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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우석 사기는 언론의 쓰라린 승리... 지금 언론은 더 암울"

입력
2014.11.03 0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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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우석 사태 폭로 후 비제작국 전전… 최근 인사에서도 사업센터로 발령

구속 각오하고 폭로 회견 준비할 때 한국일보 기자들 와서 취재한 게 큰힘

제보자 보호법 마련 절실… 제보한 류영준 교수 1년 반 실직, 번번이 취직 좌절 결국 전공 바꿔

영화 ‘제보자’의 실제 모델인 한학수 MBC PD는 “줄기세포 검증이 어려워지자 MBC 내부에선 황우석 박사팀의 줄기세포를 분양받은 미국 뉴욕 슬로안캐터링연구소에 DNA 검증을 제안할 것인지를 놓고 격렬한 논쟁이 붙었다. 하지만 그건 한국 사회가 자정능력이 없다는 뜻이어서 쉽게 받아들일 수 없었다”고 말했다. 현재의 언론계 상황에선 그런 고민을 하는 것조차 어려워 보인다. 배우한기자 bwh3140@hk.co.kr
영화 ‘제보자’의 실제 모델인 한학수 MBC PD는 “줄기세포 검증이 어려워지자 MBC 내부에선 황우석 박사팀의 줄기세포를 분양받은 미국 뉴욕 슬로안캐터링연구소에 DNA 검증을 제안할 것인지를 놓고 격렬한 논쟁이 붙었다. 하지만 그건 한국 사회가 자정능력이 없다는 뜻이어서 쉽게 받아들일 수 없었다”고 말했다. 현재의 언론계 상황에선 그런 고민을 하는 것조차 어려워 보인다. 배우한기자 bwh3140@hk.co.kr

황우석 전 서울대 교수의 줄기세포 논문조작 사건은 과학적 사기사건이자 언론의 사건이었다. 임순례 감독이 이 사건을 영화화하면서 제목을 ‘제보자’로 달아놓고 방송사 PD를 주인공으로 삼은 게 이상한 일도 아니다. 황우석 사건 후 학계에 연구진실성위원회가 제도화하고 논문 표절 문제로 장관들이 잇따라 낙마하는 것을 보면 연구윤리에 대한 인식은 한 걸음 발전한 게 분명하다. 하지만 언론은 오히려 후퇴한 게 아닐까? ‘제보자’의 실제 모델인 MBC 한학수 PD는 지난달 31일자 인사에서 PD직이 아닌 신사업개발센터로 발령 났다. MBC는 교양제작국을 해체하는 조직개편에 이어 이날 인사에서 ‘PD수첩’ 출신 PD들을 대거 비제작국으로 보냈다. 한 PD는 앞서 2011, 2012년에도 비제작부서인 경인지사, 교육 발령 등으로 이리저리 쫓겨 다녔다. 또 당시 ‘PD수첩’ 책임PD였던 최승호 PD는 2012년 MBC에서 해고돼 소송 중이며 현재 독립언론 ‘뉴스타파’ 앵커를 맡고 있다.

실제 제보자인 류영준 강원대 교수가 MBC 제보를 결심한 것은 ‘PD수첩’ 15주년 특집방송에서 “‘PD수첩’은 능력이 모자라 제대로 비판하지 못한 적은 많았지만, 압력 때문에 피해간 적은 없었다”고 했던 최 PD의 마무리인사가 가슴에 와 닿았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2014년 현재 똑같은 제보가 온다면 MBC는, 아니 어느 언론이든, 과연 그 프로그램은 빛을 볼 수 있을까? 당시 한국일보의 황우석 사건 취재팀이었던 이희정 논설위원과 김희원 사회부장, 현재 과학 담당인 임소형 산업부 기자, 사회부 경찰팀의 박소영 기자가 10월 30일 서울 중구 한국일보사에서 한학수 PD를 만나 이런 질문을 던졌다.

영화 '제보자'
영화 '제보자'

_영화가 관객 170만명 정도로 기대에 좀 못 미쳤다. 사건을 잘 모르는 관객들은 ‘설마 저랬을까’ 하지만 실제 경험한 사람 입장에선 오히려 밋밋하고 딱히 재해석된 것도 아니어서 아쉬운 면이 있다.

