김영권도 잘 알고 있다. 그의 에이전트 김성호 FS코퍼레이션 실장에 따르면 평소 긍정적이고 낙천적인 김영권이 이번 대표 소집을 앞두고 지인들이 놀랄 정도로 전의를 불태우고 있다고 한다. 그는 지난 23일 NFC에 입소할 때 “이제까지 대표팀 경험을 돌아보며 신입생 같은 마음으로 들어왔다”고 밝혔다. 이어 “중국화 논란은 선수들이 어떻게 하느냐에 달렸다. 잘할 때도 있고 못할 때도 있는데 잘할 때가 더 많도록 노력을 해야 할 것”이라며 “중국화 논란이 아니라 ‘중국화가 답’이라는 말이 나올 수 있도록 하겠다”고 당차게 말했다.

윤태석 기자 sportic@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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