“영화를 재밌게 만들려 했다면 PD가 미국 중앙정보국(CIA) 요원인데 원천기술 빼내려 미국 피츠버그대 섀튼 교수와 짰다는 둥 당시 많았던 각종 음모론을 섞어 넣었을 것이다. 조연출과 황 박사 아들의 멜로를 넣는다든지.(웃음) 영화가 실제보다 강도가 약한데, 임순례 감독이 대단히 절제했다고 생각한다. 황 박사도 고뇌하는 인물로 그려진다. 한 명의 악당을 만들어서 선악 구도로 대비시키기보다 우리 사회 전체가 돌아볼 문제라는 취지를 부각시키려 한 것 아닐까?”

_임 감독은 ‘제보자’라는 제목을 달고서 PD를 주인공으로 삼은 데 대해 “언론도 진실을 전하는 또 다른 제보자”라고 말했으나, 과연 관객이 그런 메시지를 품고 극장 문을 나올지 의문스럽다.

“영화가 던지는 질문은 두 가지다. 한국 언론이 지금 어디에 와 있는가를 돌아보게 하고, 10년이 지났지만 우리나라 시스템이 제보를 받아들이는 상황인지 따져보게 한다. 다만 2시간 이내로 구성되는 영화이다 보니 불가피하게 생략된 부분이 많을 것이다. 영화는 어디까지나 임 감독의 작품이라 뭐라 할 수 없지만, 어나니머스, 아릉 등의 이름으로 생물학연구정보센터(BRIC·이하 브릭) 사이트에서 활동했던 젊은 과학도들, 서울대 내에서 진실을 밝히기 위해 노력한 과학자들이 조명되지 않은 게 아쉽고, 다른 자리에서 조명받아야 할 것으로 본다.”

_영화를 보면서 가장 기억에 남거나 아쉬웠던 장면은.

“일단 재미있었고, 울컥한 장면이 많았다. 먼저 일명 YTN ‘협박 취재’ 사태를 형상화한 장면이었다. 영화에선 윤민철 PD가 책을 집어던지는 것으로 나오지만 아, 확 머리가 끓어오르면서 당시 감정이 떠오르는데, 책이 아니라 책상을 뒤엎고 건물을 폭파하고 싶은 심정이었다. 그 뒤로는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임원회의에 불려갔으나 단 한 마디도 입을 뗄 수 없는 상황이었고, 임원회의가 끝난 후 징계를 받기 위해 인사위에 회부된다는 얘기를 들었다. 저녁 때 회사에서 나와 추운 빙판길을 걸어가는데 나는 안 미끄러지고 걸으려 하지만 세상은 100배쯤 더 싸늘하구나 생각했다.”

2005년 12월 4일 YTN은 안규리 서울대 의대 교수와 함께 미국 피츠버그대를 방문, 김선종 박종혁 연구원을 인터뷰한 내용을 단독 보도했다. 두 연구원들은 한 PD가 ‘황 박사가 검찰 수사를 받게 될 것이며 황 박사를 죽이러 왔다’고 협박했다고 주장했다. 직후 MBC에 대한 비난여론이 들끓어 논문 진위 여부를 다룬 프로그램은 방송이 불가능해졌고 아예 ‘PD수첩’이 폐지될 위기에 처했다. 나중에 프레시안을 통해 공개된 녹취록을 보면 한 PD가 실제로 한 말은 ‘황 박사가 검찰 수사를 받게 될 것’이라는 말뿐이었다.

_그 날이 수개월 취재과정 중 가장 힘든 날이었나?

“가장 힘든 날이었고, 진실이 이대로 묻힐 수 있겠구나 하는 두려움과 위기감에 사로잡힌 날이었다. 그날 저녁 최승호 부장과 호프집에 가서 일단 숨도 안 쉬고 맥주를 두세 잔 들이켰다. 그러고선 MBC가 방송을 못하면 이 진실을 어떻게 할 것인지 논의했다. 최 PD가 한 말은 ‘내가 사표를 쓸 테니 너는 남아서 검찰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해라. 우리가 취재한 모든 자료를 방송이 아닌 다른 경로로 다 공개하자’는 거였다. ‘학수야, 네가 구속돼라’는 말로 요약되는 그 이야기를 하고 있을 때 이희정 김희원 기자 두 분이 오셨지 않나. 두 분이 찾아와서 이게 어찌된 일이냐고 했을 때 반갑고 고마웠다. 이런 상황에서도 우리의 이야기를 들으려고 하는 기자들이 있구나, 그들의 취재는 끝나지 않았구나 생각했다. MBC가 방송을 못 할 수 있다고 생각했기에 우리가 취재한 내용을 밝혀야 한다고 생각했고, 그 때 2시간 넘게 강도 높게 취재를 하지 않았나. 그 다음날 또 몇몇 매체가 우리를 취재했고 그 기자들도 사실을 듣고 충격에 빠졌다. 한국일보 같은 몇몇 유력매체들과, 프레시안 같은 독립매체의 도움이 없었다면 YTN 사태 후 불과 보름만에 여론이 반전되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이렇게 보면 황우석 사건은 언론의 쓰라린 패배이기도 하지만 동전의 양면처럼 언론의 쓰라린 승리이기도 하다.”

이날 밤 한국일보 기자들이 최 PD와 한 PD를 찾아간 것은 YTN 보도가 너무 이상하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설사 한 PD가 협박한 게 사실이라도, 황 박사팀이 복제했다는 줄기세포 DNA가 왜 체세포 공여자와 일치하지 않는지를 설명할 수는 없었다. 당시 황 박사팀이 제공한 5개의 줄기세포 중 2개에서 미약하나마 논문과 불일치한 DNA 결과가 나왔고, 대부분 언론은 ‘PD수첩’ 측이 시약을 잘못 쓴 탓이라고 보도했다. 하지만 이는 과학적으로 사실이 아니라고 한국일보는 보도했다. 이런 판단 위에서 YTN의 단독 인터뷰는 음모처럼 보였고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의문을 풀기 위해 여의도로 향했다.

_그날 밤 우리도 충격에 빠져 잠을 못 이뤘다. 새벽까지 못 자고 있으려니 브릭과 사이엔지 사이트에 사진 중복이 논란 중이라는 걸 알려주는 메일과 전화가 오더라. 출근하자마자 편집국장에 보고하고, 기사 방향을 상의하느라 바빴다.

“그런 점에서 제보자 외에 가장 결정적인 도움은 사진 중복을 처음 밝힌 어나니머스, DNA 분석 자료 조작의혹을 제기한 아릉이다. 사실은 12월 4일 밤 어나니머스가 최 PD에게 이메일을 보냈는데 그걸 못 본 채 두 기자를 밤 늦게까지 만나고 있었고, 나중에야 ‘쇼는 계속돼야 한다(The show must go on)’는 글을 올린 것을 봤다. 거대한 반전의 시작이었다. 정말 누가 만들려고 해도 만들기 힘든 영화적 현실이었다. 그 글에 조작된 사진 있다, 찾아봐라, 찾으면 감자 한 포대씩 주겠다고 쓰여있는데, 그 모든 게 은유인 줄만 알았다. 연구실에 가는 걸 농장 간다고 표현하고, 사기 친 과학자들에게 감자나 먹으라고 말한 것인 줄 알았다. 그런데 나중에 알고 보니 실제로 유기농 감자농사를 짓는 분이었고, 기러기 아빠로 세상과는 좀 담을 쌓고 지내면서 저녁에 논문 2개씩 읽어야 잠을 자는 분이었다. 어나니머스는 절대고수이지만 야인인 셈이었고, 아릉은 당시 연구원 신분으로서 DNA 검사 자체가 통째로 조작됐다는 글을 올리는 건 사실 자기 직을 건 것과 마찬가지였다. 실제로 그 뒤 몸담았던 대학을 떠난 것으로 알고 있다.”

_영화에선 사장 앞에서 방송 강령을 외치는 장면으로 비현실적으로 극화됐는데, 어쨌든 당시 ‘PD수첩’팀의 행보는 저널리스트로서의 기개를 보여준 게 사실이다. 하지만 지금은 오히려 언론 현실이 더 어려워진 것 아닌가? 똑같은 제보가 지금 들어온다면 과연 방송할 수 있을까?

“한국의 언론이 지난 몇 년 간 상당히 각박해지고 퇴보한 것은 사실이라고 본다. 표현의 자유가 위축됐다. 최승호 PD가 지금 어디 있는지만 봐도 누구나 현실을 판단할 수 있을 것이다. 제보가 들어온다면 물론 취재는 하겠지만….”

_제보자인 류영준 교수의 삶 역시 순탄치 않았다. 동시에 브릭 연구자들이 십시일반 돈을 모아 주는 등 도움을 준 이들도 있었다.

“영화에서 울컥한 또 다른 장면이 에필로그에서 제보자 가족이 방송을 보면서 뿌듯해 하는 장면이었다. 류 교수 가족의 고단함이 생각났기 때문이다. 영화에서는 방송 한번 한 걸로 모든 게 다 잘 된 듯 나오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았다. YTN 사태 후 류 교수는 레지던트를 하던 원자력병원에서 사실상 해고돼 1년 반 정도 실직상태였다. 사건 취재 당시 일주일 2시간 내기도 어려울 정도로 신경외과 레지던트를 어렵게 했었는데, 다른 학교에 지원을 몇 번 했으나 다 거절당했다. 옆에서 그걸 지켜보는데 너무 마음이 아팠다. 해가 바뀌고 진실이 드러났는데도 제보자를 저렇게 안받아줄까 답답했다.”

_저런 제보자가 들어와서 또 무슨 사고를 칠까 무서웠던 것 아닐까.

“그랬을 것이다. 결국 병리학과로 전공을 바꿨는데 류 교수를 받아준 고대구로병원 병리학과장이 참 훌륭한 분이셨다. 내 책(사회평론 발행 ‘진실, 그것을 믿었다’)을 몇 권 사서 병리학과 교수들에게 읽어보라고 하면서까지 적극적으로 류 교수를 받아줬다. 그 후 서울아산병원에서 임상교수로 2년 있었고 지난해 강원대 교수로 채용됐다. 결과적으로 병리학과도 기초의학에 투신한 훌륭한 자산을 얻은 셈이다.”

_우리 사회는 아직도 제보자가 보호받지 못하고 내부고발자만 손해 보는 현실이다.

“그런 면에서 류 교수가 주장하는 제보자법을 국회에서 적극 논의할 필요가 있다. 제보자 신분을 어떻게 보호할 것인가, 보상을 어떻게 할 것인가, 제보자의 익명성을 언제까지 지킬 것인가, 익명 제보와 실명 제보를 어떻게 관리하고 평가할 것인가 등 쟁점이 많다. 내년 황우석 사건 10주년을 맞아 제보자 관련 제도가 마련된다면 류 교수 같은 사회에 필요한 사람들이 더 많이 나올 수 있을 것이다.”

_황우석 사건 이후 또 달라져야 할 것은 무엇일까.

“연구윤리 측면에선 제도와 기구가 생겼다는 점이 의미 있다. 최소한 인사청문회를 받을 사람은 논문 문제가 없어야 한다는 룰이 형성됐고, 연구자들도 ‘조심해야 한다’는 인식이 생겼다. 반면 전혀 달라지지 않은 건 세월호 같은 거다. 황우석 사건도 학계 정관계 언론계의 유착 카르텔의 결과라고 할 수 있다. 황 박사의 주장만 믿고 보도자료 막 뿌리고 지원한 정부와 정치인, 넋 놓고 지켜보기만 한 국가정보원, 황 박사에게 신용카드 받아 쓴 기자들의 견고한 카르텔이 황우석 사건으로 덜컥 무너진 것이다. 세월호 참사의 근저에도 그런 배가 운용될 수 있었던 업계와 관피아의 유착관계가 있었다. 이런 담합 구조는 쉽게 변하지 않을 것이고, 그 해결은 우리 사회의 숙제라고 생각한다.”

우리 사회는 나아질 것인가. 인터뷰 말미에 기자들은 “변하지 않을 것” “조금씩 변할 것”이라며 공방을 벌였다. 개선된다면, 황우석 사건의 진실이 가까스로 힘들게 밝혀졌듯이 류 교수나 한 PD같은 이들의 노력에 의해 조금씩 힘들게 나아질 것이다.

이희정 논설위원 jaylee@hk.co.kr

김희원 사회부장 hee@hk.co.kr

임소형기자 precare@hk.co.kr

박소영기자 sosyoung@hk.co.kr

[뉴스 A/S]

● 황우석 사건은

2005년 MBC 시사프로그램 ‘PD수첩’에 의해 밝혀진 황우석 전 서울대 교수의 줄기세포 논문조작은 2006년 서울대의 진상조사 결과 낱낱이 확인됐다. 체세포복제 줄기세포는 하나도 없고 처녀생식에 의한 줄기세포가 하나 존재한다는 사실이 규명됐다. 이에 따라 2004년 2005년 두 편의 사이언스 표지 논문은 철회됐다.

법적 판단에는 시간이 더 걸렸다. 황 박사는 검찰 수사에서 논문을 조작했고, 연구과정에서 생명윤리법을 위반했으며, 연구비 일부를 횡령한 혐의로 기소됐고 올 2월 징역 1년6월에 집행유예 2년의 확정 판결이 났다. 황 박사의 교수직 파면을 취소해 달라는 소송은 판결이 오락가락하다 역시 올해 파면이 정당하다는 최종 판결이 났다.

● 한학수PD를 모델로 만든 영화 '제보자'는 어떤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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